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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열목사 구속사 설교 해설 3] 기독교(그리스도교)의 성경 이해와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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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논단

[소재열목사 구속사 설교 해설 3] 기독교(그리스도교)의 성경 이해와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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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어떻게 이해하여 설교할 것인가? 설교는 목회자들에게 있어서 넘어야 할 태산과 같은 고지이다. 설교는 성경을 그 원천으로 하여 하나님을 소개하고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셨는가?

 

우리는 성경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하고 믿으면서 그분을 경외하며 숭배하며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가? 성경에 대한 하나님에 관한 이해와 믿음이 모호하면 신앙생활 자체도 모호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을 하나님 계시의 말씀으로 믿고 그 성경 계시를 통해 하나님 계시를 바르게 이해하는 일은 오늘날 설교와 신앙생활의 전 영역에서 너무나도 소중하다.

 

우리 교회를 기독교(그리스도교)라고 한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과 구원을 말할 때 죄로부터 구원을 말한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만큼은 그냥 용서해 주시는 일이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에 훼손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우리에게 임하여야 영생과 구원이 주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영생과 구원을 받는 방법은 인간 땅에는 없다. 오직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알고 구원이 임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교(기독교)라고 한다. 최근에 에드먼드 클라우니의 <성경 모든 본문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하라>라는 책이 번역되어 출간되었다(도서출판 다함). 이는 그리스도 중심 설교와 성경 읽기의 원리의 실제를 부제목으로 했다.

 

우리는 여기서 심각하게 질문해야 하는 것은 왜 성경 모든 본문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정직한 답변이 없는 한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는 또 다른 시행착오를 범할 것이다. 그리스도만을 강조한다는 것은 모든 성경을 다 말한 것은 아니다.

 

클라우니는 구약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한다는 것은 회당에서의 설교와 달리 구속의 드라마 전체를 고려하면서,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실현되었는지를 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본문을 그리스도와 연관지어 보는 것은 그것을 더 큰 문맥, 즉 계시 속에 드러나는 하나님의 목적의 맥락에서 본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 중심을 오해하는 경우에 대해서 그렇다고 본문이 주는 특정 메시지를 무시하거나, 만능으로 써먹을 수 있는 그리스도 중심 설교의 마무리를 써 놓고 매주 필요할 때 골라가며 쓰라는 말은 아니다라고 했다.

 

또한 그는 구약에 계시된 살아계신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확실히 성육신 사건은 아직 그림자 속에 있던 구약의 가르침에 빛을 비추어 주었다라고 말한다. 이어서 그는 구속사는 하나님의 언약적 약속에 따라 세워졌다라고 했다.

 

특히 구속사의 각 시대들은 삼위일체 제2위 격의 주되심을 보여준다. 구속사 속 모든 시대의 정점은 주의 오심이다라고 한다. 그는 구약성경을 구속과 계시의 역사를 통해 성취된 그리스도 안에서 그 의미를 파악하여 오늘날 설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해석에 있어서 도덕주의로는 성경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라고 말하므로 성경에 대한 적용 적 설명을 도적주의로 적용하여 설명하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모범적 적용과는 다른 개념이다.

 

클라우니는 전형적인 구속사 설교에서 구속 역사는 언제나 계시 역사와 함께한다.”, “구속사와 계의 역사가 전개되면서 계속해서 주님의 말씀과 행적이 함께 엮인다.”, “구약은 인간 역사와 구속사를 위한 하나의 위대한 계획을 따라간다. 이 계획은 구분으로부터 시작될 뿐이니라 성육신하신 아들 가운데 드러난 그분의 임재를 중심으로 세워진다라는 주장 등은 시드니 그레이다누스의 주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런 주장들은 종래의 구속사 설교가 구속사적 설교는 구속사적 해석이 아니라 구속사적 적용의 결과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참조, 채경락, “구속사적 설교는 해석인가, 적용인가?”).

 

 

오직 그리스도만을 설교해야 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자기계시와 구원이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구속사 설교는 왜 그리스도 중심인가? 여기에 대한 답변은 하나님의 구원이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주어지기 때문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이기에 결국 그리스도 중심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구원의 유일한 길이라고 본다면 결국 성경은 삼위일체 하나님 중심일 수밖에 없다.

 

논점은 하나님의 계시와 구원을 말하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강조해야 한다는 이야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는 그리스도를 강조한 이유가 하나님의 자기계시와 구원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계시와 구원은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 즉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강조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계시와 구원을 말할 수 없다. 이러한 형식논리가 무너지면 우리는 많은 시행착오를 범할 것이다. 구속사적 성경해석과 설교 논의에서 이 점이 간과한 점은 없는가를 심각하게 되물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삼위일체론적 그리스도 중심의 성경 이해, 설교여야 한다. 이러한 형식논리를 리딩하지 못한다면 성경의 핵심 논지를 놓치게 될 것이며, 2천 년 동안 무엇 때문에 기독교(그리스도교)가 투쟁해 왔는가를 망각하게 될 것이다.

 

; 시대 바른 성경 이해와 하나님에 관한 계시에 의한 지식, 믿음, 그리고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셨으며,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을 믿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여기에 자신의 반성 능력이 새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소재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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