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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주일 아침에 한국교회 선교역사를 묵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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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논단

부활주일 아침에 한국교회 선교역사를 묵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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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아침의 나라인 조선에 많은 선교사가 거쳐 갔다. 한국 개신교는 1884년 알렌 이전에 많은 선교사들이 거쳐 지나갔다. 심지어 토마스 선교사와 같이 순교하는 선교사도 있었다. 특히 알렌과 언더우드 이전에 이미 중국에 파송한 로스와 매킨타이어 선교사가 한국인과 함께 선교를 시작했다. 선교뿐만 아니라 한글로 성경을 번역하기도 했다.

 

한국 개신교의 선교 출발을 왜 1884920일에 입국한 알렌과, 188545일에 입국한 언두우더 중심으로 역사를 기록하는가? 그 이전에 순수한 한국인이 전도를 받고 시작한 선교를 출발로 삼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 북장로교회 해외 선교부가 한국을 선교 대상으로 하여 선교사를 파송하고 그 선교사가 한국에 도착한 날을 한국 개신교 선교의 출발로 삼는 것은 순전히 그들의 선교 중심으로 역사를 기술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선교 열매로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이미 언더우드 선교사는 자신들이 한국에 입국하기 전에 이미 한국에 로스 선교사의 선교 열매로 복음이 전해졌고 세례를 받았다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한국선교의 시발점을 북장로회 선교사인 알렌과 언더우드 중심으로 역사를 기록한 것은 그들의 선교 실적과 열매로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역사 기록을 그대로 답습한 한국장로교회는 선교의 출발을 1884920일 알렌으로 입국으로 삼는 것은 수정되어야 한다. 한국에 상주하는 선교사가 아니었기에 이들 중심으로 한국선교의 시발점으로 기록하지 않고 오직 미국북장로회(PCUSA) 상주하는 선교사의 입국으로부터 한국교회 출발로 삼아 역사 기록은 그들 중심의 선교 역사였을 뿐이다.

 

미북장로교 선교부에서 중국에 파송되었으나 파송지를 조선으로 옮긴 의료선교사인 알렌(Horace N. Allen)이 상주하는 최초의 선교사로 이름을 올렸다. 1884920일에 가족을 중국에 두고 먼저 알렌이 홀로 한국에 입국하였다. 이듬해 45일 오후 3시경에 같은 선교부 소속 원두우(Horace G. Underwood) 선교사가 입국했다. 이어서 1885621일 의료선교사인 헤론(J. W. Heron)은 그의 아내와 함께 입국했다.

 

의사인 알렌은 광혜원을 세워 의료를 통해 복음을 증거하는 사역을 시작했다. 18833월 호톤(Lllias Horton, 후에 원두우 아내가 됨)이 입국했고 188812월에 기일(J. S. Gale), 1890125일 마포삼열(S. A. Moffett)이 각각 입국했다. 언더우드는 뉴 브룬스윅(New Brunswick)에 있는 개혁신학교(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기일은 토론토대학, 마포삼열은 시카고의 맥코믹신학교 출신으로 건전한 신학을 공부한 선교사들이었다.

 

1890년까지 안수 받은 목사는 3(언더우드, 기일, 마포삼열)이 한국에 입국하여 상주하는 선교사가 되었다. 한국에서 32년 동안 선교 사역을 위해 활동했던 언더우는 인도선교를 꿈꾸고 있다가 선교지를 조선으로 바꾸었다. 그는 뉴브런즈윅 시에 있는 네덜란드 장로회 신학교(The Dutch Reformed Theologica Seminary)에 입학하여 1884년까지 신학과 함께 별도로 의학을 공부했다. 그가 신학과 의학을 공부하였다.

 

언더우 선교사는 이미 결혼하기로 한 약혼녀와 파혼했다. 그 이유에 대해 전해진 이야기가 있다. “조선이란 나라는 어디 있나요?”, “인도 북쪽의 아시아 대륙 끝에 있다고 하오.”, “그 나라의 주식(主食)은 무엇인가요?”, “모르오.”, “병원은 있나요?”, “그것도 모르오.”, “그럼 당신이 조선에 대해 아는 건 뭔가요?”, “내가 아는 것은 오로지 그곳에 주님을 모르는 1,000만의 민중이 살고 있다는 것뿐이오.”

 

언더우드는 약혼녀에게 파혼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그의 조선에 대한 선교 열정은 막을 수 없었다. 그는 모교의 관할 신학교인 네덜란드 장로교회를 찾아가 조선 선교 후원을 요청하였지만 조선은 위험지역이라는 이유로 거절을 당했다. 그는이에 굴복하지 않고 북미 장로교회(Northen Presbyterian Church)의 선교 본부에 조선 선교사로 파송해 줄 것을 요청하여 허락을 받아 188545일 부활주일 오후 3시 경에 입국하였다.

 

그러나 그 이전에 수많은 한국선교에 참여했던 거룩한 복음의 증거자들을 외면하면 안 된다. 이제 그들 중심의 한국교회 선교의 시발점으로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 한국 천주교회는 상주하는 신부 선교사의 입국으로 역사의 출발을 삼지 않고 그들 신자가 중국에서 중국에 파송된 선교사에게 영세를 받는 날을 역사의 출발로 삼는다.

 

그러나 우리 개신교는 한국인의 최초 세례와 선교를 출발점으로 삼지 않고 오직 상주하는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의 입국을 선교 출발로 삼는 것은 다분히 한국선교의 열매를 그들 중심의 선교 역사로 그림을 그려 왔다.

 

언더우드 선교사 부활주일에 최초로 입국하여 복음이 유입된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이미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전해졌고, 순교와 성경이 전해졌던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심지어 무명의 신자들의 헌신적인 복음전래는 오늘의 한국교회의 성장을 이룩하는 뿌리였다.

 

해방 이후 이 땅에 다시 찾은 미국의 북장로회 선교사들은 한국 장로회, 즉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를 자신들과 같은 친 WCC 총회를 만들기 위해 분열을 획책했던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1세대 선교사들은 순수한 복음의 열정으로 이 땅을 거쳐 갔지만 2세대 선교사들은 이 땅에 그들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분열을 가져왔다.

 

이제 한국교회는 그들 중심의 교회 역사가 아닌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다해야 하는 그런 시대를 맞이했다. 이 부활주일 아침에 이제 다시 초기 선교사들의 순수했던 그 복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소재열 목사 / 김포기독자널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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