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일)

  • 흐림속초13.5℃
  • 구름많음20.8℃
  • 구름많음철원18.6℃
  • 구름많음동두천21.7℃
  • 구름많음파주17.8℃
  • 흐림대관령9.8℃
  • 구름많음춘천20.2℃
  • 흐림백령도15.1℃
  • 흐림북강릉13.2℃
  • 흐림강릉14.2℃
  • 구름많음동해13.8℃
  • 구름많음서울22.6℃
  • 흐림인천18.6℃
  • 구름많음원주22.3℃
  • 흐림울릉도15.5℃
  • 구름많음수원19.8℃
  • 구름많음영월21.4℃
  • 구름많음충주20.2℃
  • 흐림서산17.7℃
  • 구름조금울진13.7℃
  • 구름많음청주24.5℃
  • 구름많음대전22.6℃
  • 구름많음추풍령20.1℃
  • 구름많음안동19.7℃
  • 구름많음상주20.8℃
  • 구름많음포항15.5℃
  • 흐림군산16.3℃
  • 구름조금대구18.5℃
  • 흐림전주21.0℃
  • 구름많음울산16.0℃
  • 구름많음창원18.0℃
  • 구름많음광주22.4℃
  • 구름많음부산17.0℃
  • 흐림통영17.9℃
  • 흐림목포18.0℃
  • 흐림여수18.4℃
  • 흐림흑산도15.7℃
  • 흐림완도18.2℃
  • 구름많음고창17.7℃
  • 구름많음순천16.9℃
  • 흐림홍성(예)20.7℃
  • 구름많음20.8℃
  • 흐림제주19.5℃
  • 흐림고산18.8℃
  • 흐림성산19.6℃
  • 흐림서귀포21.0℃
  • 구름많음진주17.6℃
  • 흐림강화15.2℃
  • 구름많음양평20.8℃
  • 구름많음이천21.5℃
  • 흐림인제15.0℃
  • 구름많음홍천19.9℃
  • 구름조금태백12.4℃
  • 구름많음정선군16.5℃
  • 구름많음제천18.5℃
  • 구름많음보은19.6℃
  • 구름많음천안20.1℃
  • 구름많음보령16.8℃
  • 흐림부여20.7℃
  • 흐림금산20.2℃
  • 구름많음22.5℃
  • 흐림부안16.9℃
  • 구름많음임실19.7℃
  • 흐림정읍19.2℃
  • 구름많음남원22.3℃
  • 구름많음장수18.8℃
  • 구름많음고창군18.2℃
  • 구름많음영광군17.8℃
  • 구름많음김해시18.4℃
  • 구름많음순창군21.2℃
  • 구름많음북창원20.1℃
  • 구름많음양산시19.3℃
  • 흐림보성군17.5℃
  • 흐림강진군20.5℃
  • 흐림장흥18.5℃
  • 흐림해남19.4℃
  • 흐림고흥18.5℃
  • 구름많음의령군20.0℃
  • 구름많음함양군20.3℃
  • 구름많음광양시19.3℃
  • 흐림진도군18.7℃
  • 구름조금봉화17.9℃
  • 구름많음영주20.6℃
  • 구름많음문경19.7℃
  • 구름많음청송군16.0℃
  • 구름조금영덕13.7℃
  • 구름많음의성21.1℃
  • 구름많음구미23.3℃
  • 구름많음영천15.0℃
  • 구름조금경주시15.2℃
  • 구름많음거창20.0℃
  • 구름많음합천22.0℃
  • 구름많음밀양21.0℃
  • 구름많음산청20.3℃
  • 흐림거제17.5℃
  • 흐림남해18.0℃
  • 구름많음18.8℃
[고전 강론 41] 사랑이 없는 은사의 무익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설교⦁칼럼

[고전 강론 41] 사랑이 없는 은사의 무익

사랑이 없으면 방언, 예언 은사 등은 무익함


제목을 입력해주세요_-001 - 2023-01-28T192244.658.jpg

 

본문/ 고전 13:1-3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지난 시간에 고린도전서 12:27-31절 말씀을 통하여 “다양한 은사들과 교회의 직분들”이라는 제목으로 살펴보았습니다. 본문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다양한 은사가 교회 어떤 직분을 이루고 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은사는 선하고 아름답습니다. 왜냐하면 선하신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은사를 받은 인간의 태도가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로는 그 은사가 공동체를 힘들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은사가 무엇인가? 직분이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이 모든 것들을 주신 목적이 무엇인가를 묵상하면서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오늘은 본문 13:1~3절 말씀을 통하여 "사랑이 없는 은사는 무익"이라는 제목으로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꾸준히 그리스도의 몸인 하나님의 교회(고전 1:2)를 세우십니다. 사도 바울은 12장에서 은사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13장에서는 사랑에 관해 말씀합니다. 14장에서는 12장에서 언급된 예언과 방언에 관해 더 구체적으로 말씀합니다.

 

13장을 구분하면 첫째 단락(1-3)은 사랑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둘째 단락(4-7)은 사랑의 본성에 관해 말씀합니다. 세 번째 단락(8-13)은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한다고 말씀합니다. 앞으로 13장은 세 시간에 걸쳐서 살펴보겠습니다.

  

1. 사랑이 없으면 방언은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합니다(1)

 

본문 1절에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라고 합니다.

 

사도는 13장 1절에서 ‘방언’, 2절에서 ‘예언’에 대해 말씀합니다. 그런데 14장에서는 구체적으로 이 방언과 예언에 관해서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미 12:31절에서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 합니다. 이런 말씀을 하고 13장에서는 사랑에 관해 말씀합니다. 제일 좋은 길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은사 자체입니다. 사도는 여기서 모든 은사에 있어서 사랑을 추구하라고 합니다.

 

1절을 깊이 묵상해 보겠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천사의 말은 방언이 곧 천사들의 언어로 생각했습니다. 소리가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는 헬레 세계의 신비 종교 광란의 의식 때 쓰이는 도구들이었습니다. 고린도 교회 문제 가운데 하나가 방언 문제였습니다. 황홀경의 경지에 이르는 사람에게서 보이는 방언은 외형적으로 신비한 사람이라고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방언이 사랑이 없다면, 무익하다고 합니다.

 

여기서 사랑은 아가페로서 구약의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 역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택하셔서 그들을 위해 행하시는 행위를 지칭할 때 사용되었습니다(신 7:6-11).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해 주셨으니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하나님과 이웃에게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지칭할 때 사용했습니다. 사랑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말씀은 영원히 변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변하지 아니하신 하나님이라 하셨다면 그 말씀 역시 영원히 변함이 없습니다. 

 

신약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그를 믿는 자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행위를 사랑으로 표현합니다(요 3:16).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에 우리는 사랑의 열매가 갖게 됩니다(갈 5:22).

 

우리가 비록 천사의 말이라 하더라도 소리 나는 구리에 불과합니다. 시끄러운 꽹과리에 불과합니다. 이 말은 무슨 뜻입니다. 사랑이 없는 방언은 시끄러운 소리에 불과하여 그리스도 공동체에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여기서 구체적으로 방언이란 무엇인가를 논하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한 은사로서 방언이 주님의 몸된 교회에 필요한 방언이라고 한다면 그 방언을 통해 자신의 의를 드러내고, 방언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자고 한 사람을 염두하고 바울은 이 부분을 지적합니다. 사랑의 실천 없이 오로지 신비한 방언에만 집착하여 자신은 높은 신비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교만한 자들에게 경고하고 권면한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게 될 때 나름대로 사명을 감당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한 환경 속에서 주신 은사에 따라 사명을 감당합니다. 그 은사와 사명은 분명한 목표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십자가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위해 교회를 섬깁니다. 그런데 이러한 핵심 가치에 대해서는 무지합니다. 관심이 없습니다. 오로지 은사를 통한 자기 의를 드러냅니다. 온통 자기 자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면 그런 교만함으로 은사를 활용하지 않습니다.

 

2. 사랑이 없으면 예언의 능력도 아무것도 아닙니다(2).

 

본문 2절에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라고 합니다.

 

2절은 이미 12장에서 바울이 언급한 예언의 은사에 관한 문제를 다시 거론합니다. 예언의 은사는 비밀스러운 지식을 의미합니다. 비밀스러운 지식은 신비한 지식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로 얻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대한 지식입니다. 

 

믿음의 은사, 곧 이적 행하는 은사라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랑이 없으면 예언하고 믿음이 있다 하더라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신비한 신의 계시에 대한 예언의 은사가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이 없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그 사랑의 열매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예언의 은사, 즉 신비한 예언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는 은사는 이러한 사랑에 근거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명을 감당한 후에 그 사명이 하나님과 무관한 사명이었다면 우리는 얼마나 불행한 자가 되겠습니까? 내가 하나님에 앞에 산을 옮길만한 믿음을 가지고 사명을 감당했을지라도 그것이 하나님과 무관하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헛것“이 되어 버립니다. 

 

회사 직원이 너무나 의욕이 앞서서 밤을 지새우며 일을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상사가 이 일을 보았습니다. 그때 상사가 “너는 꼭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이런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허비하느냐”고 책망하면 그게 어떻게 되겠습니까? 혹 우리가 이런 경우가 아닌지 우리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3. 구제의 은사 역시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3).

 

본문 3절에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 합니다.

 

사랑의 낮은 단계에서 남을 구제할 수 있습니다. 즉 사랑 없이 구제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희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구제와 희망은 사람의 관점에서 칭찬해 줄 만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 없는 이런 행동은 그리스도 안에서 유익이 없습니다. 비록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그렇습니다.

 

여러분, 은사의 대전제는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는 은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은사는 본인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무익한 은사”라고 합니다. 은사 자체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은사를 대하는 방법과 태도가 문제입니다. 이 은사는 성령의 나타남으로 가능합니다(12:7). 주님의 몸이 성전에 계신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은사의 목적을 나에게 찾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찾아야 합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라고 이미 고린도전서 12:4-6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복수의 은사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어도 모든 은사를 가질 수는 없습니다. 모든 은사를 성령을 통해 주어졌으므로 모두가 다 귀합니다.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은사는 부분적이고 단편적입니다(13:9). 즉 다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은사란 구원의 은혜를 받은 자들에게 그 결과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 구원의 조건으로, 혹은 공로 사상으로 생각하는 태도가 문제입니다. 은사는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봉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꼭 교회에 유익을 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4. 교훈과 적용

 

교회는 여전히 오늘날 우리에게 희망입니다. 왜 희망입니까? 그것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영양분을 공급받기를 거절한 자들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에서 구성원들과 원수를 맺지 않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어 다 각자 믿음의 분량에 따라 은사를 받았습니다. 그 은사가 자기 자랑이 될 수 없는 것은 그 은사는 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런 은사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없이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웃 영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없으면 감당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사명을 감당한 후 하나님이 결산하실 때 하나님과 무관한 은사, 사명이었다고 판정을 받는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이겠습니까? 은사가 헛되지 않고 오로지 유익한 은사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소재열 목사(새사랑교회)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