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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강론 35] 주의 성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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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칼럼

[고전 강론 35] 주의 성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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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고전 11:23-26


[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지난 시간에 고린도 전서 11:17-22절 말씀을 통해 “교회의 분쟁과 인정받지 못한 성만찬”이라는 제목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내 분쟁, 즉 파당의 문제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결코 이를 칭찬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고린도 교인들의 모임은 편당(偏黨)을 이루어서(19절) 부유한 자들이 가난한 자를 업신여기고(22절) 주의 만찬이 왜곡되어 유익이 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해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만찬”이 아니라 “자신의 만찬”이 되고 말았습니다. 주님의 만찬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습니다. 주님의 지체들과 교제를 깨뜨리는 만찬은 성만찬이 될 수 없었습니다. 성찬식을 통해 모든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지체로서 서로 교제해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 하나 됨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여기에는 서로에 대한 미움과 갈등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 됨의 파괴되고 주의 만찬이 왜곡되므로 그로 인한 거룩한 의미가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서로 미워하고 갈등하고 분쟁으로 혼란을 겪은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교회는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번에는 본문 11:23-26절까지 “주의 성만찬”이라는 제목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주의 성만찬을 말하기 위해 이미 지난 시간에 살펴본 대로 11:17-22절까지 잘못된 주의 만찬에 관해서 언급했습니다. 사도는 잘못된 주의 만찬을 언급하고 나서 이제 무엇이 주의 만찬, 즉 성만찬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에 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성만찬(23-25)


사도 바울은 이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무엇이 올바른 성만찬인지를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이 내용은 오늘날 우리 교회가 성만찬에 대해서 바른 의미를 배워야 합니다. 바른 의미뿐만 아니라 그 형식도 배워서 바르게 시행하여야 합니다.


첫째,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23, 상).


본문 23절에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미 고린도 교회를 시작할 때부터 이러한 주께 받은 것을 전했습니다. 여기 ‘전한 것’과 ‘받은 것’은 전통적으로 전승하여 계승된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 “주께 받은 것”이란 바울이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전승받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의 계시로 직접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갈 1:12).


이 성만찬의 원천이 주님이십니다. 주님으로부터 시작된 이 성만찬이 자기보다 먼저 그리스도인 된 자들로부터 전승받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를 계시로 받았습니다. 이 성만찬은 교회의 신앙생활의 기본 요소 중 하나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바울은 이미 이러한 성만찬에 대해 고린도 교회가 시작할 때부터 전했습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몰랐다는 말로 핑계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성만찬에 대한 권위의 근거는 주님이시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성만찬이 권위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라고 합니다(23, 중).


이 이야기는 예수님이 배신을 당하시던 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성만찬 의식은 최후의 밤에 앞으로 일어날 십자가의 죽음을 내다보면서 진행된 의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많은 고난을 받고 잡혀서 십자가를 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대속물로 주려고 오셨다고 했습니다.


이제 이러한 거룩한 하나님의 구원을 위해 자신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대적자들에게 잡히시던 밤에 제자들에게 자신이 이 땅에 온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거룩한 일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날은 성스러운 날이었습니다. 그날은 거룩한 밤이었습니다. 엄숙한 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으로 오시는 그날 밤도 거룩한 밤이었습니다. 이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도 거룩한 밤에 이루어졌습니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흑암의 권세로 가득한 칠흑 같은 밤에 거룩한 생명의 빛을 바라보는 밤이었습니다. 


셋째, “밤에 떡을 가지사”라고 합니다(23, 하)


마태복음 26:26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라고 합니다. 여기 “그들이 먹을 때”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상에서 떡을 취하여 들어 보이셨습니다. 그때가 바로 유월절 때였음으로 당시 사용된 떡은 누룩을 넣지 않은 무교병이었을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약의 예언과 약속을 이루시기 위하여 이제 거룩한 의식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떡은 주님의 십자가 죽음을 기념하는 것으로 떡을 찢어서 제자들에게 나누어줍니다. 마치 예수님은 이 떡이 찢어서 제자들에게 나누어준 것처럼 예수님의 육체가 십자가 못 박힘으로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의롭게 되는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넷째,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라고 합니다(24).


24절에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떡을 떼기 전에 “축사하시고”라고 합니다. 먼저 떡을 가지시고 축사하셨습니다. 공관복음인 마태복음 26:26절과 마가복음 14:22절에는 “축복하시고”라고 기록됩니다. 누가복음 22:19절에는 본 구절과 같이 “축사하시고”라고 합니다. 축사와 축복은 같은 뜻입니다. 이는 둘 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에 감사하면서 축복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떡을 ‘떼어’라는 말씀은 성찬 의식의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라고 합니다. 떡을 떼어 나누어 주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라고 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희생을 당하는데 이러한 십자가 죽음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로마가톨릭교회에서는 성찬식의 떡과 포도주를 화체설(化體設)로 주장합니다. 화체설이란 성찬식 때 신부가 축도하면 그 떡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주장입니다. 루터에 의한 루터교에서는 공재설(共在設)을 주장합니다. 이 주장은 떡 속에 예수님의 살이 있으며, 포도주 속에는 예수님의 피가 같이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잘못된 것입니다.


본문에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식사를 위해 떡을 부수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이는 다음날 십자가를 통해 자신의 몸이 부수어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들을 ‘위한’ 대속의 죽음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 십자가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그의 ‘몸’(교회)을 이루게 됨을 의미합니다.


다섯째,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나를 기념하라”라고 하십니다(25).


본문 25절에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떡을 떼어 나누어 주신 다음에 잔을 가지사 그것을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마시도록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빨간 포도주가 담긴 잔이 다음날 다가오는 자신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피 흘림)의 의미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새 언약의 피”는 출애굽기 24:8절에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라는 말씀처럼 이 언약을 성취하는 새 언약을 세우는 제사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에 대한 구속의 은혜를 입어 그 새 언약에 의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교회의 지체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경배하게 될 것입니다.


“나를 기념하라”, “나를 기억하기 위해 이것을 하라”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기억함’ 또는 ‘기념함’은 유대 전통(출 12:14)에서 유래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유월절 만찬을 되풀이하면서 그 만찬에서 출애굽기의 기사를 낭독합니다. 그렇게 낭독함으로써 출애굽 사건에서 보여준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기념) 하였듯이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과거 하나님의 구원을 현재화하였듯이 그리스도인들도 “주의 만찬”을 계속 반복하면서 그의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을 ‘기억’(기념)하여 오늘 나에게 ‘현재화’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대속적 은혜를 날마다 묵상하고 기억하면서 날마다 새롭게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게 될 것입니다.


2. 성찬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전해야 합니다(26).


본문 26절에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26절에서 성찬에 대해 말씀한 이후 성찬에 참여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떡을 먹으며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증거하되 다시 오실 때까지 전해야 합니다. 즉 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첫째, 성찬은 주님의 재림 때까지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선포해야 한다는 것은 그 십자가를 증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십자가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우리에게 임하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구원이 우리에게 임합니다. 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러한 복음을 눈에 가시적으로 보이는 복음 선포가 바로 성만찬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찬을 통한 복음 증거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성찬에서 떡과 포도주잔은 우리의 배고픔을 채우는 수단으로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드러난 위대한 복음이며, 이 복음이 성찬의 의미 속에 담겨 있습니다. 이 성찬에 대한 의식은 일시적으로 주어진 의식이 아니라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돼야 할 의식입니다. 이 의식을 거룩한 의식이라 하여 ‘성례’라고 합니다.


교훈적 적용


요한복음 6:5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 때문에 1세기 초대교회 공동체는 그리스도인들은 식인종으로 오해를 받아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기독교를 오해할 때 주후 3-4세기에 교부들은 변증하였습니다. 이들을 변증가라고 합니다. 그리스도교를 오해한 자들에게 성경적 진리를 보호하고 적극적으로 그들을 공격하여 바른 진리를 지키고 계승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인자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야 한다는 의미는 거룩한 성찬에 참여하여 떡을 떼어 먹고 포도주의 잔을 마십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피를 흘려 우리의 죄를 위하여 대속의 죽음에 대한 십자가를 믿게 됩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 구원을 받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성찬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표하여,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사실을 “주의 만찬”을 행하여 주님이 오실 때까지 이를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러한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종들이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소재열 목사(새사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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