검색결과
-
북한에서의 청소년기이웃추가본문 기타 기능 현재 나는 대학교에서 늦게 공부를 시작하며 청소년기를 다시 보내고 있는 30대이다. 청소년기를 고향 함경도 회령에서 보낸 나는 현재 너무나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대 후반에 한국에 입국해서 검정고시부터 대학생이 되기까지 3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삶을 살면서 나는 북한에서의 청소년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구에게나 청소년기는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고 세계관을 키우는 아주 중요한 시기이다. 나는 태어나 보니 노동자 아버지와 농민 어머니의 장녀였다. 북한에서 ‘엄마’라는 말보다 가장 먼저 듣고 제일 처음 한글로 배웠던 것은 바로 ‘김 씨 일가의 이름’과 ‘충성심’이었다. 그런 불모의 땅이었지만 우리도 행복하고 잊지 못할 청소년 시절이 있었다. 친구들과 뛰어 놀며 두만강에서 물장구를 치면서 철없던 어린 시절을 보냈었다. 또 학교 시험에 대한 걱정으로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등잔불 밑에서 공부했었는데, 성적이 좋은 날에는 온 집안이 행복했지만 성적이 낮은 날에는 부모님 꾸지람으로 하루를 마감했었다. 부모님은 “공부를 잘해야 성공한다.”라며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그저 학생이니까 ‘학교를 다녀야 하고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북한에서는 부모에 따라 자식의 미래가 99% 결정이 나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자식은 노동자로, 농민의 자식은 농민으로, 광부의 자식은 광부로 90% 이상 부모의 신분에 따라 자식의 신분이 결정된다. 북한에는 “토대”라는 신분 기준이 있다. “토대”-북한에서는 전 국민을 계층으로 나눈다. 충성계층, 중간계층, 적대계층 등으로 구분하고, 높은 최상위 계층이어야지 당 간부가 될 수 있다. 우리 부모님은 토대로 인한 신분 상승의 절대적 한계에 대해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자식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 자신들보다는 더 나은 신분으로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시키셨다. 우리 부모님 같이 공부시키는 부모들은 소수였다. 주변 친구들을 보아도 학교 가서 뭐 하냐고, 글자나 알고 더하기 덜기만 하면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하면서 집안일만 시키는 부모들이 대다수였다. 철없는 시절에는 학교가 가기 싫어서 공부를 시키지 않는 부모를 둔 친구들이 부럽기도 하였다. 그리고 친구들과 같이 모여 앉으면 한국 청소년들처럼 호감 있는 이성 친구에 대하여 이야기도 하고 앞으로 어떤 사람을 만나면 좋겠다는 등 미래에 대한 꿈을 키우기도 하였다. 청소년기에 대한 추억으로 너무 행복했던 이야기만 한 것 같다. 미래에 대한 꿈을 키우기도 하였다. 청소년기에 대한 추억으로 너무 행복했던 이야기만 한 것 같다. 하지만 내 고향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던 시기도 바로 청소년 시기였다. 자고 깨면 이웃집에 살고 있는 친구가 굶어 죽었다는 소식을 들어야 했고, 나라에서 주는 배급을 기다리다 못해 영양실조로 죽은 어린아이들이 있었다. 300만 명의 국민들이 굶어죽고, 얼어 죽은 바로 고난의 행군 시기가 나의 청소년기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같이 뛰어놀던 친구가 죽었고, 내가 발 담그고 놀던 두만강에서 시체가 떠내려 오는 것을 목격했던 힘든 추억도 있다. 이러한 가슴 아픈 일을 겪으며 나는 북한 탈출을 계획하게 되었고 몇 년간의 방랑과정을 거친 후, 현재 대한민국 일류 대학의 늦깎이 대학생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고향에서는 꿈으로만 꿔야 했던 대학생, 그것도 한국 수도 서울의 일류여대의 대학생이 된 현재, 너무나 많은 추억을 쌓고 있고 서서히 북한에서의 힘든 시절을 잊어가고 있다. 때로는 북한에서의 잊을 수 없는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가 생각나기도 하지만 그때를 추억하는 날은 별로 많지 않다. 지금 대한민국에서의 생활이 너무 행복해서이기도 하겠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보다 100배는 더 높은 경쟁 사회에서 열심히 살아가기 바쁘기 때문이다. 10년 어린 친구들과 대학생활을 함께 하는 것이 너무나 어렵고 때로는 ‘늦은 공부를 왜 할까’하는 후회도 하곤 한다. 이런 자신을 보면 나는 아직 청소년기를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두 번째 청소년기를 보내는 나는 현재에 만족하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경쟁 사회에서 다른 이들과 부딪히며 살아가면서 힘들지만, 나에게는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잊지 못할 제1의 청소년기 추억이 있기에, 이를 기억하면서 또다시 이겨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 주은샘(가명, 함경도 회령)
-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 50주년 기념대회 열려한국에 복음에 들어와 최초의 세례를 받은 1879년 이후 1884년 9월 20일에 최초로 상주하는 선교사가 입국한 이래 90년이 지난 시점에서 새로운 부흥의 전환기가 찾아왔다. 그 전환점은 바로 여의도에서 열린 ‘빌리그래함 목사 한국 전도대회’였다. 1973년 5월 30일부터 5일 동안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열렸던 ‘빌리그래함 목사 한국 전도대회’는 연인원 334만여 명이 모여 기도했으며, 7만 2,000여 장의 신앙상담 및 결신카드가 접수되었으며, 기독교 역사상 최대 규모 집회로 기록됐다. 이 전도 집회를 계기로 1973년 5월까지 서울에 1,400개였던 교회가 이듬해 2,000개로 늘었고, 1970년 219만여 명이던 교회 신도는 1978년 375만8,930명으로 증가했다.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기독교 지도자로 알려진 빌리그래함 목사는 우리나라가 6·25전쟁의 화염에 휩싸였을 때 미국 트루먼 대통령을 찾아가 눈물로 호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아내는 한국인이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50여만 명의 한국 성도들이 나라를 구해 달라고 기도하는데 포기하십니까?” 이 한마디를 기점으로 UN 16개국이 참전하면서 한국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었다. 당시 빌리그래함 목사의 영어 설교를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가 통역했다. 현재 김장환 목사는 '빌리그래함 전도대회 50주년 기념대회'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이번 기념대회는 김장환 목사가 이사장으로 있는 극동방송 주최로 진행되었다. 1973년 ‘빌리그래함 목사 한국 전도대회’ 5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 희년 전도 집회가 지난 6월 3일 오후 3시 서울 마포구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빌리그래함 전도대회 50주년 기념대회’를 가졌다. 설교는 빌리그래함 아들인 프랭클린 그래함 목사가 맡았다. 프랭클린 그래함 목사(빌리그래함전도협회(BGEA) 대표)가 영어로 전하고, 김하나 목사(명성교회 담임)가 통역했다. 사회는 김의식 목사(예장 통합 부총회장)가, 개회사는 김장환 목사(극동방송 이사장)가, 개회기도는 이영훈 목사(한교총 대표회장), 합심기도 인도는 오정현 목사(사랑의교회 담임)가, 축도는 김삼환 목사(명성교회 원로)가 각각 맡았다. 기념대회는 1부 기념음악회, 2부 기념대회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1부 기념음악회는 극동방송 전국 어린이 연합 찬양단, 대중가수 아티스트 연합(가수 김태우, 헤리티지 매스콰이어, 한수지, 시편 150 콰이어), 국내 정상급 성악가 연합(양재무(지휘), 정호윤 테너, 김지호 테너, 한경미 소프라노, 우수연 소프라노, 김선정 메조소프라노, 우주호 바리톤, 한경석 바리톤, 이준석 베이스, 함석헌 베이스, 신원에벤에셀 합창단), 찬양사역자 CCM가수 연합(송정미, 소리엘(지명선, 장혁재), 김정석(시와그림), 에이멘(강중현, 정기세, 김성호), 지선, 지미선, 하은, 빅콰이어), 크로스오버 성악가(국윤종 테너, 최정원 소프라노, 존노(라비던스), 정민성(라포엠), 박현수(레떼아모르), 1세대 찬양사역자 연합(김석균, 다윗과 요나단 황국명, 이정림, 김정선 with 1만명 찬양대, 빅콰이어)가 참여했다. 2부 기념대회는 준비위원장인 김의식 목사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영상), 오세훈 서울시장,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축사, 장종현 목사(공동대회장)의 격려사가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50년 전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는 한국 교회의 성도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고 기도와 사랑으로 우리나라에 사랑을 심었다”라며 축하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번 기념대회를 통해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이어주길 간구 드린다”라는 내용으로 영상 축하를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한국 교회는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 1973년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를 겪으며 부흥 운동의 대역사를 썼고 한국 사회 전반에 선한 영향을 미쳐왔다”라고 했다. “교회를 향한 열정이 타오르고 한국 교회가 부흥의 역사를 새롭게 펼쳐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축하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교회의 학생회장을 하던 고등학교 2학년 때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에 참여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 감동과 열정을 되살릴 수 있다는 것이 기쁘고 감회가 새롭다”라고 인사했다. 또한 “하나님이 함께해 주셔서 대한민국의 교회 및 사회와 정치의 화해와 화합, 경제의 발전을 이루고 어려운 이웃에게 사랑을 나눠주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축사했다. 공동대회장인 장종현 목사는 “이번 기념대회를 통해 한국 교회가 복음의 빛으로 다시 부흥하는 역사가 시작될 것이며 우리 함께 부흥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자”라고 축사했다. 예배는 권모 세 장로(아일랜드 리조트 대표)의 헌금 기도, 오정현 목사(대표대회장)의 개회선언, 이영훈 목사(공동대회장)의 개회기도, 김선규 장로(호반그룹 회장)의 성경 봉독, 김장환 목사(상임고문)의 강사소개, 프랭클린 그래함 목사(BGEA 대표)의 설교, 김삼환 목사(공동대회장)의 축도로 마무리됐다. 프랭클린 그래함 목사의 통역은 명성교회 김하나 목사가 맡았다. 공동대회장인 이영훈 목사는 개회 기도에서 “한국 교회가 감사를 잃어버리고 교권주의에 빠져 신뢰를 잃어버린 것을 회개하며 이 귀한 성회가 회개의 대성회가 되게 해달라”라며 말했고 “이 집회를 통해 다시금 제2의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게 해달라”라며 기도했다. 이번 설교 통역은 명성교회 담임인 김하나 목사가 맡았다. 1973년 전도 집회에서는 김장환 목사가 통역하여 한국 교회 지도자로 우뚝 섰다. 50년 만에 다시 진행된 전도 집회에서는 김하나 목사가 통역하므로 한국 교회의 차세대 지도자로 이름을 올렸다. 설교를 맡은 프랭클린 그래함 목사는 “지난 50년간 대한민국과 세계는 큰 변화를 겪었지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바뀌지 않았다”라고 감사 인사를 했다. 이어서 “나는 많은 죄를 지은 사람이었지만 22살 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회개하며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받아들였다”라고 자신의 신앙 간증을 했다. 그는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예수님을 보내셨고 우리의 죄를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우리의 마음과 삶 속에 믿음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다”라고 전도설교를 했다. 이어 대표대회장인 오정현 목사의 인도로 기도회를 진행했고, 김삼환 목사의 축도로 기념대회가 마무리됐다.
-
[김창훈교수 신학 논단 1] 부흥의 당위성바른 교회를 이루기 위해서 제도적인 개혁과 변화와 함께 반드시 필요한 것은 부흥이다. 그동안 부흥이라는 용어가 많이 잘못 사용되는 경향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부흥을 단순히 숫자가 많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부흥은 일차적으로 ‘다시 살아나는(Re-vival)’ 것이고, ‘신앙의 생동감과 생명력을 회복’하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개혁은 영적인 갱신과 부흥이 뒤따르지 않으면 오히려 어려움과 부작용을 낳는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서도 자주 경험하였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나 부동산 정책들이 늘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였는데, 그것은 제도가 나빠서가 아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도입하여도 국민들의 기본적인 자세가 변하지 않으니까 실제적인 효력을 볼 수 없었다. 교회 개혁도 마찬가지다. 개혁과 영적인 부흥은 늘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미지근하게 신앙생활하기를 원치 않고 구원받은 기쁨과 감격으로 뜨겁고 열정적으로 신앙 생활하기를 원한다. 이것이 부흥이다. 이렇게 다시 살아나는 영적인 부흥이 있을 때 바른 교회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기독교 역사에서 교회가 교회 되도록 하나님께 위대하게 쓰임 받은 분들은 모두 부흥을 경험하였다. 부흥의 원형은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이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하여 엄청난 영적인 변화와 부흥을 경험하였다. 뿐만 아니라 우리 기독교 2000년 역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사건인 종교 개혁을 주도하였던 사람들도 모두 부흥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루터는 심각한 신앙의 번민 속에서 로마서 1:17의 말씀을 통하여 복음의 본질을 깨닫고 영적인 변화와 부흥을 경험하였다. 칼빈은 어떻게 부흥을 경험했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기독교 역사에서 성경 다음으로 영향력이 있는 책으로 평가받는 기독교 강요를 집필하기 1-2년 전에 예상치 못한 성령의 임재로 회심과 헌신을 결단하는 영적 부흥을 경험했다고 한다. 루터와 칼빈과 함께 3대 종교 개혁자의 한 사람인 쯔빙글리도 흑사병으로 인한 생사의 기로에서 놀라운 부흥을 경험하고 종교 개혁의 선봉이 되었다. 그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영적 변화와 은혜를 경험하였는데, 그러한 영적인 부흥을 경험할 때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성경적 교회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 생명을 걸고 위대한 종교개혁에 헌신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영적인 부흥은 사회를 변화시킨다. 18-19세기에 존 웨슬리(John Wesley),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 조나단 에드워드(Johathan Edwards), 찰스 피니(Charles G. Finny) 등을 통해서 일어났던 영국과 미국의 신앙 부흥 운동은 당시에 타락과 부패가 극치에 달했던 영국과 미국 사회를 바꾸어 버렸다.
-
(어린이주일) 천국과 어린이이번 주일은 어린이주일로 지킵니다. 어린이주일을 맞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린아이를 가정에 주시고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믿음 안에서 가정을 이루며 부모와 자녀의 사랑, 존경의 관계를 배우게 하십니다. 이것은 작은 천국입니다. 이 가정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배우고 알게 하십니다. 또한 하나님과 그 자녀된 성도의 관계를 알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도 부모님에게는 자녀였고 아이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부모가 되고 자녀를 낳아 기르게 됩니다. 자녀를 통해 그리고 가정을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과 자녀를 연결해서 이해하지 못하면 자녀를 우리의 소유물로 오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함부로 대하고 학대하게 됩니다. 1. 제자들의 질문(1) 본문 1절에 보면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제자들이 궁금한 것은 ‘천국에서 큰 자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유대교는 천국에서 큰 자가 되기 위해서는 율법을 지키고, 금식기도를 하고, 십일조를 잘하고, 할례를 행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즉 모든 것이 인간의 공로 사상입니다. 인간이 공로를 세움으로 천국에서 큰 자도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 바리새인들은 채소의 십일조도 드렸습니다. 마 23:23절에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합니다. 그들은 식물의 십일조까지 따져서 드리는 열성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눅 18:12절에 보면 바리새인이 기도하면서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라고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일주일에 2회씩 어김없이 금식을 했습니다. 소득의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신앙이 높고 위대하다는 것을 자랑했습니다. 이것으로 그들은 충분히 천국에서 큰 자가 될 수 있다고 여긴 것입니다. 이런 사상이 팽배했던 당시에 제자들은 예수님께 천국에서는 누가 큰 자인지를 질문한 것입니다. ‘크다’에 해당하는 단어가 원문에는 비교급 형용사(메이존)로 쓰였습니다. ‘가장 큰’이라는 뜻입니다. 천국에서 누가 가장 큰 자인지를 물은 것입니다. 율법으로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 바리새인들인가? 예수님을 따르는 자신들인가? 아마도 제자들은 후자의 대답을 듣기를 원한 것으로 보입니다. 2. 예수님의 교훈(2-3)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대답을 하셨습니다. 본문 2절에 보면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행동은 이상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한 어린아이를 부르셨습니다. 여기 쓰인 어린아이(파이디온)은 ‘유아, 작은 아이’를 말합니다. 누가 보아도 보잘것없고 자기의 능력으로는 전혀 천국에 가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스스로의 능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 존재, 어떤 공로를 세울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처럼 율법을 다 알지도 못하고 다 지킬 수도 없는 아이입니다. 금식을 일주일에 2회씩 하거나 십일조를 정확하게 계산해서 드릴 능력도 없는 아이입니다. 제자들처럼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전도를 하는 할 수도 없는 아이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제자들과 비교하면 전혀 스스로의 힘으로는 구원받을 가능성이 없는 아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어린아이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를 제자들 가운데 세우셨습니다. 여기 가운데(메소스)라는 단어는 ‘중앙에, 한가운데’를 말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아이를 불러 한가운데 세우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두가 예수님과 아이를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절에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라고 하십니다. 자세히 보면 예수님께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말씀합니다. 진실로는 원문에 아멘이라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그 자체로 신적 권위의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실하시고 성실하신 분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당시 랍비들은 유명한 선배, 대 스승 랍비의 이름으로 선포하고 가르쳤으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선언 방식인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레고 휘민)는 표현을 사용하십니다. 즉 예수님은 랍비나 누구의 권위를 힘입어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으로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 말씀은 진리이고 반드시 이루어지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에서 큰 자가 누구인지 묻는 제자들에게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라고 하십니다. 원문은 ‘같이’(호스)라는 부사가 쓰여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성인은 어린아이가 될 수 없습니다. 어린아이의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의미는 무엇입니까? 어린아이들과 같이 천국을 사모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라는 말입니다. 3. 어린이와 천국(4) 4절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교훈의 결론입니다. “그러므로”(운)는 결론을 나타내주는 접속사입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라고 하십니다. 어린아이가 되라는 말이 아니라 ‘어린아이와 같이’라고 하십니다. 어린아이의 속성을 보면 예수님의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어린아이(파이디온)는 ‘유아, 작은 아이’라는 뜻입니다. 어린아이는 부모가 반드시 옆에 있어야 합니다. 부모가 알려주는대로 ‘아빠, 엄마’를 말하고 말과 행동을 배웁니다. 이처럼 순수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을 믿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가는 길은 바리새인들이나 유대교의 주장대로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행하고 금식을 하고 십일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구원의 길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자의 후손(창 3:15)을 통해 주어집니다. 여자의 후손이 세상에 와서 사탄의 머리를 박살낼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을 이룰 것입니다. 그 여자의 후손을 믿음으로만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요 3:16). 이 복음의 진리를 바르게 믿는 자, 순수하게 믿는 자가 바로 천국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정에 어린이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순수한 어린이들을 보면서 그들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믿고 천국을 사모해야 합니다. 소란스럽다고 혹은 울음소리와 재잘거리는 어린아이들의 소리가 시끄럽다고 외면하고 무시하면 안됩니다. 그 순수한 어린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또 믿음 안에 자라고 성장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일꾼들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 아이들을 통해 세상에 퍼져 나가게 될 것입니다. 결론 어린이주일을 맞아 우리는 어린이를 우리 가정과 교회에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아이들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양육하고 믿음 안에서 잘 자라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이 사명이 오늘 우리 교회와 믿음의 가정들에게 있음을 기억하고 사랑으로 아이들을 키워내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김순정 목사(말씀사역원 본부장)
-
나선적 선적 역사 개념자연신론자들에 의하면 역사는 순환한다는 것으로 보았다. 아침에 태양이 뜨고 저녁때 태양이 지듯이 모든 만물의 이치가 이처럼 반복되는 순환을 통해 계속된다고 믿었다. 이를 자연신론주의 역사관이라 한다. 이러한 역사관은 구약성경에 등장한 바알종교의 역사관이다. 태양이 뜨고 빛나고 가라앉듯이 자연 만물의 질서도 이러하다고 생각했고, 이런 자연의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이 바알신이라고 믿었다. 그들이 바알을 위해 축제했던 절기들을 보면 이러한 역사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를 타파하고 훼파하려는 종교가 바로 여호와의 종교였다. 여호와 종교는 전혀 다른 역사관을 가지고 있었다. 역사에는 시발점이 있고 종착역이 있다는 것이 여호와 종교의 역사관이었다. 자연신론자들이나 고대 로마, 그리스의 역사관은 대부분 윤회적인 것, 내지는 동그라미 적인 것으로 보았지만, 히브리 민족 이스라엘의 역사관은 선적, 즉 직선적 역사관을 가지고 있었다. 나선적 직선적 역사관이라 할 수 있다. 나선이라는 말은 모든 역사는 돌고 도는 것 같지만, 그러나 이것은 나선적으로 직선을 향해 가는 “나선적, 선적 역사” 개념이다. 즉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 시작된 역사는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서 끝을 맺는다는 히브리 민족의 역사관이다. 이 역사의 종말은 하나님의 뜻이 완성될 때이다.
-
소재열목사 신구약 성경 맥찾기(3) 레위기소재열목사 신구약 성경 맥찾기(3) 레위기
-
장로, 집사, 권사에 대한 권면교회가 세워지면서 없어서는 안 되는 직분을 우리는 항존직이라 합니다. 이 항존직은 교회 설립 목적과 연동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우리 교단은 항존직을 목사와 장로, 집사라는 3중직으로 하지 않고 2중직인 ‘장로와 집사’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는 목사로서 장로, 장로로서 장로라는 의미입니다. 장로에 대해서 권면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오해로 장로직에 대한 많은 오해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임직받은 장로님에게 권면합니다. 장로직에 대한 다양한 의미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장로직은 당회원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교단헌법에 장로를 시무장로 하지 않고 치리장로라고 합니다. 이는 시무하는 치리장로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장로교에서 치리권은 교인들로부터 위임을 받지 아니하면 그 어누 누구도 치리권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오늘 임직받은 장로님들은 정읍성광교회 교인들이 자신이 갖고 있는 치리에 대한 기본권을 오늘 임직받은 장로님들에게 위임해 주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교인들이 장로로 임직받은 분들에게 “복종하기로 서약”하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 피택받은 장로님들은 먼저는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그 다음은 담임목사에게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그 다음은 교인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장로직의 교권은 물론 하나님께 받습니다. 그러나 오늘 임직을 받으므로 그 교권을 교인들에게 받은 절차입니다. 따라서 교인들을 위해 기도하고 정읍성광교회 교인들의 뜻을 반영한 치리장로로서 사명을 감당하기를 바랍니다. 다음은 시무집사입니다. 시무집사를 서립집사와 구분하기 위해 안수집사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헌법은 언수집사라 하지 않고 시무집사라 합니다. 여기서 ‘집사’라 할 때 ‘사’는 ‘일사’(事)입니다. 이는 교회에서 봉사직을 의미합니다. 그 봉사직은 교회 설립목적과 연동되어 있으므로 집사의 하는 일 때문에 항존직이라 합니다. 얼마전에 통합 측의 대형 교회 모 목사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은 교회가 외부의 세력에 요동치지 않았던 것은 교회 허리를 바치고 있던 안수집사님들의 힘이 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정읍성광교회 역시 앞으로 교회가 든든히 서져 갈 수 있다면 안수집수님들의 헌신과 그 수고가 작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시무집사님들의 봉사직은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 가운데 하나로써 그 사명을 어떻게 감당하느냐에 따라 정읍성광교회의 성격이 달라질입니다. 교회 요소요소에서 섬김의 봉사정신을 실현시켜 나갈 수 있기를 권면 합니다. 다음은 권사입니다. 우리 교단은 여성 목사와 여성 장로가 없습니다. 이는 여성안수에 대한 교단의 성경적, 신학적 의미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기 선교사들은 ‘전도부인’이라는 직제를 두어 교회를 운영했습니다. 그 이후 ‘권사’제도를 두었는데 그 ‘권사’에서 ‘사’는 ‘목사’와 같이 ‘스승사’(師)입니다. 이는 권사가 하는 일 때문입니다. 권사는 집사와 같이 일사(事)가 아닌 스승사(師)로 한 것은 당회와 담임목사의 지도에 따라 낙심한 교인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직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취임하는 권사님들은 물론 집사와 함께 열심히 헌신하고 봉사해야 하겠지만 교인들을 위로 하고 격려하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를 권면합니다. 이런 사명을 감당하려면 교인들으로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인정받지 못하면 권사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2)
-
구약설교, 랍비들과는 달라야 한다구약성경, 랍비들의 설교와는 달라야 한다.
-
악과 재앙의 관계김종택목사 사사기 강해 10 악과 재앙의 관계(사사기 2:11-15
-
귀신들린 자를 고치신 예수님귀신들린 자를 고치신 예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