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일)
1932년 9월 14일에 토마스 기념예배당 헌당식을 가졌는데 남쪽 외벽에는 초대교회 라틴 교부 터툴리안이 말한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The blod of the martyrs ithe sed of the Church)”라는 문구를 새겼다.
한국가톨릭교회는 무려 100년 동안 1만 명이 넘는 성직자와 신자들이 순교를 당하였다. 한국가톨릭교회가 한국선교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에 한국 개신교 선교사들이 입국하여 한국 개신교 선교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개신교 첫 선교사가 입국하기 전에 이미 직간접적으로 개신교 선교사 이루어졌다. 이를 공식적인 한국 개신교 선교 출발로는 삼지 않는다.
네덜란드 개신교인 벨트브레(박연)의 내한과 귀화로 인한 선교가 있었다. 그는 동양에 왔다가 이듬해인 1627년 우베르케르크(Ouwerkerk)호를 타고 일본으로 향하던 중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제주도에 도착하였다. 개신교 국가인 네덜란드에서 그리스도교인으로 자랐으며 기독교 교리로 양육 받은 사람답게 천지와 인명이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음을 설파하기도 했다. 그는 조선에 들어와 살았던 최초 개신교인이라는 점에서 독특한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
하멜 일행의 내한이다. 하멜(Hendriek Hamel) 일행은 1653년 8월 15일 네덜란드에서 일본을 향해 항해하는 도중 폭풍우를 만나 제주도 남쪽 화순포(和順浦) 앞바다에 표류하다가 가까스로 살아남게 되었는데, 그는 귀국하지 못하고 한국인과 결혼하여 정착했으며, 1666년 억류 생활 끝에 탈출하여 1668년 귀국하여 하멜은 조선에서의 억류 기간 도중 받지 못한 임금을 청구하려고 보고서를 썼다.
영국인 맥스웰과 바실 홀의 한국 접촉과 성경전달 사건이다. 알세스트호(Alceste)의 선장 맥스웰(Muray Maxwell) 대령과 함께 서해를 탐사하였다. 홀은 「조선서해탐사기」라는 기록을 남겼다.
한반도 서해안을 탐사한 것은 1816(순조 16년) 9월 1일부터 10일까지였다. 그의 일행은 잠시 육지에 상륙하여 비인(庇仁) 현감 이승렬(李升烈)과 마량진(馬梁鎭) 첨사(僉使) 조대복(趙大福)을 만나 수화(手話)로써 의견을 나누면서 성경을 전달했다. 충남 서천군 서면 마량진이 성경이 최초로 한국에 전래한 지점이라는 것은 최근에서야 역사적 사실로 고증되었다.
귀츨라프의 한국선교이다. 우리나라에 내한한 개신교인으로는 네덜란드인 벨트브레 일행과 하멜 일행이 있었으나, 그들이 구체적으로 복음을 전파한 사례는 찾아볼 수 없고, 단지 프로테스탄트 교인이 내한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을 뿐이었다.
그 후 상거래 탐색을 하려는 외국 상선에 탑승해 우리나라에 온 개신교도인 귀츨라프 선교사는 가는 곳마다 성경을 직접 전달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등 직접적인 선교를 한 최초의 인물이다. 그의 조선 선교 방문은 순교한 토마스 선교사보다는 34년, 의료 선교사 알렌보다 52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보다 53년이나 앞선다. 제너널셔먼호 사건과 토머스 선교사의 순교이다. 그래함 리와 언더우드는 토마스가 조선에 성경을 반포하러 온 첫 번째 장로교 선교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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