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3 (월)
이번 주일은 어린이주일로 지킵니다. 어린이주일을 맞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린아이를 가정에 주시고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믿음 안에서 가정을 이루며 부모와 자녀의 사랑, 존경의 관계를 배우게 하십니다. 이것은 작은 천국입니다. 이 가정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배우고 알게 하십니다.
또한 하나님과 그 자녀된 성도의 관계를 알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도 부모님에게는 자녀였고 아이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부모가 되고 자녀를 낳아 기르게 됩니다. 자녀를 통해 그리고 가정을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과 자녀를 연결해서 이해하지 못하면 자녀를 우리의 소유물로 오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함부로 대하고 학대하게 됩니다.
1. 제자들의 질문(1)
본문 1절에 보면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제자들이 궁금한 것은 ‘천국에서 큰 자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유대교는 천국에서 큰 자가 되기 위해서는 율법을 지키고, 금식기도를 하고, 십일조를 잘하고, 할례를 행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즉 모든 것이 인간의 공로 사상입니다. 인간이 공로를 세움으로 천국에서 큰 자도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 바리새인들은 채소의 십일조도 드렸습니다. 마 23:23절에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합니다. 그들은 식물의 십일조까지 따져서 드리는 열성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눅 18:12절에 보면 바리새인이 기도하면서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라고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일주일에 2회씩 어김없이 금식을 했습니다. 소득의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신앙이 높고 위대하다는 것을 자랑했습니다. 이것으로 그들은 충분히 천국에서 큰 자가 될 수 있다고 여긴 것입니다.
이런 사상이 팽배했던 당시에 제자들은 예수님께 천국에서는 누가 큰 자인지를 질문한 것입니다. ‘크다’에 해당하는 단어가 원문에는 비교급 형용사(메이존)로 쓰였습니다. ‘가장 큰’이라는 뜻입니다. 천국에서 누가 가장 큰 자인지를 물은 것입니다. 율법으로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 바리새인들인가? 예수님을 따르는 자신들인가? 아마도 제자들은 후자의 대답을 듣기를 원한 것으로 보입니다.
2. 예수님의 교훈(2-3)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대답을 하셨습니다. 본문 2절에 보면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행동은 이상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한 어린아이를 부르셨습니다. 여기 쓰인 어린아이(파이디온)은 ‘유아, 작은 아이’를 말합니다. 누가 보아도 보잘것없고 자기의 능력으로는 전혀 천국에 가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스스로의 능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 존재, 어떤 공로를 세울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처럼 율법을 다 알지도 못하고 다 지킬 수도 없는 아이입니다. 금식을 일주일에 2회씩 하거나 십일조를 정확하게 계산해서 드릴 능력도 없는 아이입니다. 제자들처럼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전도를 하는 할 수도 없는 아이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제자들과 비교하면 전혀 스스로의 힘으로는 구원받을 가능성이 없는 아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어린아이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를 제자들 가운데 세우셨습니다. 여기 가운데(메소스)라는 단어는 ‘중앙에, 한가운데’를 말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아이를 불러 한가운데 세우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두가 예수님과 아이를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절에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라고 하십니다. 자세히 보면 예수님께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말씀합니다. 진실로는 원문에 아멘이라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그 자체로 신적 권위의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실하시고 성실하신 분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당시 랍비들은 유명한 선배, 대 스승 랍비의 이름으로 선포하고 가르쳤으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선언 방식인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레고 휘민)는 표현을 사용하십니다. 즉 예수님은 랍비나 누구의 권위를 힘입어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으로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 말씀은 진리이고 반드시 이루어지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에서 큰 자가 누구인지 묻는 제자들에게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라고 하십니다. 원문은 ‘같이’(호스)라는 부사가 쓰여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성인은 어린아이가 될 수 없습니다. 어린아이의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의미는 무엇입니까? 어린아이들과 같이 천국을 사모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라는 말입니다.
3. 어린이와 천국(4)
4절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교훈의 결론입니다. “그러므로”(운)는 결론을 나타내주는 접속사입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라고 하십니다. 어린아이가 되라는 말이 아니라 ‘어린아이와 같이’라고 하십니다. 어린아이의 속성을 보면 예수님의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어린아이(파이디온)는 ‘유아, 작은 아이’라는 뜻입니다. 어린아이는 부모가 반드시 옆에 있어야 합니다. 부모가 알려주는대로 ‘아빠, 엄마’를 말하고 말과 행동을 배웁니다. 이처럼 순수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을 믿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가는 길은 바리새인들이나 유대교의 주장대로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행하고 금식을 하고 십일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구원의 길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자의 후손(창 3:15)을 통해 주어집니다. 여자의 후손이 세상에 와서 사탄의 머리를 박살낼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을 이룰 것입니다. 그 여자의 후손을 믿음으로만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요 3:16). 이 복음의 진리를 바르게 믿는 자, 순수하게 믿는 자가 바로 천국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정에 어린이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순수한 어린이들을 보면서 그들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믿고 천국을 사모해야 합니다. 소란스럽다고 혹은 울음소리와 재잘거리는 어린아이들의 소리가 시끄럽다고 외면하고 무시하면 안됩니다. 그 순수한 어린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또 믿음 안에 자라고 성장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일꾼들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 아이들을 통해 세상에 퍼져 나가게 될 것입니다.
결론
어린이주일을 맞아 우리는 어린이를 우리 가정과 교회에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아이들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양육하고 믿음 안에서 잘 자라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이 사명이 오늘 우리 교회와 믿음의 가정들에게 있음을 기억하고 사랑으로 아이들을 키워내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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