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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헌종(1839년)의 척사윤음(斥邪綸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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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헌종(1839년)의 척사윤음(斥邪綸音)

당시 조선의 천주교 이해와 김대건 신부 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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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헌종 5) 10월 척사윤음

 

 

순조의 친손자이자 효명세자의 하나뿐인 외아들로 아버지 효명세자가 1830년 22시에 갑작그럽게 요절하고 할아버지 순조마저 1834년 44세에 건강 악화로 일찍 세상을 떠나자 헌종(이름은 환(奐), 자는 문응(文應))은 왕세손의 신분으로 8살 어린 나이에 국왕이 되어 조선 왕으로 최연소로 어린 나이에 즉위했다. 순조의 정비이자 할머니인 대비 군원왕후 김씨가 수렴청정을 했다. 

 

헌종이 즉위한 시기는 서양 세력이 조선에 침투하기 시작한 때였다. 18세기 이후 영국, 프랑스 등 서양의 여러 나라들은 군함을 앞세워 통상을 요구해 왔다. 그들은 무역과 포교를 빌미로 동양에 대한 침략 야욕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었다. 조선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잦은 이양선의 출몰에도 국제 정세에 어두웠던 조선의 조정은 쇄국 정책으로 일관했다.


특히 정권을 장악한 풍양 조씨 세력은 척사 정책의 일환으로 천주교 박해를 주도했다. 물론 헌종도 이에 동조했다. 헌종은 1839년(헌종 5)에 조인영이 지어 올린 〈척사윤음(斥邪綸音)〉을 전국에 반포했다. 〈척사윤음〉은 유학을 정학(正學)으로 규정하고 그에 반하는 서학(천주교)은 사학(邪學)이므로 배척해야 한다는 척사귀정(斥邪歸正)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1839년(헌종 5)에 시작해 1840년(헌종 6)까지 프랑스 인 신부 모방과 샤스탕을 비롯해 천주교도 70여 명을 처형한 기해박해(己亥迫害)는 이러한 척사귀정의 원칙이 적용된 것이었다. 풍양 조씨 세력은 천주교 탄압을 통해 천주교에 비교적 관대했던 안동 김씨 세력을 함께 제거하고자 했다. 이때 이러한 정치적 목적 때문에 천주교 박해 때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도 많았다.


이후에도 헌종과 풍양 조씨의 천주교 탄압은 계속되었다. 이런 가운데 1846년(헌종 12)에 프랑스 해군 함장 세실(Cecille)이 군함 3척을 이끌고 나타나 충청도 홍주에 위치한 외연도에 정박했다. 그들은 조선의 왕에게 전달할 국서를 가지고 있었다. 국서의 내용은 기해박해 때 프랑스 인이 처형된 것에 대한 항의와 자국민에 대한 탄압이 계속된다면 본국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조선에 대한 협박이자 문호 개방에 대한 압력이었다. 세실은 국서를 조선의 왕에서 전할 것을 요구했으나 외연도의 지방관과 주민들은 완강히 거부했다. 그러자 세실은 국서를 두고 떠나면서 다음 해에 다른 군함이 답변서를 받으러 올 것이라고 했다.


헌종은 당시 체포되어 옥에 갇혀 있던 사학 죄인 김대건(金大建)을 효수에 처할 것을 명했다. 김대건은 기해박해 때 처형된 모방 신부에게 발탁되어 마카오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와 사제로서 포교 활동에 전념하고 있었다. 헌종은 세실 제독의 군함 출현으로 흉흉해진 민심을 수습한다는 명목으로 김대건과 여러 천주교 신자들을 처형했다. 그러나 이러한 박해에도 천주교는 고단한 조선 백성들 속으로 파고들었다.


조선왕조실록(헌종실록 6권, 헌종 5년 10월 18일 경진 1번째기사 1839년 청 도광(道光) 19년척사 윤음을 경외에 내리다)


〈척사윤음(斥邪綸音)의 번역본 내용은 다음과 같다(윤음: 헌종이 천주교를 배척하기 위해 전국의 백성에게 내린 임금의 말씀).


척사 윤음(斥邪綸音)을 경외(京外)에 내리기를(庚辰/下斥邪綸音于京外曰)


"아! 《중용(中庸)》에 이르기를, ‘하늘이 명한 것을 성(性)이라 한다.’ 하였고, 《상서(尙書)》에 이르기를, ‘거룩하신 상제(上帝)께서 온 세상 백성에게 선(善)함을 내려 주셔서 고유(固有)의 성품(性品)을 순하게 하셨다.’ 하였다. 그 동일한 근원의 성품을 부여한 시초를 논하기를, ‘하늘’이라 이르고 ‘상제(上帝)’라고 하였는데, 


하늘은 형체(形體)를 말하는 것이고, 상제는 주재(主宰)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명하셨다.’ 하고, ‘선함을 내려 주셨다.’ 한 것은 정성스럽게 실제로 가르쳐 고하신 것이 있는 것이 아니니, 한 이치가 일어나는 바에 이기(二氣) 가 운행되고 사서(四序)가 운행되어 만물(萬物)이 생육(生育)하는 것이다. 이에 사람들이 그 이치를 얻어 성(性)으로 삼는 것인데, 그 덕(德)에 네 가지가 있으니, 인(仁)·의(義)·예(禮)·지(智)이고, 그 윤(倫)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부자 유친(父子有親)·군신 유의(君臣有義)·부부 유별(夫婦有別)·장유 유서(長幼有序)·붕우 유신(朋友有信)이다. 이는 모두 당연히 그러한 것이요, 안배(安拜)하여 포치(布置)하거나 힘써 억지로 작위(作爲)함을 기다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하늘이 많은 백성을 내시니 만물이 있고 법칙이 있다. 이를 좇으면 하늘에 순종하는 것이 되고, 이를 어기면 하늘을 거스르는 것이 된다.’ 하였으니, 


무릇 하늘을 받들고 상제를 섬기는 것이 어찌 사단(四端) 과 오륜(五倫)에서 벗어나겠는가? 아! 복희씨(伏羲氏)·신농씨(神農氏)·요제(堯帝)·순제(舜帝)로부터 천위(天位)를 이어받아 대중 지정(大中至正)한 도덕의 표준을 세우니, 그 공경하고 두려워하며 조심해서 받들고 돈독하게 질서를 세워 삼가서 편 것은 오직 이것뿐이었다. 


또한 우리 공부자(孔夫子)께서 헌장(憲章)을 조술(祖述)하신 후로 송(宋)나라 군현(群賢)에 이르기까지 그 천리(天理)를 밝히고 인심(人心)을 착하게 인도한 것도 오직 이것뿐이었다. 털끝만한 차이가 있어도 오히려 이단(異端)이라고 말해 왔는데, 더구나 음려(陰沴) 와 황탄(荒誕)하여 정도(正道)에서 벗어난 기괴한 외도(外道)이겠는가? 국가에는 상형(常刑)이 있으므로, 반드시 죽이고 용서함이 없어야 하니, 이는 이른바 죄를 줌으로써 죄를 그치게 하는 방법인 것이다.


아! 우리 나라는 문명(文明)한 고장에 처하여 어질고 현명한 교화(敎化)와 미풍(美風)·선교(善敎)를 계승해 온 지 오래 되었다. 생각하건대, 우리 성조(聖朝)에서 하늘의 밝은 명을 받아 강역(疆域)을 처음 구획(區劃)하시고는 이륜을 밝혀 인기(人紀)를 세우고 도학(道學)을 숭상하여 국속(國俗)을 바로잡으셨는데, 성자 신손(聖子神孫)이 경계(警戒)를 게을리하지 않아서 크게 하늘에 보답하니, 


아름다운 국운(國運)이 영원히 보전(保全)되고 유현(儒賢)이 배출(輩出)되어 위로 공경 대부(公卿大夫)로부터 아래로 여항(閭巷)의 백성에 이르기까지 집집마다 수사(洙泗)090) 의 행실을 좇아 행하고 낙민의 글을 외면서 남자는 충효(忠孝)를 근본으로 삼고 여자는 정렬(貞烈)을 소중하게 여겼으니, 관혼 상제(冠婚喪祭)에는 반드시 예(禮)를 준수(遵守)하였고, 사농 공상(士農工商)은 각각 그 업(業)을 이루어서 지금까지 서로 바르게 살아왔고 나라에서도 의지하여 왔다. 



더구나 우리 정종 대왕(正宗大王)께서는 하늘이 내신 빼어난 성덕(聖德)으로 백왕(百王)의 대통(大統)을 이어 성명(聲明)과 문물(文物)을 찬연히 구비하게 되었는데, 


불행하게도 흉적(凶賊) 이승훈(李承薰)이라는 자가 서양(西洋)의 책을 사가지고 와서 천주학(天主學)이라고 일컫고는 선왕(先王)의 법언(法言)이 아닌데도 몰래 서로 속여 유인(誘引)하자, 성인(聖人)의 정도(正道)가 아닌데도 자연히 탐혹(耽惑)되어 점차 이적(夷狄)·금수(禽獸)의 지역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이에 정종 대왕(正宗大王)께서 오랠수록 더욱 치성(熾盛)해질 것을 근심하셔서 그 괴수를 다스리고 나머지는 용서하시었다. 이는 그 살고 싶어하는 마음을 미루어 스스로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신 것이니, 더할 수 없는 후은(厚恩)이요 성덕(盛德)이다. 


비록 어리석기가 돼지와 물고기 같고 흉악하기가 효경( 梟) 같다 하더라도 마땅히 느끼고 깨닫는 바가 있어야 할 것인데, 이미 본성(本性)을 상실하여 구습(舊習)을 고치지 않으니, 신유년[1801 순조 원년] 사학(邪學)을 토죄(討罪)한 옥사(獄事)에 이르러 극도에 달하였던 것이니, 


얕은 재예(才藝)를 가진 자가 그 새로운 것을 선망하여 창도(唱導)하면, 몽매하여 지각(知覺)이 없는 자가 그 탄망(誕妄)함을 좋아하여 따르니, 경재(卿宰)의 지위에 있는 몸으로 스스로 소굴을 만들어서 가정에 전해 오던 전통적인 교훈(敎訓)이나 예법(禮法)까지 오염(汚染)된 바가 있었다. 


주문모(周文謨)는 깎은 머리 모양을 바꾸어서 감히 도시(都市)로 활보하였고, 황사영(黃嗣永)은 백서(帛書)를 마련하여 해양의 선박을 불러들이려고 하였으니, 그들의 흉도(凶圖)와 역절(逆節)이 이에 이르러 다급해졌던 것이다. 


진실로 우리 순종 대왕(純宗大王)과 우리 정순 대비(貞純大妃)께서 이 도깨비 같은 무리의 간교함을 죄다 통촉(洞燭)하셔서 크게 부월(斧鉞)(형벌)의 위엄을 떨치시어 시원하고 통렬하게 제거하지 않으셨더라면, 나라가 나라답고 사람이 사람다운 도리를 지켜왔을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 이제 신유년으로부터 40년이 되어 금망(禁網)이 점차 해이(解弛)해지자, 사교(邪敎)가 다시 치성(熾盛)해지면서 독한 물여우 같은 무리는 모습을 감추고 허다한 가라지 같은 종자를 바꾸어서 역수(逆竪)는 성(姓)을 바꾸어 출몰(出沒)하고 요망(妖妄)한 역관(譯官)은 재물을 싣고 가서 교통하여 몰래 양인(洋人)을 불러들인 것이 두세 번에 이르니, 


성기(聲氣)가 이역(異域)까지 접속되고 맥락(脈絡)이 동당(同黨)에 두루 통한 바가 신유년에 견주어 거의 더함이 있다. 


이에 나 소자(小子)는 삼가 황조(皇祖)의 모유(謨猷)를 준수하고 공경히 자성(慈聖)의 명(命)을 받들어 감히 천벌(天罰)을 시행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비록 그들이 혼미(昏迷)하여 돌이킬 줄 모르고, 깊이 빠져들어 건질 수 없게 되어 머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스스로 대륙(大戮)의 형장으로 나가고 있으나, 


내가 오직 백성의 부모(父母)가 되어 애통(哀痛)하고 측달한 마음이 가슴속에 없을 수 있겠는가? 

아! 내가 듣건대, 가르치지도 않고 형벌하는 것은 백성에게 재앙(災殃)을 주는 것이다.’라고 한다고 하니, 내가 마땅히 사교(邪敎)의 원위(源委)094) 를 조목마다 변명 분석하여 그대 조정의 신하들과 우리 팔도(八道)의 사녀(士女)들에게 포고(布告)하여 각각 분명히 알게 하니, 그대들은 공경히 받들라. 


아! 저 천주학(天主學)을 하는 자들이 말하기를, ‘이 학문은 하늘을 공경하고 하늘을 존숭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하늘은 본시 공경할 만하고 존숭할 만하다. 그러나 저들이 공경하고 또 존숭하는 것은 죄를 씻고 은총(恩寵)을 구하는 여러 가지 비사(鄙事)[천한 일]와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므로, 이는 스스로 하늘을 속이고 하늘을 업신여기는 데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공경하고 또 존숭하는 것은 곧 앞에서 이른바 사단(四端)과 오륜(五倫)의 하늘이 명하신 성(性)을 밝히고 상제(上帝)께서 내려 주신 선(善)에 순종하여 날마다 하는 일이 이치에 합당하여야 한다는 것이니, 그 사정(邪正)을 구분함에 있어 두 말을 기다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또 저 야소(耶蘇)라고 이르는 자는 사람인지 귀신인지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지 못하겠는데, 저 무리가 말하기를, ‘처음에 천주(天主)로 내려오셨다가, 죽어서 다시 올라가 천주가 되어 만물(萬物)과 민생(民生)의 큰 부모[大父母]가 되셨다.’ 한다. 그러나 하늘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지만, 사람은 몸도 있고 껍질도 있으니, 결단코 서로 섞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하늘이 내려와서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고, 사람이 올라가서 하늘이 되었다고 하니, 무슨 어렴풋하게 의혹할 만한 단서가 있어서 이와 같이 거짓 속이고 있는 것인가? 그대들은 시험삼아 생각해 보라. 고금(古今)을 통하여 이런 이치가 있었던가? 


아! 아비 없이 어떻게 태어나고 어미 없이 어떻게 양육(養育)될 수 있겠는가? 그 은덕(恩德)을 갚으려면 높은 하늘같이 그지없어서 사람이 생겨난 이래로 소멸될 수 없는 대본(大本)인 것이다. 


그런데 저들은 곧 나를 낳은 이는 육신(肉身)의 부모(父母)가 되고 천주(天主)는 영혼(靈魂)의 부모가 된다고 하여, 친애(親愛)하여 숭봉(崇奉)함이 저 천주에 있고 이 부모에게 있지 않아서 스스로 그 부모를 절연(絶緣)하고 있으니, 과연 혈기(血氣)의 천륜(天倫)으로 차마 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제사(祭祀)의 예(禮)는 조상(祖上)을 추모하며 근본에 보답하는 것이니, 효자(孝子)가 그 어버이를 차마 죽었다고 생각할 수 없음은 신리(神理)·인정(人情)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저들은 곧 신주(神主)를 부수고 제사를 폐지하고는 죽은 자는 알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 


진실로 이와 같다면 저들이 말하는 영혼은 또 무엇에 의거한다는 말인가? 앞뒤를 제멋대로 결단을 내려 조리가 맞지 않는 말이다. 범과 이리는 포악한 짐승이지만 오히려 부자(父子)의 정(情)이 있고, 승냥이와 수달은 미물(微物)이지만 오히려 제사를 지내는 의리가 있는데, 저들이 비록 둥근 꼭두머리와 모난 발꿈치를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일찍이 범·이리·승냥이·수달만도 못하여 사람으로서 양심(良心)이 없음이 어찌 이처럼 극도에 이르렀단 말인가?


아! 군신(君臣)의 의리는 천지(天地)에서 도피할 곳이 없는 것인데, 저들은 곧 교황(敎皇)·교주(敎主)라고 칭호(稱號)를 만들어서 융적(戎狄)의 추장(酋長)과 적도(賊盜)의 괴수 같을 뿐만이 아니다. 이는 사목(司牧)[군주]의 권병(權柄)을 훔쳐서 정화(政化)가 미칠 곳이 없고 명령을 시행할 곳이 없게 하려는 것이니, 화란(禍亂)의 근본이 어찌 이보다 심함이 있겠는가? 


아! 음양(陰陽)이 있으면 반드시 부부(夫婦)가 있는 것은 바꿀 수 없는 이치인데, 저들은 시집가고 장가들지 않는 것을 망령되게 정덕(貞德)으로 가탁(假托)하면서 아랫사람들은 남녀가 섞여 살면서 풍교(風敎)를 더럽혀 어지럽히고 있으니, 앞의 것으로 말미암으면 인류가 진멸(殄滅)할 것이고, 뒤의 것으로 말미암으면 인륜(人倫)이 더럽혀질 것이다. 


아비를 업신여기고 임금을 업신여김이 곧 이러한 지경에 이르렀으니, 부부의 관계를 또 어떻게 논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성모(聖母)·신부(神父)·영세(領洗)·견진(堅振) 등과 같은 것에 이르러서는 여러 가지 명색이 나올수록 더욱 변환(變幻)이 심하니, 요컨대 마귀에 홀린 무격(巫覡)이 부적이나 정화수로 신(神)에게 빌면서 저주하여 세상을 현혹시키는 것인데, 조금이라도 식견(識見)을 갖춘 자라면 어찌 혹시라도 의심하거나 현혹되겠는가?


그리고 천당(天堂)·지옥(地獄)에 대한 이야기는 어리석은 사람은 쉽게 속일 만한 일이다. 이는 석씨(釋氏)의 진부(陳腐)한 이야기로서, 이전 사람들이 이미 남김없이 변해(辨解)하였으므로, 거듭 일을 설파(說破)할 것도 못되는데, 이를 전에 누가 보고 누가 전하였다는 말인가? 한 마디로 말해서 황당한 말이다. 


저들 또한 고루 천성(天性)을 받아 함께 인류 사이에 끼어 있으면서 곧 오상(五常)을 무너뜨리고 삼강(三綱)을 멸절시키고는 황홀하고 어두운 곳에서 그 자신이 죽은 후의 복(福)을 구하려는 것은 또한 미혹됨이 심하지 않은가? 복을 구하는 도리가 진실로 있으니,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영원히 하늘의 명에 배합되게 하여 스스로 많은 복을 추구한다.’ 하였고, 또 이르기를, ‘온화한 군자(君子)는 복을 구하되 어기지 않는다.’고 하였다. ‘하늘의 명에 배합한다[配命]’ 함은 이치에 합당함을 말함이고, ‘어기지 않는다[不回]’ 함은 ‘간사한 행위를 하여 요구하지 않는다.’는 말이니, 이와 같이 한다면 복이 저절로 이르겠지만, 이와 같이 하지 않는다면 복을 구하고자 해도 도리어 화(禍)만 얻게 될 것이다. 


나는 듣건대, 야소(耶蘇)는 가장 참혹하게 죽은 자라고 하니, 그 학문이 복이 되고 화가 되는 것을 이에서도 증험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를 보고 징계(懲戒)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처형되어 죽는 것을 즐거운 장소로 여기며 도거(刀鋸)[칼과 톱. 모두 형구(荊具)임.] ·항양(桁楊)[칼과 차꼬.]을 견디어 내며 혼몽하게 두려움조차 알지 못한 채 취한 듯이 미친 듯이 하여 꺼내어 깨우칠 수가 없으니, 이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면 망령된 자이다. 


아! 불쌍하도다. 이것이 만약 광명 정대(光明正大)한 교(敎)라면 어찌하여 반드시 어두운 밤에 밀실(密室) 가운데에서 강론(講論)하고, 심산 궁곡(深山窮谷) 사이에서 불러 모으며, 폐고(廢錮)된 종족(種族)의 서얼로 뜻을 잃어 나라를 원망하는 무리와 지극히 어리석은 하류(下流)로서 재물을 탐내고 음란한 짓을 하는 무리가 서로 교우(敎友)라고 부르면서 각각 사호(邪號)를 베풀고는 머리를 감추고 꼬리를 숨긴 채 한편이 될 것인가? 이러한 자취만으로도 이미 지극히 흉악하고 지극히 요사한 것임이 판명되었으니, 그들이 최후의 목적으로 삼는 것은 황건적(黃巾賊)099) ·백련교(白蓮敎)100) 등의 포장(包藏)하려는 뜻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저들이 이 나라에서 생장(生長)하지 않았는데 어찌 이 나라에서 먹고 산단 말인가?


이 나라의 풍속은 단지 사단(四端)을 확충하고 오륜(五倫)을 배식(培植)하는 것이니, 부조(父祖)가 서로 이어오고 사우(師友)가 서로 의뢰하는 것이 모두 이에 있는데, 무엇 때문에 이 나라에서 함께 좇는 평탄한 길을 버리고 거의 만 리 밖의 이류(異類)의 사설(邪說)을 달갑게 여겨 스스로 함정으로 나아간단 말인가? 


아! 저 점차 물들어서 깊이 금고(禁錮)된 자와 반핵(盤覈) 죄상이 다 드러난 자는 이미 복죄(伏罪)되었으나, 미처 드러나지 않은 자는 또 규결(糾結)을 어떻게 하고 자만(滋蔓)101) 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죽은 자는 불쌍히 여길 것이 못된다고 하나, 살아 있는 자는 아직 크게 변개(變改)시킬 수 있을 것이다. 저들도 모두 나의 적자(赤子)인데, 차마 한결같이 미혹에 빠졌다고 해서 어둠을 깨우쳐 밝은 길로 나아가게 할 방도를 생각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제 내가 마음속을 포고해 보이는 것은 나의 말이 아니라, 바로 하늘이 사람을 다스리는 법이며, 옛 성인(聖人)들의 교훈(敎訓)이니, 아! 그대 신료(臣僚)와 백성들은 공경하고 공경할지어다. 아비는 그 아들을 훈계하고 형은 그 아우를 훈계해, 그릇된 자는 반드시 개도(開導)할 것을 생각하고, 미처 빠지지 않은 자는 반드시 권계(勸戒)할 것을 생각하도록 하라. 또 혹 개도(開導)하고 권계해도 끝내 따르지 않는 자는 반드시 진멸(殄滅)하여 징계할 것을 생각해서 이러한 일종(一種)으로 하여금 감히 다시 용서받을 수 없게 한다면, 어찌 아름답지 않으며,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맹자(孟子)가 이르기를, ‘상도(常道)가 바로잡히면 서민(庶民)에게 선한 기풍(氣風)이 일어나고, 서민에게서 선한 기풍이 일어나면 이에 사특함이 없어진다.’ 하였다. 오늘날을 위한 방도는 오로지 행의(行誼)를 돈독히 하여 효제(孝悌)와 충신(忠信)의 길을 닦고, 경술(經術)을 독실히 하여 시(詩)·서(書)·역(易)·예(禮)를 익히게 하고, 방종(放縱)을 추향(趨向)하여 전성(前聖)의 법도를 위배하지 말게 하고, 잗단 것을 참고하고 의거하여 선현(先賢)의 훈고(訓 )를 업신여기지 말게 하여 우리 장보(章甫)와 금신(衿紳)으로 하여금 순수하게 천덕(天德)·천이(天 )의 자연스런 법칙에서 한결같이 나오게 한다면, 


우리의 도(道)는 부식(扶植)을 기필하지 않아도 부식될 것이며, 이학(異學)은 배척을 기필하지 않아도 배척될 것이니, 저 감발(感發)하여 스스로 분기(奮起)하는 자와 경계하고 두려워하여 스스로 후회하는 자가 어찌 사학(邪學)을 버리고 정도(正道)로 돌아올 리가 없겠는가? 


아! 《서경(書經)》에, ‘백성에게 허물이 있는 것은 나 한 사람에게 달려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지금 이 사교가 제멋대로 횡행(橫行)하고 있는 것은 실로 과매(寡昧)한 내가 거느려 인도하지 못한 허물에 연유하므로, 스스로 돌아보며 자책(自責)하고 있었는데, 그 아픔이 내 몸에 있는 것 같다. 


곧 그대들의 춥고 따뜻함과 굶주리고 배불리 먹는 세절(細節)까지 생각하면 나 소자(小子)가 밤낮으로 안타까워하지 않음이 없는데, 그대들의 성명(性命)이 유지되는 바와 사람과 짐승의 한계가 나뉘어지는 일에 내가 어찌 거듭 되풀이해서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애통(哀痛)해 하면서 유시(諭示)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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