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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강론 38] 한 성령의 다양한 은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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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칼럼

[고전 강론 38] 한 성령의 다양한 은사들

성령의 은사는 교회 유익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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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고전 12:4-11

 

[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5]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8]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지난 시간에 고린도전서 12:1-3절 말씀을 통해 “하나님 영의 표징”이라는 제목으로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성령을 의미하는데 성령의 역사를 증명할 수 있는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시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로부터 신령한 은사에 관해서 질의를 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 것이 진정한 성령의 역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영의 역사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게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다는 것은 성령께서 역사해 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린도 교회가 신령한 은사를 당시 헬라 세계에서 만연된 우상숭배 시 황홀경에 빠진 영적 문제가 교회 안에 침투해 들어왔습니다. 이러한 영적 황홀경과 성령의 은사를 구분하지 못하였습니다. 성령의 은사를 우상숭배자들의 영적 황홀경으로 잘못 이해하여 교회 내에서 성령의 은사로 인해 무질서해졌습니다. 바울은 이를 바로 잡았습니다. 성령의 은사, 즉 성령의 역사에 대한 표징은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백은 구원을 얻게 하는 고백입니다. 


이번에는 본문 말씀을 통하여 ‘한 성령의 다양한 은사들’에 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바울은 12장에 들어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 것인 성령의 역사로서 예배 시간에 영적 황홀경에 빠진 것이 성령의 역사가 아님을 진술합니다. 이번에는 구체적으로 성령의 다양한 은사들에 관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1. 은사, 직분, 사역의 원천(4-6)


첫째, 성령의 은사는 성령을 통하여 값없이 주시는 선물입니다(4).


본문 4절에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에게 하나님의 선물인 믿음을 주셔서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은혜가 임하지 않고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면 하나님께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를 받습니다(고전 7:7). 그리스도인들은 각자 받은 은혜에 따라 어떤 형태로든지 은사를 받습니다. 그 받은 은사는 같지 않고 다양합니다. 다 다릅니다. 그 다양한 은사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은사는 특별한 사람들만 받을 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이 성령을 통하여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의미로 말씀합니다. 은사의 출처나 원천은 ‘나’가 아니라 ‘성령’이십니다.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구원과 그의 영광을 위하여 선물로 주셨습니다. 은사라는 말 자체가 ‘카리스마’(χάρισμα)로 ‘은혜의 선물’입니다.


선물이란 내가 받고 싶다고 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쪽에서 주어야 받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은사는 내가 노력하고 쟁취하여 소유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나에게 선물로 주셨기에 나는 받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선물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 은사를 선물로 주신 분의 의도에 따라, 혹은 주신 분의 목적에 따라 사용해야 합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은사는 ‘여러 가지’라고 합니다. 여러 가지이지만 주신 분은 한 분이신 성령이십니다.


여기서 ‘여러 가지’라는 단어와 ‘성령은 같고’라는 단어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라는 말은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라는 의미입니다. 은사는 한 가지가 아닙니다. 여러 가지입니다. 은사가 다를지라도 동일한 한 성령에 의해 궁극적인 목적은 같습니다. 여기서 ‘은사의 다양성’이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문 5절, 6절에서도 ‘여러 가지’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은사는 다양하지만 단일한 의미가 있습니다.


둘째, 모든 직분은 주님이 주셨습니다(5).


본문 5절에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라고 합니다. 여기서 ‘직분’은 ‘디아코니아 diakonia’로서 ‘봉사, 직무, 집사의 직무’를 의미합니다. 예배와 우리의 봉사를 받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주는 같으며”라고 할 때 ‘주’는 ‘퀴리오스’로 이미 고린도전서 3:20절에서 언급한 것처럼 하나님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 ‘퀴리오스’는 신앙 고백적 표현인 “퀴리오스 이에수스(예수는 주이시다)”라고 할 때 예수 그리스도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가장 오래된 기독교 신조 중의 하나였습니다. 일찍이 교부들은 4절에서 ‘성령’, 5절에서는 ‘주’인 예수 그리스도, 6절에서는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근거로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5절에서 “주는 같으며”라고 할 때 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칼빈은 이 부분에서 이러한 삼위일체 교리의 근거로서 본문을 부정하지 않지만, 5절에서 ‘주’는 “그리스도만”이라고 하는 것은 억지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시라”라고 말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주 우리 하나님(호 퀴리오스 카이 호 데오스 헤몬)”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직분을 주신 분은 삼위 하나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성령의 은사를 주셔서 우리에게 직분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 직분은 ‘여러 가지’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다양한 직분으로 나타납니다. 그 직분의 원천은 나로 말미암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라고 말씀했습니다(1:1). 그 직분은 사도, 선지자, 교사 등이었습니다. 이런 직분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은사에 따라 주셨습니다. 이러한 직분의 목적은 오직 한가지입니다. 오직 주를 섬기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셋째, 사역은 여러 가지나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습니다(6).


본문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라고 합니다. 역기 ‘사역’이라는 명사 에네르게마는 신약성경에서 2회(고전 12:6과 고전 12:10에만) 나오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활동, 유효한 능력’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각각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이 모든 능력의 원천, 근원은 오로지 하나님의 능력에서 나온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사역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이 사역이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는데 그 은혜를 받은 자들에게 성령께서 다양한 은사와 직분을 주셨습니다. 그 직분을 감당하는 데 다양한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능력으로 인한 사역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사람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결국 4-6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교회 안에서 은혜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각종 은사와 직분을 받아 사역하게 됩니다. 이러한 모든 과정의 원천은 우리 인간이 아니라 오직 삼위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이 모든 일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성령께서 나누어 주셨고, 주를 섬기게 하도록 주신 것들입니다. 궁극적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하여 모든 사람에게 모든 구원의 역사를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의한 것들입니다. 성령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은 다양하지만 모든 한 원천인 삼위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고 오직 주를 섬기기 위한 목적입니다.


2. 성령의 은사 목적(7)


본문 7절에 “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7절에 와서 이제 은사를 주신 목적이 무엇인가를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사를 주신 것은 의미 없이 주신 것은 아닙니다. 은사를 주실 때에는 특별한 어떤 의미가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이러한 은사의 의미나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 은사를 남용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12:1절에서 언급한 대로 알아야 합니다. 알지 못하면 “무식이 용감해지는 법이다”라는 불필요한 열심히 신앙과 교회를 혼란케 할 것입니다.


사도는 본문에서 “성령의 나타남”에 관해서 언급합니다. 여기 ‘나타내다’라는 단어는 ‘파네로시(φανέρωσις)’로서 ‘계시, 나타남, 현시, 드러남, 폭로’ 등을 의미합니다. 성령께서 나타내시는 증거가 은사인데 그 은사를 통해 주시는 목적이 교회 유익입니다. 사도는 8절 이하에서 각종 은사를 언급하기 전에 먼저 그 은사의 목적을 언급합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의 머리 되신 교회가 그 은사를 통하여 유익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나의 유익도, 너의 유익도 아닌 오직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문제는 교회의 유익이 아닌 은사나 직분은 본래의 의도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영적 은사에 관한 질문을 받고 그 질문에 답변은 신령한 은사를 먼저 설명하면서 그 은사의 목적을 언급합니다. 이런 언급은 고린도 교회가 잘못된 은사로 인해 교회가 혼란해지고 무질서해지는 것을 방지하여 분쟁을 해결하고 방지하려는 의도를 갖고 이런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섬기는 교회에서 내가 받은 은사와 직분을 그 본래의 목적과 의도대로 활용하고 있는가? 즉 사역하고 있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은사를 받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없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은혜를 주시고 그 은혜의 결과로 은사를 주십니다. 그런 은사는 그 개인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은사를 사용하여 교회의 공익과 봉사와 섬김을 위해서 주셨습니다.


3. 다양한 은사들(8-10)


본문 8-10절 말씀에서 언급된 각 은사는 크게 3가지 형태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교육적 은사들, 둘째, 초월적인 힘을 발휘하는 은사들, 셋째, 특별한 의사소통을 위한 은사들입니다.


첫째, 교육적 은사들입니다(8).


본문 8절에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여기서 언급된 은사는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은사”입니다. 이런 은사는 주로 가르치는 은사입니다.


칼빈은 여기서 지혜란 거룩한 일들을 깨닫게 하는 깨달음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또한 지식은 어떤 실제적인 목적으로 전환하는 기술이라고 말합니다. 이 두 단어는 상호 간에 아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지식은 일반적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지혜는 감추어진 것을 통찰력을 통하여 더 은밀한 비밀과 고차원의 본질까지를 깨닫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를 위한 지혜의 은사, 지식의 은사를 언급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원천으로 한 지혜와 지식의 은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초월적인 힘을 발휘하는 은사들(9)


본문 9절에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이 은사는 초월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은사로서 “성령으로 믿음”,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가서 “성령으로 믿음”은 일반적인 구속의 은혜를 믿는 믿음이 아닙니다. 칼빈은 여기서 믿음은 “기적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타난다는 그런 형태의 믿음을 나타내고 있다”라고 해석하고 설명합니다. 크리소스톰은 “기적에 관계된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입니다.


셋째, 특별한 의사소통을 위한 은사들(10)


본문 10절에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은사는 특별한 의사소통을 위한 은사들입니다.


칼빈은 여기서 “병 고치는 은사와 기적을 행하는 은사는 둘 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에게 나타내시는 방편이 되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단을 제압하고 멸망시키기 위하여 이런 기적을 준엄하게 행하십니다.


예언의 은사입니다. 예언이란 하나님의 은밀하신 뜻이 무엇인가를 게시하는 유일하고 뚜렷한 은사입니다. 이 은사는 선지자들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나타내시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영들 분별 은사”입니다. 거짓 진리에 넘어가는 사람들을 돌이키게 하려면 특별한 통찰력을 가진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거짓 교리와 진리에 넘어가지 않도록 막는 것만이 아니고 진리와 비진리를 분별하게 하여 넘어가지 않게 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물론 이 역시 하나님의 말씀의 바른 이해 없이는 불가능한 은사입니다.


다음은 “각종 방언”과 “방언 통역”의 은사입니다. 방언과 통역의 은사는 힘든 언어를 배움으로 깨달은 것이 아니고 성령의 놀라운 계시로 이 은사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당시에 언어가 다른 다양한 지역에서 찾아온 사람들에게 사도들이 복음을 증거하려고 할 때 있었습니다. 그때 성령께서 특별한 계시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특별한 의사소통으로 방언과 그 통역의 은사를 허락했습니다.


4. 교훈과 적용


본문 11절에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라고 합니다. 이 모든 다양한 은사들은 한 성령의 주권적 결정에 따라 그리스도인들에게 나누어 주신 것이 각종 은사입니다. 누구든지 타인의 자신의 은사를 업신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은사에 대해 열등감에 빠지면 안 됩니다. 그리고 모든 은사를 교회 유익을 위해 주셨습니다. 내가 받은 은사로 교회 분쟁을 가져오거나 혼란케 한다면 그 은사를 성령의 은사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잘못된 은사를 성령의 은사로 착각하고 결국 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령의 은사는 거룩한 조화를 이루도록 합니다.

성령의 은사는 모두가 함께 격려하며 위로하며 사역을 진행하게 합니다.

성령의 은사는 모두를 하나 되게 하는 수단이 됩니다.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여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성령의 은사는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주셨을 뿐입니다.

성령의 은사로 각 사람에게 나눠주었을 뿐 한 사람에게 모두 몰아 주시지는 않습니다.

성령의 은사는 교회 그리스도인의 공동 이익을 위해서 활용됩니다.

성령의 은사는 다른 사람과 절연하고 혼자 자기도취에 빠진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성령의 은사는 혼자 자신이 받은 것을 낭비하기 위해 주신 것은 아닙니다.

성령의 은사는 서로 의지하며 연합하도록 합니다.

성령의 은사는 다른 사람이 받은 은사와 적절하게 유지하게 합니다.

성령의 은사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합니다.

 

소재열 목사(새사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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