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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주일 설교] 허탄한 듯 보이는 예수님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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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주일 설교] 허탄한 듯 보이는 예수님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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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역설적인 면이 있습니다. 던마크 철학자 키엘케고르는 기독교 신앙을 역설로 가득 차 있는데 그 역설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요, 그 역설 때문에 거리껴 넘어지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파라독스”라고 하는 이 역설이라는 말은 표면상 논리적인 모순인 것 같은데 사실은 아주 높은 차원의 진리를 포함하고 있는 것을 뜻합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장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바로 이런 역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낮은 자가 높아지고 하나님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자가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같은 것들은 꼭 정 반대 되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것이 무슨 말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이같은 이야기의 이면에는 더 깊은 진리가 숨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역설적인 진리를 우리들은 믿는다. 주후 2-3세기에 살았던 로마의 법률까요, 평신도 신학자였던 ‘터툴리안’은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모순되기 때문에 믿는다”, 즉 성경이 가르치는 것이 논리적이면 오히려 믿을 가치가 별로 없지만 그것이 비논리적이기 때문에 믿을 가치가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은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 인간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비논리적인 것으로 비춰질지 모르지만 이것은 엄연한 진리입니다. 이같은 부활의 복음을 통해서 큰 은혜를 받는 부활주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1. 부활을 허탄한 이야기로 믿지 않는 사도들
  
오늘 읽은 누가복음 24장에는 부활 사건을 역설적인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인들이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에 가보니 무덤은 비어있고 천사들이 나타나서 예수님은 부활하셨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여자들이 처음에는 놀라서 어쩔 줄을 모르다가 나중에 제자들에게 가서 보고를 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반응이 24:11절에 기록됩니다.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즉, 그 여자들이 말하는 것이 허탄하게 들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허탄하다”라는 말은 신약 성경에서 여기만 나오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무의미하다, 난센스다, 혹은 쓸데없는 소리다” 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 말은 그 시대에서는 의학 용어로 어떤 사람이 열병에 걸려 병이 너무 심해서 중얼중얼 헛소리 하는 것을 이 “허탄”이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하는 소리를 제자들은 마치 열병 걸린 사람이 제 정신을 잃고 헛소리하는 것처럼 그렇게 이해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의 부활은 결코 허탄한 이야기가 아니다
  
첫째, 제자들이 여자들의 말을 들었을 때 그것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소리로 들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을 직접 보았고 그 무덤밖에 큰 돌을 갖다 놓고 심지어 거기에 봉인하는 것을 다 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무시하고 믿지 못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믿음의 기준을 자신들이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 시대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에 한 번도 경험해 본 일이 없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는 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둘째, 이 ‘허탄하다’는 말은 ‘난센스다,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무의미한 말이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과 빈 무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들었습니다. 그들의 사고방식으로는 예수님의 부활은 헛소리였습니다. 그런데 말도 안 되는 그 헛소리가 나중에 가장 말이 되는 의미 있는 이야기가 될 뿐만 아니라 모든 의미의 근원으로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허탄하다고 말하는 그 소리가 오히려 허탄한 말이 되었습니다. 부활은 의미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에게 가정 큰 의미를 제공해 준 우리 삶의 모든 의미의 근본이 되는 의미입니다. 
  
셋째, ‘허탄하다’는 말은 “쓸데없는 소리, 아무 도움도 안되는 소리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무엇이 쓸데 있다’ 또는 ‘쓸데 없다’라는 기준을 정해 놓고 그 기준에 의해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쓸데없는 소리’라고 본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은 사실로 드러났을 뿐만 아니라 쓸 데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아무 소용없는 것 같이 들렸을지 모르지만 사실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고전15:14절에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라고 말씀합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가장 불쌍한 자가 될 것입니다.
  
3. 사도들은 왜 허탄한 행동을 하고 있는가?
  
눅 24:5절에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라고 합니다. 이들의 행동이 허탄한 짓입니다. 본문 24:6절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7절에서는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같은 말씀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허탄한 행동을 한 것입니다. 자기들이 허탄한 짓을 하면서 오히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하는 그 사실 자체를 허탄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부활을 믿지 못합니까? 그것은 예수님을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 생각의 기준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실 때 출세하려는 데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천군 천사들을 불러다가 로마를 다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회복하려는데 한몫 참여해야겠다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자신들의 경험과 자기들의 생각으로 말씀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부활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얼마나 허탄한 생각입니까? 자기 나름대로 생각했기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찾은 어리석음을 범한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들이 예수님이 갈릴리에 계실 때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라”고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들이 자꾸 잊어버리니까 기억하라고 한 것입니다. 
  
결 론 
  
우리들이 세상적으로 너무나 똑똑해서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허탄한 이야기로 듣는 허탄한 사람이 되면 안 되겠습니다. 세상의 똑똑함이 오히려 나에게 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허탄한 사건으로 돌림으로 인생의 참된 삶을 살지 못한 자들이 되면 안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 말씀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말씀입니까?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예수님과 같이 부활 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같은 약속의 말씀을 믿지 못하여 허탄한 인생을 사는 자들이 없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말씀사역원 - 소재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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