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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지역, 평양선교의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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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지역, 평양선교의 출발

역사 기록으로만 존재한 북한지역 교회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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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우드 선교사(좌), 마포삼열 선교사(우)

  

한국교회는 천주교나 개신교 모두 상주하는 선교사가 입국하기 전에 자생적으로 생겨났다는 점에 있어서 세계 선교사상 그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특징이다. 그런데도 기독교는 한국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외부인 해외 선교사들의 선교활동 결과로 생겨났다.

 

한국에 최초로 알렌(1884)과 언더우드, 아펜젤러(1885)가 입국하기 전에 한글어 성경이 번역되었고 권서들의 활동으로 성경이 유포되었고 복음이 전해졌다. 선교사들이 입국하자 세례받기를 원하는 신자들이 있었으며, 그 신자들 중심의 소래교회가 존재하고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천주교와 같이 알렌의 입국을 한국개신교의 기원이 될 수 없다.

 

188545일에 입국한 후 1886년 말에 로스 선교사의 권서(勸書)였던 서상륜이 로스 선교사의 소개장을 가지고 언더우드를 찾아와 자기 마을에 세례를 받고자 하는 사람이 다수 있다고 말하였다. 이를 계시로 언더우드 선교사는 지방순회전도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 순회전도여행은 1887년 가을에 시작하였다. 서울을 떠나 개성과 솔내를 지나 평양을 거쳐 중국과 접경인 의주까지 갔었다. 이 전도 여행 중 소래에서 세례받기 위해 준비되어 있던 일곱 명의 신자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이는 언더우드 선교의 결실이 아닌 중국 로스에 의한 성경 배포사업을 통한 권서들의 선교 결실이었다.

 

언더우드 두 번째 순회전도여행은 감리교 아펜젤러와 함께 1888년 봄에 이루어졌다. 이 여행은 미국 공사 딘스모어(H. A. Dinsmore)로부터 호조를 가지고 여행을 하였으나 세례 베푸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요구받았다. 그러나 그는 평양에 선교지부를 설치할 수 있는지를 검토했다. 그는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평양까지 갔으나 금교령’(禁敎令)이 내려져 공사관의 긴급한 호출을 받아 서울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 금교령은 천주교의 무리한 성당 건축으로 야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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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우드 가족 선교 여행(1889)

  

언더우드의 세 번째 전도여행은 1889314일 그의 신혼여행을 겸해서 이루어졌다. 이 여행은 송도, 솔내, 평양, 강계를 거쳐 배를 타고 압록강 변의 마을을 거쳐 의주에 갔다가 서울로 돌아왔다. 그 여행 중에 세례를 베풀지 말 것을 요구받았지만 그는 여전히 세례를 베풀었다.

 

언더우드에 이어 1890125일에 사무엘 오스틴 마펫(Samuel Austin Moffett, 1864. 1. 25.-1939. 10. 24.)이 입국하였다. 한국 이름은 마포삼열(馬布三悅)이다. 그는 1890년 입국하여 46년간 사역하였다. 그는 북한 지역을 선교지역으로 배정받아 18908월에 선교 답사에 올랐다. 이 선교 답사는 아펜젤러와 동행했으며, 평양에 2주간 체류한 후 6주 만에 서울로 돌아왔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해당 지역의 요청으로 방문하여 세례를 베푸는 일 등으로 그들을 돌아보는 여행이었다면, 마포삼열은 본격적인 상주 선교부를 설치하기 위해 그 가능성을 타진하는 전도사역이었다. 그는 이듬해인 18912월에 압록강 등을 방문하였다. 이 여행은 게일 선교사와 함께하였으며, 말을 이용하지 않고 자유롭게 각 지역을 머물기 위해 도보로 이동했다. 이때 서상륜과 동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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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 옷 입은 순으로 마포삼열(왼쪽), 그래함 리(우) 가운데 길선주(평양 장대현교회 당회)

  

마포삼열 선교사는 평양보다 의주에 매력을 느낀 것은 전도의 결실이 나타난 곳이었다. 그곳에 선교지부를 위해 집을 구입하려고까지 하였다. 그는 결국 1891년 가을에 의주에 두 번째 방문시에 선교사업을 위해 가옥 한 채를 매입하였다. 그러나 그는 1892년에 가서 평양을 선교거점지구로 결정하였는데 그 설명은 다음과 같다.

 

제가 처음 의주 개척을 주장하며 편지를 드렸던 것은 그때 게일이 독신이어서 거기에 조용히 가서 개척할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그곳을 개척한다면 사역이 성공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 먼 여행을 통해 저는 북부 선교지부를 개척하는 데 있어서, 북부 사역의 중요한 거점으로서 도성 소재지인 평양을 먼저 점유해야 한다는 매우 강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의주는 중국 국경에 있는 2~3만 인구의 도시인데, 만주의 목단과 뉴창과 한국의 평양으로부터 각각 500리 떨어져 있습니다. 50-100만 인구가 사는 19개 도시와 그 도시들의 구역들을 포함하는 사역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도청소재지인 평양은 인구 7-10만의 도시인데, 서울 이북에서 가장 먼 도시입니다. 평양은 서울, 원산, 의주로부터 똑같이 500리 떨어져 있습니다. 평양을 거점으로 사역할 지역은 그 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안주와 그 남쪽에 있는 황주를 포함하는 39개 도시와 그 구역들을 포함합니다. 이 지역의 인구는 약 200만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 막 거기서 채굴되기 시작한 좋은 무연탄으로 인해 가장 중요한 선교거점이 될 것입니다(미국 북장로회 선교 총무인 엘리우드에게 보낸 마펫 편지, 1892. 3. 17).

 

결국 1893년에 그래함 리(Graham Lee), 스왈론(Swallen)과 함께 평양지부를 개척하게 되었다.

 

 

 

 소재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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