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일)

  • 구름많음속초16.3℃
  • 구름많음22.6℃
  • 구름많음철원23.9℃
  • 구름조금동두천23.2℃
  • 구름조금파주21.8℃
  • 구름많음대관령18.0℃
  • 구름많음춘천22.4℃
  • 구름많음백령도19.1℃
  • 구름많음북강릉16.7℃
  • 구름많음강릉18.0℃
  • 구름많음동해18.8℃
  • 구름많음서울22.9℃
  • 구름조금인천19.8℃
  • 구름조금원주22.6℃
  • 구름많음울릉도20.9℃
  • 구름많음수원22.4℃
  • 구름조금영월22.5℃
  • 구름많음충주22.1℃
  • 구름많음서산23.1℃
  • 구름많음울진19.8℃
  • 구름많음청주21.8℃
  • 구름많음대전22.6℃
  • 구름많음추풍령23.0℃
  • 구름많음안동23.5℃
  • 구름많음상주21.7℃
  • 구름많음포항20.4℃
  • 구름조금군산21.0℃
  • 구름조금대구24.0℃
  • 구름조금전주24.2℃
  • 연무울산22.7℃
  • 구름조금창원24.4℃
  • 구름많음광주23.5℃
  • 구름많음부산22.4℃
  • 구름많음통영19.7℃
  • 구름많음목포21.2℃
  • 구름많음여수20.6℃
  • 구름많음흑산도19.4℃
  • 구름많음완도21.1℃
  • 구름조금고창24.0℃
  • 구름많음순천23.1℃
  • 구름많음홍성(예)20.9℃
  • 구름많음20.3℃
  • 흐림제주21.4℃
  • 구름많음고산20.3℃
  • 흐림성산21.4℃
  • 흐림서귀포22.0℃
  • 구름많음진주23.1℃
  • 구름조금강화20.9℃
  • 구름조금양평21.4℃
  • 구름많음이천21.9℃
  • 구름많음인제23.4℃
  • 구름조금홍천22.7℃
  • 구름조금태백25.5℃
  • 구름조금정선군24.3℃
  • 구름많음제천22.6℃
  • 구름많음보은21.4℃
  • 구름많음천안22.2℃
  • 구름많음보령21.1℃
  • 구름많음부여21.6℃
  • 구름조금금산22.2℃
  • 구름많음21.5℃
  • 맑음부안23.2℃
  • 구름조금임실25.3℃
  • 구름조금정읍25.6℃
  • 구름많음남원22.8℃
  • 구름조금장수26.0℃
  • 맑음고창군25.4℃
  • 구름조금영광군24.6℃
  • 구름많음김해시23.1℃
  • 구름조금순창군23.5℃
  • 구름많음북창원24.6℃
  • 구름많음양산시24.2℃
  • 구름많음보성군22.5℃
  • 구름많음강진군22.8℃
  • 구름많음장흥23.8℃
  • 구름많음해남24.8℃
  • 구름많음고흥24.6℃
  • 맑음의령군24.0℃
  • 맑음함양군23.4℃
  • 구름많음광양시23.0℃
  • 구름많음진도군23.8℃
  • 구름조금봉화24.2℃
  • 구름많음영주23.0℃
  • 구름많음문경21.8℃
  • 구름많음청송군24.2℃
  • 구름많음영덕18.2℃
  • 구름많음의성23.1℃
  • 구름많음구미23.1℃
  • 구름많음영천24.5℃
  • 구름많음경주시24.9℃
  • 맑음거창23.3℃
  • 구름조금합천23.8℃
  • 구름조금밀양23.7℃
  • 구름조금산청23.1℃
  • 구름많음거제21.9℃
  • 구름많음남해20.9℃
  • 구름많음24.0℃
[부활주일] 허탄한 듯 보이는 부활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설교⦁칼럼

[부활주일] 허탄한 듯 보이는 부활

본 문 : 누가복음 24:1-12

20221020_075924.jpg

 

 

기독교는 역설적인 면이 있습니다. 던마크 철학자 키엘케고르는 기독교 신앙을 역설로 가득차 있는데 그 역설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요, 그 역설 때문에 거리껴 넘어지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파라독스라고 하는 이 역설이라는 말은 표면상 논리적인 모순인 것 같은데 사실은 아주 높은 차원의 진리를 포함하고 있는 것을 뜻합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장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바로 이런 역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낮은 자가 높아지고 하나님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자가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같은 것들은 꼭 정반대되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그것이 무슨 말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이같은 이야기의 이면에는 더 깊은 진리가 숨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역설적인 진리를 우리는 믿는다.

 

주후 2-3세기에 살았던 로마의 법률가요, 평신도 신학자였던 터툴리안은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모순되기 때문에 믿는다”, 즉 성경이 가르치는 것이 논리적이면 오히려 믿을 가치가 별로 없지만, 그것이 비논리적이기 때문에 믿을 가치가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 인간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비논리적인 것으로 비칠지 모르지만, 이것은 엄연한 진리입니다. 이같은 부활의 복음을 통해서 큰 은혜를 받는 부활주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1. 부활을 허탄한 이야기로 믿지 않는 사도들

 

오늘 읽은 누가복음 24장에는 부활 사건을 역설적인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인들이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에 가보니 무덤은 비어있고 천사들이 나타나서 예수님은 부활하셨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여자들이 처음에는 놀라서 어쩔 줄을 모르다가 나중에 제자들에게 가서 보고를 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반응이 24:11절에 기록된다.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그 여자들이 말하는 것이 허탄하게 들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허탄하다라는 말은 신약 성경에서 여기만 나오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무의미하다, 난센스다’, 혹은 쓸데없는 소리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말은 그 시대에서는 의학 용어로 어떤 사람이 열병에 걸려 병이 너무 심해서 중얼중얼 헛소리 하는 것을 이 허탄이라는 말로 표현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하는 소리를 제자들은 마치 열병 걸린 사람이 제정신을 잃고 헛소리하는 것처럼 그렇게 이해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의 부활은 결코 허탄한 이야기가 아니다

 

제자들이 여자들의 말을 들었을 때 그것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소리로 들렸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을 직접 보았고 그 무덤밖에 큰 돌을 갖다 놓고 심지어 거기에 봉인하는 것을 다 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무시하고 믿지를 못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믿음의 기준을 자신들이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 시대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에 한 번도 경험해 본 일이 없으므로 믿을 수 없다는 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허탄하다는 말은 난센스다,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무의미한 말이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과 빈 무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들렸다. 그들의 사고방식으로는 예수님의 부활은 헛소리였습니다.

 

그런데 말도 안 되는 그 헛소리가 나중에 가장 말이 되는 의미 있는 이야기가 될 뿐만 아니라 모든 의미의 근원으로 나타났다. 예수님의 부활을 허탄하다고 말하는 그 소리가 허탄한 말이었습니다. 부활은 의미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가장 큰 의미를 제공해 준 우리 삶의 모든 의미의 바탕이 되는 의미입니다.

 

허탄하다는 말은 쓸데없는 소리,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소리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것도 우리에게 무엇이 쓸데 있는가 또는 없는가의 표준을 정해 놓고 그 표준에 의해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쓸데없는 소리라고 본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은 사실로 드러났을 뿐만 아니라 쓸 데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아무 소용없는 것 같이 들렸을지 모르지만 사실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아무 소용이 없다. 고전 15:14절에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요, 가장 불쌍한 자가 될 것입니다.

 

3. 사도들은 왜 허탄한 행동을 하고 있는가?

 

24:5절에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라고 합니다. 이들의 행동이 허탄한 짓입니다.

 

본문 24:6절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라고 했습니다.

 

7절에서는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같은 말씀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허탄한 행동을 한 것입니다. 자기들이 허탄한 짓을 하면서 오히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하는 그 사실 자체를 허탄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부활을 믿지 못했는가? 그것은 예수님을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 생각의 기준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실 때 출세하려는 데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천군 천사들을 불러서 로마를 다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회복하려는데 한몫 참여해야겠다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자신들의 경험과 자기들의 생각으로 말씀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부활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얼마나 허탄한 생각인가? 자기 나름대로 생각했기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찾은 어리석음을 범한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들이 예수님이 갈릴리에 계실 때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라고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들이 자꾸 잊어버리니까 기억하라고 한 것입니다.

 

결론

 

우리가 세상적으로 너무나 똑똑해서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허탄한 이야기로 듣는 허탄한 사람이 되면 안 되겠다. 세상의 똑똑함이 오히려 나에게 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허탄한 사건으로 돌림으로 인생의 참된 삶을 살지 못한 자들이 되면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 말씀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말씀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