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3·1운동 100년 한국교회 기념대회...민족과 함께 하는 교회로‘3·1운동 100년 한국교회 기념대회’가 1일 2만여 명의 성도들이 운집한 가운데 열려 3·1운동 100년을 기억하고 3·1운동 정신을 기도운동으로 승화시켜 8천만 민족 복음화와 750만 디아스포라 세계 선교적 사명을 다할 것을 다짐했다.서울시청광장 우편에서 시작된 이날 기념대회는 한국대학생선교회(CCC) 트루니스찬양팀이 첫 번째 섹션을 맡아 성도들과 함께 뜨거운 찬양의 시간을 가졌으며 준비위원장 정성진 목사(거룩한빛광성교회), 준비위원장 김종준 목사(꽃동산교회)가 사회를 맡았다.대회장 이승희 목사(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는 “오늘 우리는 일제 총칼에 맞서 일사각오로 ‘자주 독립’을 외쳤던 3·1정신의 계승과 더불어 순교정신으로 항거했던 선열들의 뒤를 따라 뼈를 깍는 각오와 결단으로 한국교회를 바로 세우고 이 나라 이 민족을 섬기며 민족과 함께하며 희망을 주는 교회로 나가고자 한다”고 대회사를 전했다. 이어 정서영 목사(세계한국인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박종철 목사(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 엄신형 목사(전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송태섭 목사(한국장로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엄기호 목사(직전 한기총 대표회장,세계복음화중앙협의회 총재) 등 대회장이 나서 인사 및 취지의 말을 전했으며 이주훈 목사(예장백석대신 총회장)가 대표기도했다.또한 윤보환 감독(영광감리교회)이 ‘거룩한 기도 연합, 3·1운동’, 림형석 목사(예장통합 총회장)가 ‘한국교회의 다음세대에 대한 책임’이라는 제목으로 각각 메시지를 전했다.윤보환 감독은 메시지를 통해 “3·1운동은 온 교회가 나라를 살리기로 염원하며 일으킨 구국 기도 운동”이라며 “3·1운동은 하나님을 향한 민족의 부르짖음의 기도였으며 교회를 중심 한 거룩한 구국 기도운동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하고 “3·1운동 1백주년을 맞이하면서 기독교는 사상과 이념 싸움이나 정치적 지지 세력의 대립에서 벗어나 여호와 하나님이 부르신 나라, 꼬레아 대한민국이 되어 ‘거룩한 기도 연합, 3.1 운동’의 정신과 순교신앙을 계승하여 민족과 세계 복음화의 새로운 1백년의 리더십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림형석 목사 역시 “그때의 젊은이들은 깨어있었고 특히 기독교학교의 기독청년들이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일에 도화선 역할을 했다”고 전하고 “우리의 소망은 우리의 자녀들이 이 나라의 의인 열 명이 되고, 기드온의 300용사가 되고, 바알 우상에게 입 맞추지 않은 7000 기도용사들이 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이제 우리의 자녀들을 신앙의 사람으로 키우고, 자유민주주의의 정신을 가진 민주세대로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이날 정오를 기해 한국교회 지도자와 한국교회총무단이 태극기와 3·1운동과 관련이 있는 국가들의 국기를, 300여 명의 어린이, 청소년, 청년들이 태극기를 들고 함께 입장한 뒤 김진호 목사(기성 총무)의 선창으로 “대한독립만세!, 대한민국만세!, 평화한국만세!”로 만세삼창을 했다.특히 당시 16살부터 18살 학생과 청년들이 앞장섰던 3·1운동의 뜻을 기려 기독교학교 학생들과 교목들 24명이 나와 풀어 쓴 기미독립선언서 요약문을 낭독해 의미를 더했으며 다함께 ‘3·1절의 노래’를 제창했다.이어 참석자들이 합심하여 ‘3·1정신과 순교신앙 계승을 위해’ 통성기도 후 진행위원장 설동욱 목사(예정교회)가 마침기도를 했다. 전태식 목사(서울진주초대교회)의 성경봉독과 CCC 찬양대의 특별찬양이 있었다.이날 ‘진리와 자유’라는 제목으로 설교에 나선 이영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는 “100여 년 전 우리 민족의 믿음의 선진들은 일제 침략으로 자유를 빼앗기고, 참된 진리도 잃어버리게 된 현실에 매우 안타까워 했고 그래서 진리와 자유를 위해 분연히 일어나 대 한독립만세를 외쳤다”면서 “이를 본받아 우리도 불의 앞에 일어나 악과 싸워야 하지만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 진리가 되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이어 이 목사는 “100년 전 3.1 운동에서 참된 자유를 향해 부르짖은 함성과 정신에 따라 오늘날 우리가 부르짖어야 할 진정한 독립만세는 무엇인가?”라고 묻고 “그것은 바로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당하는 자들이 그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피력했다.설교에 이어 찬양사역팀 소리엘의 축하찬양 후 임준식 목사(한국기독교부흥협의회 대표회장), 김동근 장로(몽골기독교총연합선교회 법인회장), 두상달 장로(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 회장), 박철규 목사(세계복음화중앙협의회 대표회장), 김봉준 목사(미래목회포럼 대표), 오영자 목사(한국복음화운동본부 여성총재), 김호동 목사(유럽한인기독교총연합회 사무총장) 등이 특별기도를 했다국내 최초 장애아동·청소년 전문오케스트라인 ‘헬로우 샘 오케스트라(지휘 : 서진, 과천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의 축하연주와 각 교단 총회장인 윤성원 목사(기성 총회장), 홍동필 목사(예장합신 총회장), 윤기순 목사(예성 총회장), 김종현 감독(중앙연회 감독), 이양호 목사(복음교회 총회장), 정상업 목사(예장개혁총연 총회장)가 ‘3·1운동 100주년 한국교회 선언문’을 발표했다.이날 발표된 ‘3·1운동 100주년 한국교회 선언문’에는 “우리 한국교회는 선배들의 선언과 목숨을 바친 희생 위에 얻어낸 이 땅의 독립과 자유와 평화를 소중히 지켜나갈 것”이라고 다짐하고 “우리 한국교회는 모든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로서 서로 연합하며, 협력함으로써 교회 안에 들어온 이단과 분열의 사슬을 끊어내 거룩한 교회를 이루며, 우리 시대에 주어진 민족 복음화와 세계 선교의 사명을 다해 나갈 것”을 선언했다.이날 기념대회는 ‘3·1운동 100주년 한국교회위원회’ 주최로 열렸으며, 전명구 감독회장(기독교대한감리회)과 한국교회 총회장들의 공동축도가 있었다.축도 후 오야마 레이지 목사외 17명의 일본 목회자들은 “일본의 과거 침탈을 깊이 사죄합니다. 이젠 됐어요.라고 말씀하실 때까지 계속 사죄하겠습니다”라는 펼침막을 들고 사과하고 엎드려 사죄했다.준비위원장 정성진 목사는 “연합기관과 교단들이 함께 100년 전 3·1운동을 주도한 기독교의 정신을 다음세대에 전하며, 계승하기 위한 대회였다”고 밝혔다.
-
김포제일교회, 김포중앙교회 설립 125주년 감사예배왼쪽 김포제일교회(정운락 목사), 오른쪽 김포중앙교회(원로 박영준 목사)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신 32:7)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역사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였다. 이 구원의 역사한 하나님의 계시의 역사였다. 하나님의 계시가 성문 문장의 형태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구전을 통해서 전달됐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의 계사를 주신다. 계시를 받은 선지자들은 그 계시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계시를 전달한 선지자들은 한참 후에 기록으로 보존하고 전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부모의 역할은 이러한 전달받은 하나님의 말씀인 계시를 자녀들에게 전달한 의무가 있다. 부모를 거역한 자녀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거부한 것과 같다. 그래서 부모를 거역한 자들에게 엄중한 심판고 징계가 요구되었다. 따라서 옛날의 역사와 연대는 바로 하나님의 계시의 역사였으며 이를 자녀들에게 전달하고 교육해야 하는 책임이 부모에게 있었다. 그래서 자녀들은 이러한 역사를 부모에게 물어야 했으며 부모는 자녀들에게 과거 하나님 계시의 역사를 설명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조들이 전해준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한 신앙 교육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그를 경외하였으며, 그러한 삶의 목표를 갖고 살았다. 왜 오늘날 우리들도 성경에 기록된 계시의 역사를 알아야 하며 동시에 이 땅에서 전개된 교회의 역사를 들어야 하고 알아야 하는가? 그 역사는 바로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섭리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아는 만큼 느끼고 체험하게 되어있다. 그러한 체험은 우리들의 신앙을 풍요로운 은혜 가운데로 인도한다. 김포지역은 금년(2019)으로 125년 역사의 갖고 있다. 한국에 개신교 복음이 전해진 때가 1884년 9월 20일이다.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알렌선교사가 제물포에 입국하는 날을 기념하여 이 땅에 개신교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135주년이 된다. 김포지역은 한국에 복음이 전래 된지 9-10년 후였다. 외국의 다양한 교파에서 파송된 선교사들이 선교 과열을 막기 위해 선교지역을 분할하였다. 이를 선교분할정책이라 한다. 김포지역은 당시 미국 북장로회 선교지역이었으며, 미국의 남장로회 선교회는 호남지역을 선교지역으로 하였다. 부산을 비롯한 영남은 호주장로회의 선교지역이었다. 1885년 4월 5일에 입국한 미국 북장로회 선교회 소속 미혼인 언더우드 선고사가 입국하여 김포지역은 언더우드 선교사를 비롯한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들의 선교지역이었다, 김포지역은 금년으로 선교 125주년이 된다. 그런데 김포선교 개시년도를 김포제일교회와 김포중앙교회는 동일하게 125주년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는 훗날 더 연구가 필요하다. 이는 훗날 연구논문으로 남기고 일단 두 교회가 3월 첫주일인 지난 3일 주일에 125주년 기념 감사예배를 드렸다. 김포제일교회 설립 125주년 기념 감사예배 김포제일교회는 지난 3월 3일 주일 오전 11시 30분에 신명기 6:20-25절 말씀을 통해 담임인 정운락 목사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설교를 마친 후에 축하 케익 커팅식을 갖기도 했다. 김포제일교회는 125주년 기념감사예배를 드리면서 특별한 행사를 거행하지 않았다. 김포제일교회는 특별하게 125주년을 기념할 만한 역사 기록물이 출판되지 않았다. 소중한 유산을 간직하면서 그 소중한 역시의 기록물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있다. 적어도 언더우드 선교사에 의해 현 부지를 기증받아 오늘까지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면 김포 걸포공원에 있는 언더우드 기념 조형물을 방문하여 언더우드 선교사를 통해 역사하셨던 하나님께 감사하는 현장 답사하는 행사를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김포제일교회가 아니더라도 이 역사의 현장 기록을 누군가가 하여야 한다는 사명을 가진 자들이 있으리라 본다. 사실 이러한 역사에 대한 일부 논문이 발표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김포중앙교회 설립 125주년 기념 감사예배 같은 주일 오전 11시 30분에 김포중앙교회(담임 정재화 목사) 역시 교회 설립 125주년 감사예배를 드렸다. 김포중앙교회도 김포제일교회와 마찬가지로 교회 어디에서 교회 설립 125주년 기념주일이라는 포스터 한 장 없었다. 역사에 대한 무관심인지도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이 현실이었다. 김포중앙교회 설립 125주년 기념이란 말은 사회자의 기도 속에서, 대표기도자의 기도 속에 설교자의 설교 도입부분에 교회가 설립된지 125주년이라는 이여기가 전부였다. 이날 설교는 박영준 원로목사가 본문 에베소서 4:1-6절 말씀을 통하여 ‘힘써 지키십시오’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다. 주일 오후에 항존식 임직식을 갖기도 했다. 김포중앙교회는 통합측 교단에 소속된 교회이다. 김포중앙교회는 김포제일교회와 그 뿌리가 동일하다. 한국의 장로교회는 1950년대에 크게 3번의 분열이 있었다. 1951년은 고신측과의 분열, 1953년에는 기장측과의 분열, 1959년은 통합측과 합동측과의 분열이 있었다. 1959년 제44회 총회시에 분열된 이후 김포읍교회(김포제일교회)에서 1962년 4월에 불면리에 교회당을 마련하여 시작한 교회가 김포중앙교회이다. 김포중앙교회는 김포제일교회와 역사를 공유하며 동일하게 1894년 3월 3일을 교회 설립일로 정하여 지키고 있다. 1894년 3월을 설립일로 정한 근거로는 「朝鮮耶蘇敎長老會長老會史記 上」에 기록이 전부다. 그러나 이 기록이 김포읍교회의 설립일에 대한 근거가 되는지 여부는 논외로 하고 적어도 김포지역은 125년 동안 선교사들에 의해 전해준 복음이 오늘의 풍요로운 축복받은 땅, 축복받은 교회들로 성장케 해 주셨다. 이를 잊어버리면 안된다. 김포지역 선교 125주년 기념 필자는 두 교회의 설립 125주년 주일 감사예배를 드린 후에 김포 걸포공원에 자리잡고 있는 언더우드 기념 조형물 현장을 방문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특히 기념 조형물을 건립하는데 협조한 분들에게 감사하며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
미래창포럼, 최명화 교수의 4차산업혁명시대 인간소통포럼을 통해 미래를 볼 수 있는 창을 교회와 목회자에게 마련해 주는 ‘미래 창 포럼’이 제 7차 포럼을 지난 2월 22일 개최했다. ‘4차 산업혁명시대 목회계획 솔루션’을 주제로 지난 6차 포럼을 진행한데 이어 이번 7차에서도 좀 더 실재적인 부분을 강화해 포럼을 준비했다. 포럼을 준비한 김상윤 목사는 “4차산업혁명시대로 인해 일어나는 변화는 무엇이고 사람들의 사고가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 깨닫고 목회의 방향을 잘 설정하고자 포럼을 마련했다”며 “특별히 이번 7차 포럼에서는 4차산업에 대응할 만한 목회 실재는 무엇인가에 더욱 중점을 뒀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지난 6차 포럼에서는 미래에 대한 전문가를 초청했다면 이번 7차에서는 좀 더 현실적인 전문가를 강사로 세운 것. 이번 7차 포럼의 첫 번째 강의는 서강대 기술경영 전문대학원 최명화 교수가 맡으며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오는 사회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해 강의했다. 최명화 교수는 “4차산업혁명은 단순히 기술적인 변화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이 소통하는 방법, 연결하는 방법, 그로 인해 모든 기업이나 사람들이 자신을 브랜딩 하고 마케팅 하는 방법에 있어 일대 변혁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4차산업혁명이 가져온 사회적인 가치 변화 중 핵심은 수평의 개념”이라며 “이는 인공지능이나 로봇의 등장으로 인간화가 몰살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기술적인 도움으로 보다 인간다워지는 것이 가속화 될 것”이라고 전했다. 따라서 최명화 교수는 이러한 변화에 대한 인지와 통찰력을 갖고 더 나은 목회를 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강의했다. 최명화 교수는 “인공지능이나 로봇의 등장으로 인간화가 몰살되는 것이 아니라 저희가 좀 더 긴밀하게 컨넥트 되고 서로 위안 받고 보다 평등적인 생각에서 수평적인 사고로 서로 컨넥트 되는 시대가 될 것인데요. 그런 측면에서 교회가 차지할 역할이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영적허브로서 교회는 수평적인 플랫폼을 제공하고 그것을 통해 사람들이 활발히 커뮤니케이트 할 수 있는 소통의 장. 그렇게 됨으로써 어떤 가르치는 것이 아닌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유인할 수 있는 브랜드로 재탄생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
미래창포럼, 4차 산업혁명시대 목회계획 솔루션포럼을 통해 미래를 볼 수 있는 창을 교회와 목회자에게 마련해 주는 ‘미래 창 포럼’이 제 7차 포럼을 지난 2월 22일 개최했다. ‘4차 산업혁명시대 목회계획 솔루션’을 주제로 지난 6차 포럼을 진행한데 이어 이번 7차에서도 좀 더 실재적인 부분을 강화해 포럼을 준비했다. 포럼을 준비한 김상윤 목사는 “4차산업혁명시대로 인해 일어나는 변화는 무엇이고 사람들의 사고가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 깨닫고 목회의 방향을 잘 설정하고자 포럼을 마련했다”며 “특별히 이번 7차 포럼에서는 4차산업에 대응할 만한 목회 실재는 무엇인가에 더욱 중점을 뒀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지난 6차 포럼에서는 미래에 대한 전문가를 초청했다면 이번 7차에서는 좀 더 현실적인 전문가를 강사로 세운 것. 이번 7차 포럼의 첫 번째 강의는 서강대 기술경영 전문대학원 최명화 교수가 맡으며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오는 사회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해 강의했다. 최명화 교수는 “4차산업혁명은 단순히 기술적인 변화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이 소통하는 방법, 연결하는 방법, 그로 인해 모든 기업이나 사람들이 자신을 브랜딩 하고 마케팅 하는 방법에 있어 일대 변혁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4차산업혁명이 가져온 사회적인 가치 변화 중 핵심은 수평의 개념”이라며 “이는 인공지능이나 로봇의 등장으로 인간화가 몰살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기술적인 도움으로 보다 인간다워지는 것이 가속화 될 것”이라고 전했다. 따라서 최명화 교수는 이러한 변화에 대한 인지와 통찰력을 갖고 더 나은 목회를 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강의했다. 최명화 교수는 “인공지능이나 로봇의 등장으로 인간화가 몰살되는 것이 아니라 저희가 좀 더 긴밀하게 컨넥트 되고 서로 위안 받고 보다 평등적인 생각에서 수평적인 사고로 서로 컨넥트 되는 시대가 될 것인데요. 그런 측면에서 교회가 차지할 역할이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영적허브로서 교회는 수평적인 플랫폼을 제공하고 그것을 통해 사람들이 활발히 커뮤니케이트 할 수 있는 소통의 장. 그렇게 됨으로써 어떤 가르치는 것이 아닌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유인할 수 있는 브랜드로 재탄생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두 번째 강의는 나눔의 교회 김상윤 목사가 맡았다. 김상윤 목사는 ‘4차 산업에 따른 목회의 실재’에 대해 강의하며 “목회 실재는 강단”임을 강조했다. 4차 산업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강단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것. 제자훈련이나 성경공부 등에 치우치거나 이를 교회 부흥의 원인으로 볼 것이 아니라 강단을 더욱 강화해 본질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상윤 목사는 “설교가 얼마만큼 성도들과 공유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며 “교회는 학교나 군대처럼 때가 되면 꼭 가야 하는 동기 집단이 아니기 때문에 강단을 통해 동기 집단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상윤 목사는 “강단 강화를 위해서 설교가 얼마만큼 성도들과 공유되고 있느냐입니다. 교회는 비동기 집단입니다. 때가 되면 가야 하는 동기 집단이 아닌데 강단을 통해 동기 집단이 되어야 합니다. 좀 더 사실화 되어 동기 집단화 된 에너지가 하나님 영광을 위해 복음사역을 위해 분출하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라고 했다. 이날 포럼에 앞서 드린 예배는 김철중 목사(서울신흥교회)의 인도로 드렸으며 박순석 목사(예수열방교회)가 대표기도를, 이상학 목사(신암교회)가 성경봉독한 후 전계헌 목사(증경총회장, 익산동산교회)가 ‘항상 깨어 있으라’ 제하로 말씀을 전했다. 전계헌 목사는 “우리는 미래에 대해서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라고 질문을 던지며 “성경말씀처럼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깨어 있어 하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경말씀을 주시며 그 말씀 안에서 먹고 살 수 있도록 해주셨다며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4차산업혁명 시대 목회적 대안을 찾을 수 있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후 윤희원 목사(효성교회), 이순우 장로(기독신문사장)의 축사, 홍성현 목사(판암장로교회)의 환영사, 김태영 목사(삼락교회)의 광고, 민규식 목사(성암제일교회)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으며 식사기도는 이광복 장로(두란노교회)가 맡았다. 한편, 미래창포럼은 ‘포럼100’이라는 이름으로 주로 정책포럼을 진행해 왔으며, 지난 6회 세미나부터 ‘미래창’이라는 새 옷을 입고 학술적인 주제를 갖고 진행하고 있다.
-
목회자 자녀는 아픔이 아닌 축복입니다오직 목회자자녀들만을 위한 축제인 ‘제33회 전국목회자자녀세미나’가 지난 2월 18일(월)부터 20일(수)까지 경기도 남양주 다산 신도시에 새롭게 건축한 예정교회 다산성전(설동욱 목사)에서 개최해서 은혜중에 마쳤다. 한국지역복음화협의회(총재 피종진 목사 대표회장 설동욱 목사)와 목회자사모신문(발행인 설동욱 목사)이 공동으로 주최했고 CTS기독교TV, CBS, febc극동방송, 국민일보, 예정교회가 공동으로 후원하여 진행됐다. 이번 ‘제33회 전국목회자자녀세미나’는 전국에서 모인 목회자자녀들이 모습은 다르고 생각도 다르지만 비슷한 환경에서 나고 자란 입장이라는 것을 확인하며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위로받고 서로가 각기 다른 모습 속에서 살아가지만 목회자자녀라는 동일한 정체성을 가지고 하나되어 주님을 높이며 큰 은혜를 받았다. 목회자사모신문 주최의 이번 ‘제33회 전국목회자자녀세미나’는 기쁨의 웃음과 회개의 눈물 그리고 특히 자신과 부모님을 위한 간절한 눈물이 마르지 않았던 세미나였다. 그들은 이제 혼자가 아니라 ‘함께’라는 공동체 의식을 가지게 되었고 참았던 눈물과 그들의 마음을 한층 가볍게 해 줄 웃음 그리고 뜨거운 찬양과 기도, 비전과 결단이 넘치는 세미나로 진행됐다. 목회자자녀들은 성장하면서 그동안 혼자만의 아픔이라고 생각하며 상실했던 자신들의 정체성을 회복했는데 서로 만나 자신이 성장하는 동안 받았던 아픔과 상처 그리고 특별한 경험들을 나누고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며 치유를 경험했다. 세미나가 진행되는 동안 목회자 자녀 서로 간에 첫 만남의 어색함은 금방 사라지고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사람들처럼 나눔이 풍성하고 깊어졌으며 친형제와 자매 같은 친근함을 형성하게 됐다. 특히 목회자 부모님을 잘 이해하지 못하던 그들이 세미나를 통해서 목회자자녀는 아픔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섬기는 교회 부모님의 목회를 위해 기도할 때는 참석한 대부분의 자녀들이 뜨겁고 마르지 않는 눈물로 기도했다. 이번 세미나에서 첫날 저녁 강사로 말씀을 전한 이성재 목사(한올교회)는 중고등학교 교목으로 사역했던 그 관심으로 청소년들을 향한 뜨거운 열정이 배어있는 설교를 통해 참석한 목회자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했다. 두 번째 날 오전에 강의한 오선화 작가(너는 문제없어, 성경 태교 동화 등 저술)는 마치 오래된 좋은 선배처럼 친근하며 작가 특유의 매력적인 화법으로 말씀을 전했는데, 자신의 성장기동안 겪었던 일들을 함께 나누며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은혜를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을 생각하고 진심으로 감사하라고 전했다. 특히 목회자자녀들이 자신의 외모나 다른 외향적인 환경과 배경에 자신이 없을지라도 너무나 소중한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갈 것을 나누었다. 허동석 목사(주품에 교회)는 참석한 목회자자녀들이 친자녀인 듯이 사랑이 가득 담긴 메시지를 전파했는데 특히 허 목사의 자녀들이 어린 시절 일반성도 자녀에게 맞고 다니는 이유가 그 아이를 이길 수 있는데도 목사 자녀가 때려서 아이와 부모 성도들이 교회를 나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냥 맞고 있었다는 말을 듣고 아이와 함께 많이 울었다는 등의 이야기를 나누며 은혜를 전했다. 특히 두 번째 날 마지막 저녁 시간에 말씀을 전한 다니엘 김 선교사는 목회자자녀라는 것이 상처와 아픔일 수 있지만 어떤 아이들은 목회자자녀로 태어나는 것이 소원이고 마냥 부러운 아이들도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목회자자녀는 하나님의 축복임을 전하며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회심이 회복의 시작이 된다며 열정적인 말씀을 전했다. 목회자자녀세미나 출신 스텝들로 구성된 찬양팀과 전체 진행팀은 은혜로운 찬양과 무엇보다 참석한 자녀들의 여러 필요를 세밀하게 채워주었고 참석한 자녀들을 소그룹 팀으로 구성하여 진솔한 나눔을 통해 행복한 세미나로 진행했다. 이번 세미나에 참석한 본포제일교회 김창서 자녀는 “세미나에 처음 왔는데 이곳에 와서 찬양을 부르다가 눈물이 터졌는데 이 눈물이 주님을 위한 눈물임을 확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라고 참석 소감을 전했고, 하늘문교회 진명언 자녀는 “나보다 훨씬 힘든 상황가운데 있는 친구들의 간증에 내가 너무 사랑받고 자란 자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고 했다. 새사랑교회 소명은 자녀는 “저도 모르게 예배 시간에 눈물이 났고 공감되며 위로가 되었습니다. 마을 모임 시간에 더욱 친해질 수 있었고 같이 더욱 위로를 해 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라고 했고 정산중앙교회 이은총 자녀는 “시골에 살아서 주위에 목회자 자녀가 한 명도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여러 자녀들과 공감하게 하시고 눈물 흘리게 하셨습니다. 나의 교회를 더욱 사랑하고 섬기겠다고 다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라고 했다. 이번 ‘제33회 전국목회자자녀세미나’를 총괄 진행한 목회자사모신문 발행인 설동욱 목사(예정교회)는 “히브리서에 보면 모이기는 폐하는 사람들과 같이 하지 말고 모이기를 힘쓰라고 했는데 갈수록 기독교 단체에서 진행하는 세미나 또는 수련회 등에 참석하는 이들이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목회자자녀세미나는 더욱 모이기가 어려운 상황과 환경임에도 섬기는 스텝까지 이백명의 목회자자녀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뜨거운 찬양과 기도를 통해 치유받고 살아갈 힘과 비전을 세우는 세미나가 되었습니다. 목회자자녀세미나를 진행할 때마다 이 일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진행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이번에도 하나님은 참석한 목회자자녀들을 만나주셨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회개와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하시고 치유해주셨습니다. 그들이 새롭게 살아갈 힘을 주시며 세미나 기간동안 마음껏 울고 마음껏 웃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 돌려 드리며, 앞으로도 목회자사모신문을 위해서 관심과 기도를 부탁드리며 특히 6월에 예정교회 다산 새 성전에서 진행될 전국목회자사모세미나를 위해서도 기도와 참석 부탁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라고 전했다.
-
교단의 자율권과 지교회 자율권과의 관계유형교회는 참 신앙을 고백하는 세계의 모든 시대와 장소에 있는 모든 사람과 그들의 자녀로 구성된 한 결사(집합체)이다. 무형교회는 교회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 밑에 하나로 모였으며, 모이고 있으며, 장차 모일 택한 자의 총수이다(대요리문답 제62, 63문). 유형교회는 예배모범이 필요하고 교회 조직이 필요하다. 삼권분립 체제는 인간의 연약성에 근거하듯 유형교회의 조직적 체계는 인간의 전적 타락과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구원에 근거를 둔다. 성경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심을 받았다는 사실과 그 이후에 불순종으로 인하여 죄에 빠졌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의 법(法), 즉 하나님께서 그의 피조물 속에 제정하신 그의 규례들에 부합되도록 살아야만 한다. 이 법은 대부분 음성을 통해 인간에게 전달 되었다기 보다는 인간의 존재 그 속에 새겨져 창조되었다. 인간은 그가 하나님의 법을 순종하고자 할 때에만이 그의 자신의 본성과 일치한 행동을 하게 되어 있었고 역으로 본성과 일치한 행동을 하려면 결국 하나님의 은혜의 법을 순종하기 마련이다. 인간이 범죄하였을 때 그가 행한 일이란 모든 면에 있어서 하나님 없이 자기의 뜻대로 뭔가를 하려고 시도한다. 자신들의 성을 건축하고 하나님과 단절에 의한 소외를 극복하기 위해 수단들인 각종 문화를 만들어 낸다. 그러한 문화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보다 하나님 없는 인간의 타락한 본능에서 온 향락의 문화이다. 우리 신자들은 자신들이 어떠한 상태로부터 구원을 받았으며, 또 자신들이 무엇을 행하기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는지를 철저히 깨달음으로써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총을 마음껏 찬양할 수 있어야 만 한다. 인간의 자율(自律)에 근거하거나 그것을 전제로 삼는 모든 인간적인 해석들이 실상은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오랜 신앙의 여정이 필요하다. 인간의 자율에 근거하기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은혜와 복음에 근거하지 않는 사고나 유형교회 구조적인 체계는 하나님의 나라를 성취할 수 없다. 우리들의 인식이나 삶의 실천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계시만을 기초로 하여 세워진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주어진 자유(自由)의 개념이 자연주의자들의 자율(自律) 개념을 절충적으로 타협하면 안 된다. 복음은 마음대로 가감되거나 절충적으로 타협됨이 없이 있는 그대로 전파되어야 한다. 이 어두운 세상에서 우리들에게 희망이 있다면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증거 되고 믿게 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하나님의 거룩한 은총과 영광의 세계에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로 살아가도록 하는 은혜가 희망의 원천이다. 이러한 희망의 원천을 담아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성경에 근거한 하나님의 교회 모든 지체들은 인간적인 자기 본성의 생각과 지각에 의지하고 그 실행을 관철시킬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에 자신을 굴복시켜 교회를 섬기는 청지기의 사명을 감당하여야 한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에 따라 교회가 운영된다고 믿는다. 하나님의 주권이란 이 세상에 하나님 자신 이 외에 어떠한 다른 궁극적 권세도 없으며 이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하신 계획이 그것을 대적하는 모든 반대를 압도한다고 믿는다. 때로는 유형교회의 구성원들 중에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적자로 등장하여 교회를 혼란케 하는 경우들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이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진행된 교인들의 양심적인 투표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는다. 그러나 그러한 양심적인 투표보다는 비양심적인 투표행위로 하나님의 대적자가 되어 교회를 혼란케 하는 경우들이 많다. 모 교회 이야기이다. 담임목사가 정년은퇴로 원로목사가 되었다. 후임목사를 청빙하는 공동의회 투표에서 인위적으로 핸드폰 문자로 선거운동을 하였다. 그 결과 겨우 출석회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청빙투표에서 통과되었다. 교회는 노회에 담임목사 청빙을 승인해 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반대 측은 선거과정에서 교단 헌법에 인위적인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있는데 불법선거가 진행되었으므로 담임목사 청빙을 위한 공동의회 결의를 무효시켜 달라는 청원서도 올렸다. 교인들의 양심적인 투표를 거부하고 인위적인 불법선거는 본인의 불법성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 범죄 하게 하거나 덕을 세움에 방해되게 하는 범죄행위이다. 이러한 범죄 행위에 둔감한 것이 더 문제이다. 이제는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문제들이 공론화 되고 있다. 특정인의 독주 시대는 지났다. 요즘 교단의 자율권과 교회의 자율권, 교회의 자율권과 교인의 자율권에 대한 문제가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다. 교단의 자율권과 교회의 자율권이 상호 충돌 될 때 교단에 소속된 지교회의 자율권은 제한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교단의 자율권은 교회의 독립성과 종교의 자유원리를 침해하거나 박탈할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교단의 자율권과 교회의 자율권이 상호 충돌될 때에 교단의 자율권이 교회의 자율권이 앞선다는 논리는 교단이 지교회를 억압하거나 구속할 수 있다. 이런 경우 교단의 교권이 교회를 파괴할 수 있다. 교단의 교권으로부터 지교회의 자율권이 침해를 받을 때 지교회의 대항력이 있어야 한다. 그 대항력은 교회의 자치법규인 정관뿐이다. 지교회 정관이 없을 경우는 모든 교회 운영은 교단헌법에 따라야 하며, 이 경우 교회의 의지와 상관없이 교단에 의해 지배될 수도 있다. 그러나 교회가 정관을 제정하고 그 정관에 따라 운영될 때 교회정관과 교단 헌법이 충돌될 때 교회 정관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현재 국가 법원의 판례입장이다. 교회의 자기 결정권에 의해 정관으로 교회 재산을 당회가 처분할 수 있도록 법제화 할 경우 교회 재산은 목사와 장로가 처분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이 경우 특별한 경우 교회 총의에 의한 결정이 아니라 목사와 장로의 결정으로 교회의 많은 재산이 처분되어도 불법행위가 구성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이다. 이 경우는 재산처분 과정에서 불법행위가 발생되었을 때 손해배상 책임의 범위와 한계, 그리고 반드시 처분된 재산은 처분한 날로부터 1개월 안에 공동의회에 보고하여 재정결산 승인을 받도록 하는 규정을 두지 아니하면 교회 정관이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부분들이 고려되어야 한다. 교인의 양심의 자유에 의해 교회의 자유가 집행되어져야 하며, 교회의 자유에 근거한 양심의 자유 집행은 상호 균형과 견제를 이루게 한다. 마찬가지로 교단의 자율권과 교회의 자율권은 상호 견제와 균형을 갖도록 하여야 한다. 현행 대법원은 교단의 자율권과 교회의 자율권이 서로 충돌할 때 교단의 자율권이 우선한다는 판례입장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같은 대법원의 판례 적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교회 정관상으로 교단의 자율권과 교회의 자율권에 대한 견제와 균형을 위한 규정을 정비하여야 한다. 이런 경우 법원의 판례 입장은 교회 정관을 우선하여 판단한다.
-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제1대 총회장 언더우드 목사옛날 예루살렘교회의 세 기둥이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였다면, 한국 초대교회의 언더우드 아펜젤라 마펫은 바로 주춧돌과 같은 이 땅에 교회를 개척한 3대 개척 선교사였다. 조선선교 50주년을 맞은 신학지남은 이 들 선교사들의 고마움과 불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한 특집호를 실었는데 거기 서두에 이런 글이 나온다."그들은 손을 펴서 천주(天柱)를 만지려는 의기충천의 20당년에 순교자의 정렬을 품고 대양을 건너 우리 조선에 그 피를 부은 이들이다. 그들의 뿌린 씨가 백배 천 배의 열매를 맺어 50주년을 맞는 금일에 40만 가까운 신도를 가졌으니 감사할 바 아니랴"언더우드는 이들 중에 실지로 개척선교에 많은 공헌을 한 유일한 분이었다. 해리 로즈의 표현처럼 "개별 선교사들을 많이 한국에 오게 한 지도자"였고 스피어 박사는 "미국에 올 때마다 "선교의 횃불을 높이 들었던 지칠 줄 모르는 참을 성 있는, 불굴의 사람"이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아니했다.그는 일찍 1859년 7월 19일 영국 런던에서 화학자요 발명가인 아버지 존 언더우드의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잠시 그의 집안 내력을 보면 할아버지 토마스는 독실한 믿음의 사람으로 18세기 영국과 스코트랜드 교계에 명망이 높은 알렉산더 우오 목1사의 사위였으며 직업은 의학서적 등을 간행한 출판업자로서 진실한 분이었다. 아버지 존은 역시 신앙인으로 특별히 발명의 재질이 뛰어나 인쇄용 잉크, 타자기, 묵지(리본), 안전지 등을 발명하여 영국 왕실예술원으로부터 메달과 표창을 받았던 과학자였다.외할아버지 알렉산더 와우 박사는 런던선교회 심사위원회 위원장이며 각 교파 교단과의 연합운동을 주도하면서 웰즈교회를 시무한 장로교 목사였다.그러고 보면 언더우드는 외조부의 연합정신과 친 할아버지의 사업수완과 아버지의 발명 재질을 겸한 만능 스타일의 인물이었다.그의 어릴 적 시절에 이런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언더우드는 예의 바른 소년으로 가게에 들어 설 때에는 언제나 모자를 벗고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했다. 그런데 나올 때에는 모자를 놓고 나오는 일도 종종 있었다. 이것은 어떤 일에 공상을 하다가 현재의 입장을 잊어버린 것으로 그의 건망증을 놓고 가족들 사이에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그의 성격이 훗날 미지의 땅에 선교의 꿈을 꾸게 한 원동력이 된 것이다.한 번은, 언더우드가 집에서 쓸 물건을 사기 위해 5달러짜리 지폐를 들고 가게에 간 적이 있었다. 가는 도중에 다른 생각을 깊이 하면서 쥐고 있던 지폐를 한 조각 한 조각 찢어 버린 것이 가게에 거의 도착하고서야 알게 되었다. 얼마나 황당하고 어처구니 없는 일인가? 이러한 행동을 낳은 정신구조는 훗날 그가 신경을 써야 하는 일에는 놀라운 집중력을 기울일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어릴 때 그는 형제들과 같이 히브리서 전체와 시편 119편 그리고 다른 성경요절을 외우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집안에서는 가족들이 모여 성경을 읽고 교회에서는 아이들과 놀이를 할 때에 그는 의자 위에 올라가 정식 예배시간과 같이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를 했다. 언더우드는 13살 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미국으로 건너가 화란교회에 등록, 장래 목사를 꿈꾸며 해스브룩 학원에 입학, 개인교수로부터 서양고전을 배웠다. 1881년 뉴욕대학교 졸업 후 뉴 부룬스위크 소재 화란개혁신학교를 84년에 졸업, 뉴욕대학교 문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인도 선교사로 갈려는 꿈을 접고 미지의 조선에 가기로 결심한 후 12월 16일 일본으로 출발했다. 도착 후 2개월 체류하는 동안 이수정과 다른 망명객들을 통해 조선에 대한 지식을 얻고 이수정 번역의 마가복음 성경을 가지고 1885년 4월 5일 제물포에 아펜젤라 내외 등과 함께 도착했다. 어더우드는 7일에 입경한 지 3일이 되는 4월 10일부터 광혜원 의학 생들에게 물리화학을 교수하기 시작하여 그 후 31년간 조선선교를 위해 그의 땀과 눈물과 피를 쏟으며 주께서 맡기신 사명을 다한 후 1916년 10월 12일 향년 58세를 일기로 조선교회에 큰 업적을 남긴 채 미국 애틀랜타시에서 하나님 품으로 돌아갔다. 백낙준 박사는 언더우드 선교사를 다음 8가지로 구분하여 그의 성격과 업적을 평한 바 있는데, 여기서는 4가지로 줄여 서술할까 한다.1. 선교사로서의 언더우드우리 말의 이름인 원두우 목사는 조선에 와서 다방면의 사업을 벌렸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선교사요 전도인이었다. 모든 활동은 전도사업의 보조사업으로 삼은 것이지 그것이 전업은 아니었다. 그는 경성과 소래에 교회를 처음으로 세웠고 경성과 경기서부 그리고 황해도 일대에 목사로 다년간 시무하였고 이 지방에 전도한 선교사였다.2. 학자로서의 어더우드그는 어학에 특별히 재주가 있어서 회화설교와 교수에 조선어를 무난히 사용했다. 학문에도 조예가 깊어 4서3경을 이용할 정도였다. 그 외 서적과 전도서류의 편찬 신문발행 성경번역을 했다. 그가 신구약 성경을 번역할 때 가장 고심한 어휘가 하나님이었다. 처음엔 신<神>을 택할까? 천주<天主>나 상제<上帝>로 할까? 교계의 변론이 많았으나 하느님으로 하다가 최종 하나님으로 택한 것은 모두 그의 공적이었다.그리고 조선문화를 위해 조선어문법을 저술하였고 한영사전 간행 그 외에도 교회에서 사용하는 문체와 철자법에도 그의 수고가 잘 반영되었다.3. 교육가로서의 언더우드그가 처음으로 입국하여 광혜원의 의과학생을 가르치는 것으로 조선교육의 문을 열었는데 그 후 고아원(경신학교 전신)과 예수교학교를 세웠으며 새문안교회 부속 협성소학교를 설립, 에비슨 박사와 협력 세브란스 의학교를 조직했다. 그리고 그가 시무하는 교회마다 초등교육기관을 설립했다. 교회사역자 양성을 위해 피어슨성경학원 설립, 원장의 일을 보았다. 평양신학교 설립에 힘썼고 교회 각 학교를 위한 조선교육협회를 조직하였고 사무실을 사저에 두기도 했다. 그는 말년에 경성에다 최고학부를 두기 위해 서북지역 교계 지도자들의 강력한 반발을 다년간 몸소 겪으면서 결국 연희전문학교를 세우는데 성공했다. 마펫과의 학교 설립 이견으로 크게 상심하여 오늘날 후손들 사이에 교류가 없을 정도로 당시는 서북파와 비서북파 사이에 충돌은 컸다.4. 여행가로서의 언더우드그의 국내 전도여행은 1887년 10월부터 1914년까지 무려 11차에 걸쳐 강행되었는데 대체로 벽지의 교회 개척과 순회전도를 위한 것이었다. 전국을 통해 주요 지역에는 그의 발자취가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동경에도 여러 번 여행하였고 중국에도, 노령 해삼위에도 갔다. 시베리아 철도를 통해 유럽에 다녀왔고 인도양 바다를 거쳐 근동 각처와 성지순례를 하였고 유럽대륙을 수 차례, 미국과 카나다 각지를 순례하여 조선선교의 현황을 보고하였다. 이렇게 외국 여행을 많이 한 것은 여느 선교사들에게는 상상도할 수 없는 일로써 이 모두가 사업을 하는 형의 후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5. 정치가로서의 언더우드그의 정치적 수완은 다른 사람의 역량 부족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해내는데 있었다. 조선에 미국 남장로교회의 선교사업을 하게 한 것은 바로 언더우드의 공적이었다. 이눌서 일행에게 감동을 주고 그 열렬한 청년들을 위하여 재력을 동원함으로써 다리를 놓아준 것이다. 그리고 카나다에 가서 카나다장로교회로 하여금 조선에 사업을 착수케 한 것도 언더우드였다1910년에는 동료들과 협력, 조선을 홍보하기 위하여 미국 카나다 양국의 각지를 순회하여 새로운 많은 선교사들을 모집하고 근 20만 불의 거금을 후원 받아 교회 각 기관의 기초를 견고케 했다.6. 언더우드는 또한 비범한 통찰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조선교회의 근본적인 원칙이란 자립경영 토착교회 설립 교파의 연합 등인데 이 모든 것을 다 그의 연구와 노력에서 기초를 세운 것이다. 교파간의 경쟁을 피하기 위하여 선교구역을 확정하고 또 각 선교기관을 연합하기 위해 선교사연합회를 조직했다. 또 서해안을 순회하다가 장연군 구미포가 선교사들의 휴양지로써 최적한 줄로 알고 땅을 매입하여 별장들을 짓게 한 것이다. 주야로 전도에 노력하는 선교사들에게 휴식의 필요성을 감안한 것도 바로 그의 정치적 수완이었다.7. 언더우드는 또 주색잡기에 허랑방탕한 조선의 청년들을 나라의 역군으로 양성하기 위하여 조선기독교청년회를 조직하고 회장이 되어 많은 업적을 남겼다. 중국과 일본의 청년회와 제휴하는 등 그 활동영역을 넓혀 갔다.평화의 사자로서의 언더우드그가 조선에 머물던 31년간은 정치적으로 혼란과 갈등의 시기였다. 갑신정변 이후 청일전쟁, 노일전쟁, 을사조약, 한일병탄 등을 목도 했다. 그는 일찍 고종의 신망을 받던 인물로서 민비 시해 이후 고종의 신변상의 위험이 왔을 때 궁중에 들어가 전후 7주간 입궐숙직을 하였고 왕의 식탁음식에 독이 들어있는 지를 감식했다. 의친왕의 미국 유학 시에도 고종의 자문에 응하였고 그 일에 수고를 아끼지 아니했다. 그리고 몇몇 인사들의 정치적 망명을 도왔는데 선교사로서 인도적 행동을 그 때 그때마다 과감히 보여줬다.8. 끝으로 그는 용기의 인물이었다. 어더우드 가문에 이런 가훈이 내려 오고 있다."불가능을 보고 비웃어라 그러면 그것이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laughs at impossibilities and it shall be done) 이런 생활상의 표어가 물론 성경에 근거한 것이지만 그의 생애를 사로잡았다는 것이 돋보인다. 후퇴는 없었고 항상 긍정적인 사고와 거기에다가 맑은 양심, 꾸준한 노력, 그리고 밝은 희망을 가지고 진전했기 때문에 선교의 불모지 이 땅에 그토록 찬란한 금자탑을 세울 수가 있은 것이다.그의 용기는 신체적 고통을 참는 데도 볼 수가 있었다. 1910년 여름이었다. 장연군 구미포에 피서 차 갔다가 실족하여 발을 삐는 중상을 입었다. 그 곳엔 의료시설이 없었고 교통이 불편하였는데 상한 다리를 가지고 들것에 누어 이틀을 견디며 재령에 와서야 응급치료를 받았다. 이런 위급한 지경에도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견뎌낸 것은 그의 정신적 용기가 큰 보탬이 되었다.그는 또한 만능 탤런트였다. 박사는 자기의 능력과 정력이 미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그냥 지 내친 것이 없다. 목수, 난방장치, 건축공사, 학문으로는 신학, 문학, 법학, 철학, 자연과학을 정통하였고 의학에 있어도 직간접적으로 공헌한 바 적지 않았다. 의학생을 교수하고 그 부인의 의료사업을 후원하였고 조선학에도 또한 조예가 깊었다. 어학, 사전, 고유종교, 풍속관습, 사회제도에 남겨둔 저술이 많다.사업에도 다방면이었다. 교회사업치고 그의 손길이 안간 데가 없다. 이처럼 다방면에 그의 수고가 가미 되어 진 만큼 그야말로 전 조선교회의 사람이었다. 한 지방에 국한되지 않고. 자기가 관계한 사업만 중시한 것이 아니라 경향의 차별이 없었고 전도, 교육, 의료사업에도 차이를 두지 아니했다. 모두 조선민족의 구원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으로 본 것이다.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도 사람인지라 독단적이라는 동료들의 비난도 많이 들었고 조송하다는 비판도 없지 아니 했다. 넉넉한 선교비로 다른 선교사들로부터 부러움과 오해를 쌌지만 사실은 그 때나 오늘이나 그런 유의 비난과 비판은 늘 있어 온 것이었다. 그의 인격은 만대에 사표로 남아있고 그의 이상은 오늘 우리의 귀감으로 살아 있는 것이다. ♤ 언더우드의 기도문시 ♤ - 언더우드선교사 - 주여,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을 옮겨 와 심으셨습니다. 그 넓고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 뜨려 놓으신 듯한 이곳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 사람들 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줄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 주겠다고 하면 의심부터 하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질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지금은 우리가 서양 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사오나, 저희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의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이 소중한 기도문을 이렇게 전합니다. 다시금 복음의 소중함과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이 귀하게 떨어짐의 감사함이 배로 넘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 주님을 위한 막노동꾼 -
-
[칼럼] 신정주의 목회 - "주도적 목회"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기관이다. 거룩한 신정주의를 이루는 곳이다. 주인이 하나님일 뿐 아니라 신정주의가 온전히 이루어지는 곳이다. 이것을 만드는 곳이 바로 당회이다. 거룩하고 복된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헌신하는 것이 당회원이다. 거룩한 신정 의회 의원은 얼마나 복된 사람인가? 그런데 이 복된 자리에서 망하는 사람들이 있다. 신정주의를 위한 훈련을 잘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정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우선 교회 중직자들에게 신정주의 훈련을 철저하게 해야 한다. 중직자들이 어떤 의식을 가지고 교회를 섬기고 헌신하느냐가 바른 신정주의 교회를 이루는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먼저 참고로 신정주의를 위한 나의 목회 철학 가운데 “주도적 목회”를 소개한다. 목회자들이 주도권을 잃는 경우가 있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중직자나 교인들의 눈치를 보면서 목회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목회자 개인을 위해서도, 교회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 신정주의 목회를 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담임목사가 영적인 주도권을 가지고 이끌고 가야 한다. 이것은 한 개인의 뜻을 앞세우기 위함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과 뜻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모세, 다윗, 선지자, 사도 등과 같은 신정주의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은 영권을 주시고 주도적으로 이끌고 갈 수 있는 힘을 주셨는데, 이는 온전한 신정주의를 이루기 위함이었다. 현대 교회 또한 신정주의를 이루기 위해 담임목사가 주도적 목회를 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목회작 인프라이다. 현대 사회는 그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빠르고 다양하여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개인적인 발전과 도태의 결과를 낳는다. 이러한 때 신속성이 없이 그저 방어하기에 급급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어떤 문제와 사안에 대해 끌려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목회도 마찬가지이다. 담임목사가 신정주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교회 안의 문제들에 대해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하지만 방어적 목회나 소극적인 대응 목회를 하고 있다면 신정주의를 성공할 수 없다. 현시대의 담임목사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신정주의를 이루기 위해 성도들을 주도하고 시대와 문화를 주도하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대응적, 방어적 목회를 해서는 실패한다. 새로운 목회 패러다임이나 프로그램이 나왔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고 방치하다가는 큰 곤경을 당하는 일들이 가끔 있다. 그것은 교회 안에 어떤 프로그램이나 새로운 체계를 도입할 때도 부교역자나 중직자들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담임목사가 중심에 서서 주도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 보면, 그 첫 번째가 ‘주도적이 되어라’이다. 자기 스스로 문제의 한복판으로 들어가 주도하고 이끌고 갔을 때 성공할 수 있다. 방어적이거나 수동적인 자세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어떤 문제가 압박해 올 때 주로 수동적으로 처리하려 한다. 그리고 본인이 직접 처리하려 하지 않고 누군가를 시켜서 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런 방식은 신정주의 교회를 회복해 가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가 자신을 압박해 오기 전에 본인이 직접 나서서 주도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고 생산적인 갈등 해결을 이룰 수 있다. 신정주의의 훌륭한 지도자들이었던 모세와 다윗과 같은 사람을 보라. 그들은 늘 문제의 한복판에 서서 하나님과 의논하며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자기 스스로 역사와 개인의 삶 한가운데 주인공이 되었다. 엑스트라가 되어 비겁하게 무대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인물이 아니었다. 이처럼 교회의 교육, 행정, 심방, 문화 등 모든 분야에 이르기까지 담임목사의 목회 철학과 뜻이 주도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할 때 신정주의 교회를 회복할 수 있다.(*)
-
목회자 종교인소득 vs 근로소득,'어느 쪽이 유리한가?소득이 있는 곳에는 세금이 있다는 말이 있다. 어느 누구라도 소득이 있으면 세금을 내야한다는 말이다. 소득세는 개인의 소득에 대한 세금이다. 소득세에는 종합소득세, 퇴직소득세, 양도소득세가 있고, 이 중에 종합소득세에 속하는 소득은 이자소득, 배당소득, 사업소득, 연금소득, 근로소득, 기타소득이 있다. 그 동안 종교인소득에 대하여는 과세를 하지 않다가 2018년소득부터 종교인 과세를 하고 있기 때문에 2월말 일까지는 연말정산을 하고 3월 10일까지는 신고납부를 해야한다. 종교인소득은 원칙적으로는 기타소득에 속하지만 종교기관의 편리를 위해 근로소득세 또는 기타소득으로 선택하여 신고할 수 있도록 하였다. 1. 근로소득이란? 명칭여하를 불문(봉급, 급료, 보수, 세비, 임금, 상여, 수당, 직무발명보상금 등)하고 고용관계 또는 이와 유사한 계약에 의하여 근로자가 근로를 제공하고 받는 모든 대가. 즉 근로의 대가로 지불되는 소득에 대해 부과·징수되는 직접세로, 그 범위는 <소득세법> 시행령 제43조에 규정되어있다. 2. 종교인소득이란? <소득세법 제21조제1항제26호>에 규정되어 있는데, 종교관련 종사자가 종교의식을 집행하는 등 종교관련 종사자로서의 활동과 관련하여 소속된 종교단체로부터 받은 소득을 말한다. ○ 종교관련 종사자(이하 ‘종교인’)는<소득세법 제12조제5호아목>에서 「통계법」 제22조에 따라 통계청장이 고시하는한국표준직업분류에 따른 종교관련 종사자*를 말한다 라고 규정하고 있고 다음과 같다. - 성직자 : 목사, 신부, 승려, 교무, 그 외 성직자 - 기타 종교 관련 종사원 : 수녀 및 수사, 전도사, 그 외 종교 관련 종사원 ○종교단체는 <소득세법시행령 제41조제14항>에 규정되어 있는데, 종교의 보급 기타 교화를 목적으로 「민법」 제32조에 따라 설립된비영리법인, 「국세기본법」 제13조에 따른 법인으로 보는 단체, 「부동산등기법」제49조제1항제3호에 따라 부동산등기용 등록번호를 부여받은 법인 아닌 사단·재단으로서, 그 소속 단체를 포함한다. 3. 종교인 과세대상소득은? 종교인이 종교의식을 집행하는 등 종교관련 종사자로서의 활동과 관련하여 소속된 종교단체로부터 받은 소득이 대상이다. 다만, 종교인소득 중 법령에 따른 본인 학자금, 식사 또는 식사대, 실비변상적 성질의 비용(일직료·숙직료, 여비, 종교활동비, 재해 관련 지급액), 출산·6세 이하 보육수당, 사택제공이익은 종교인소득으로 신고 시 과세대상에서 제외하도록 <소득세법 제12조제5호아목>에서 규정하고 있다. 4. 그렇다면 어느 소득으로 신고하는 게 좋을까? 첫째, 소득이 얼마나 되는가? 다른 소득이 있는가? 여부에 따라서 다르다. 대체적으로 고소득자들인 경우에는 종교인 소득으로 신고하는 게 유리할 것이고, 저소득자들인 경우에는 어느 쪽으로 신고를 해도 세금에는 별차이가 없거나 세금이 아예 없는 경우가 많다. 다른 소득이 있다면 모든 소득을 합산해서 5월에 종합소득세 신고를 다시 해야 한다. 둘째, 공제 대상과 금액이 어떤 게 있는가? 여부에 따라 다르다. 주택자금대출을 받았고, 신용카드 사용금액이 많고, 장기펀드에 가입을 했으며, 의료비와 교육비 지출이 많은 경우에는 근로소득으로 신고하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다. 이 경우에도 소득이 어느 정도이냐에 따라 다르다. 셋째, 재산이 얼마나 있는가?에 따라 다르다. 소득은 적은데 차량을 소유하고 있고, 재산이 많은 경우에는 건강보험료 등을 따져보면 근로소득으로 신고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넷째, 사고나 실업급여 등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근로소득으로 해야 한다. 만약의 사고가 발생했을 때 종교인 소득으로 신고하면 산재처리가 불가능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종교기관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또한 소위 말하는 부교역자나 기타 종교 관련 종사원들은 본인의 의사와 관계 없이 해고가 되어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어서 곧바로 생계의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결론적으로 종교인소득은 어떻게 신고하는 것이 좋은지는 개개인마다 달라서 많은 고민을 하게 한다. 그렇지만 대부분 저소득층에 속하는 부교역자나 기타 종교관련 종사원들을 위해서는 근로소득으로 신고하고, 4대보험을 가입해서 최소한의 사회보장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종교기관들이 추구하는 가치와도 부합되리라는 생각이다. 말로만의 사랑이나 자비가 아니라 이런 일에서부터 약자들에 대한 배려가 시작되기를 기대하면서 글을 맺는다. 김종택 박사 / 수원대학교 공공정책 대학원 교수, 세무실무 30년, 한국교회법연구소 연구위원, 예장합동 교단 소속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