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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폼드뉴스) 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에서 1985년 1월에 김영구 목사에 의해 일반대학교원 석사학위 논문이 발표되었다. 논문 제목은 “구속사적 설교론”이었다. 부제목으로 “Greidanus 와 Clowney의 이론을 중심으로”였다. 이 논문에 대한 지도는 정성구 교수였다. 1985년 고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신득원의 “구속사적 해석 원리에 관한 연구”가 발표되었다.
정성구 교수는 제자의 구속사 설교 논문을 마친 이후 1987년 「신학지남」(제54권 4집)에 “구속사적 설교의 원리와 방법”의 논문을 발표했다. 총신대학교에서 김영구 목사의 논문이 발표된 해의 봄에 신성종 교수는 “해석학적 입장에서 본 한국 강단의 문제점”(「신학지남」(제52권 1집)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모두 다 그레다이누스의 박사학위 논문에 근거했다.
구속사 설교 논쟁의 한 중앙에서 이를 변호했던 네덜란드 (작은) 캄펜신학교의 구속사를 옹호했던 고재수(N.H.Gootjes) 교수가 부산 고신대학교에서 교수로 봉직하면서(1980~1989년) 1987년에 「구속사적 설교의 실재」(CLC)를 출판했다.
필자는 1986년 2학기에 미국 칼빈신학교에서 신학석사 학위(Th.M) 학위를 마치고 돌아온 류호준 교수(백석대학교 구약교수로 은퇴)로부터 “구약사”에 대한 한 한기 강의를 들었다. 이 강의는 철저히 원고에 의한 강의였다. 여기서 필자는 많은 도전을 받았으며, 구약성경에 관한 성경관을 학문적으로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강의는 총 9강으로 진행되었는데 미국 칼빈신학교를 졸업하고 화란 자유대학교에서 1970년에 실천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시드니 그레이다누스(Sidney Greidanus)의 “Sola Scriptura: Problems and principles in preaching historical texts”(오직 성경: 역사적 본문에 대한 설교의 문제점과 원리들)의 논문을 소개하기도 했다.
여기에 영향을 받은 필자는 1987년 신학교 때에 “에스더서와 구속사와의 관계성”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칼빈」(1987, 제5집). 부산 고신대학교 교수인 고재수 교수를 서울로 초빙하여 강의를 듣기도 했다.
필자는 1989년에 총신신대원 재학시 “구속사적 성경이해와 설교 이해에 대한 논문 및 자료 모음집”을 편집했다. 당시 한국교회 최초로 발표된 구속사적 설교와 관련된 학위 논문들을 모은 자료집이었다. 이 자료는 구속사 설교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정성구 교수는 1987년에 구속사 설교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 이후 자신의 설교학의 방향을 결정하기도 했으며, 당시 총대학교 신대원의 설교학은 구속사적 설교였다. 박희천 교수의 설교학은 구속사적 설교는 아니었다. 두 교수의 총신에서 설교학은 목회자들에게 그대로 투영되었다.
구속사 설교는 네덜란드 개혁교회와 마찬가지로 한국교회는 구속사 설교의 열풍이 불었다. 1980년대 후반 한국교회의 성장 이면에 원초적인 문제인 성경해석에 의한 설교에 관한 문제가 쟁점이 되었다. 주로 주제설교와 모범적 설교에 한계를 느낀 많은 목회자들이 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구약성경을 설교할 때 역사적 본문들을 단순히 하나의 모범적으로 사용할 때가 많았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등을 예로 들면서 우리도 이를 본받자는 설교를 아무런 비판없이 해왔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 계시의 역사성을 완전히 배재 해 버린 것으로 성경의 가록목적이 아니라는 논리가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앞서 언급한 그레이다누스의 박사학위 논문이 『구속사적 설교의 원리』(1989년)가 출판되었다. 초판에는 번역본에 자신의 구속사적 설교에 대한 학설을 서론에 첨부하였으나 나중에 이 부분이 삭제되었다.
구속사에 대한 붐이 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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