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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강론 31] 우상숭배 잔치에 참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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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칼럼

[고전 강론 31] 우상숭배 잔치에 참여 금지

우상숭배 잔치 참여는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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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고전 10:14-22


[14]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15] 나는 지혜 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가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

[16]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17]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18]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냐

[19]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냐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냐

 

[20]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21]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

[22]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지난 시간에 고린도 전서 10:1-13절 말씀을 통해 “출애굽 세대를 통한 경고와 교훈”이라는 제목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신앙에 있어서 중요한 내용들은 반드시 알아야 함을 말씀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해 그 믿음의 근거가 되는 성경을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지식은 우리의 신앙을 더욱 굳건하게 해 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으로 내려가 430년 동안 많은 고통 속에서 민족적인 단위로 성장하였습니다. 70명이 애굽으로 내려간 후 430년 동안 200만 명으로 번창하였습니다.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과 약속하신 대로 그들은 애굽에서 해방을 받았습니다. 해방을 받은 후 광야에서 40년 동안 살았습니다. 이 기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범죄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지난 시간에 출애굽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심판받은 사건은 오늘날 우리에게 거울이 되고 교훈이 된다는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하나님께 등을 돌리려는 본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반복된 학습이 필요합니다. 


이번에는 본문 고린도 전서 10:14-22절 말씀을 통하여 “우상숭배 잔치에 참여 금지”에 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성찬식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룩한 마음으로 참여하여야 합니다. 그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은 우상의 잔치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사도는 분명하게 성찬식과 우상의 잔치를 구별합니다. 그리고 우상숭배에 관해서 계속하여 말씀합니다.


1. 우상숭배에 대한 경고(14-15)


본문 14절에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라고 합니다. 여기 ‘그런즉’이라는 단어는 앞 구절과 밀접한 논리적으로 연결하는 단어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미 7절에서 언급한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라는 말씀에 대한 경고를 본격적으로 펼쳐갑니다.


바울의 권면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계시된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유일한 하나님을 전제하여 자신의 교훈을 이어갑니다. 삼위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싫어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본문에서 “내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합니다. 마치 부모가 자녀에게 권면하는 것과 같은 사랑입니다.


사도는 우상숭배하는 일을 피하라고 합니다.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고 하나님을 경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은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나오는 경외를 의미합니다. 여기에 반대로 우상숭배나 그를 의식하는 것 조차 피해야 합니다. 


마음속뿐만 아니라 외형적으로 우상숭배의 잔치에 참여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경배를 우상에게 드리는 그 어떤 행위도 거부해야 합니다.


15절에서는 “나는 지혜 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가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이런 말씀입니다. 14절에서 우상숭배를 피하라고 했습니다. 그런 후 바울은 고린도인들이 적어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여 말씀을 합니다. 한번 판단해 보라고 합니다. 이런 형식으로 사도는 계속하여 우상 숭배하는 일은 하나님 백성들에게 범죄라는 형식으로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혜를 가지고 있다며 자만하며 뽐내는 고린도 인들은 바울로부터 경고를 받아야 합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바울의 이러한 경고가 기분이 나쁠지라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데 우리들의 자존심이 뭐 그리 대단하겠습니까?


2. 성찬식과 우상숭배 잔치의 다른 점(16-20)


첫째, 성만찬 잔치와 우상숭배 잔치는 전혀 다릅니다(16-17).


16절에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라고 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우상숭배는 전혀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성만찬은 빵과 포도주의 두 가지 요소로 이루어집니다. 여기서 바울은 두 번째 요소인 포도주에 대해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포도주를 “축복의 잔”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때 포도주잔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복을 빌었던 상황을 연상하고 있습니다.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그리스도 속죄의 제사로서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것에 “참여함”은 그 사건에 덕을 입음을 말합니다. 따라서 성만찬에 참여한 자는 포도주를 마심으로써 그리스도 속죄의 죽음이 가져온 구원에 참여하는 자입니다. 이어서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입니다. 이 참여함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본문 17절에는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라고 합니다. 성찬식에 참여한 자들은 한 개의 떡을 나누어 먹습니다. 이는 함께 십자가의 죽음에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성찬식에 참여한 모두가 한 “그리스도의 몸”에 함께 내포되어 하나의 “그리스도의 몸”, 즉 “교회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과 고린도 전서 12장에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몸을 성찬식에서 떡으로 상징되는 그리스도의 몸과 연결하고 있습니다.


둘째, 제사의 예로 성찬식을 성격을 설명합니다(18).


본문 18절에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냐”라고 합니다. 바울은 여기서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언급합니다. 이는 유대인을 지칭합니다. 유대인들의 제사를 예로 들면서 성찬식의 성격을 설명합니다.


레위기 7:6절에 ”제사장인 남자는 모두 그것을 먹되 거룩한 곳에서 먹을지니라 그것은 지극히 거룩하니라“라고 합니다. 제사에서 제물 일부는 하나님께 바치고, 다른 일부는 그 잔치에 참여하는 자들이 나누어 먹었습니다. 이러한 잔치를 통하여 하나님과 잔치의 참여자들 사이에 연합이 이루어집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피로서 보증됩니다.


셋째,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은 헛된 행위입니다(19).


본문 19절에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냐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냐”라고 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논지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자들,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을 언급합니다. 마치 바울이 우상이 어떤 실체가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또한 우상이 어떤 능력을 가진 것으로 만들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살아계신 하나님과 우상을 비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감히 어떻게 하나님과 우상을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성례라는 방법을 통하여 우리를 그에게 연합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상에게는 이런 일들이 있을 수 없습니다. 바울은 우상 그 자체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상에게 제물을 드리는 사람들의 마음 자세를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상이 아무것도 아님을 말합니다. 


넷째, 그러나 사탄은 우상을 이용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합니다(20).


20절에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라고 합니다. 바울은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의 논지를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우상은 신이 아니며,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우상이 어떤 능력을 갖췄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방인들이 제사를 드리는 것은 귀신에게 제사를 드립니다. 즉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있는가, 귀신에게 제사를 드리고 있는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어떤 일의 뒤에 숨은 그 동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은 그들이 사악한 종교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귀신은 우상 뒤에 숨어서 작용합니다. 귀신이 그 자체로서는 목석에 불과한 우상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유혹하고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그러므로 우상에게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제사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이방인들의 우상숭배 잔치에 참여하는 것은 스스로를 귀신의 영향력 아래 밀어 넣는 행위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그리스도인 중에 소위 “강한 자들”의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있습니다.

 

3. 성찬식에 참여한 그리스도인은 우상숭배 잔치 참여 여부(21-22)


첫째, 잔치에 참여는 하나 됨을 의미로 우상숭배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21).


본문 21절에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라고 합니다. 성만찬과 마찬가지로 우상숭배의 잔치에 참여한 자들은 우상숭배의 대상인 귀신과 하나 됨을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성만찬에 참여하는 그리스인은 우상숭배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둘째, 우리의 잘못된 우상숭배의 잔치에 참여하므로 심판을 초래해서는 안 됩니다(22).


본문 22절에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라고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우리가 우리의 우상숭배로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면 되겠느냐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주님보다 더 강한 자냐고 묻고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노하게 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싸우는 자들은 스스로 파멸할 것입니다. 더 강하지 않다면 강한 분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상숭배의 잔치에 참여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과 적이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하나님의 요구하신 말씀을 순종해야 합니다. 이를 거부하면서 피해가려는 그 어떠한 변명도 통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해방을 받아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그 일로 하나님의 노여움으로 징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노여움으로 인한 징벌을 피하는 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의로움을 받은 우리는 이제는 하나님의 노여움을 받지 않도록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바른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신명기 32:21절에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내 질투를 일으키며 허무한 것으로 내 진노를 일으켰으니 나도 백성이 아닌 자로 그들에게 시기가 나게 하며 어리석은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일으키리로다”라고 했습니다. 


교훈과 적용


바울은 고린도 교회 분쟁에 관해서 교훈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다양한 문제로 분쟁합니다. 그 이유는 그만큼 구성원인 그리스도인들의 마음과 생각이 다를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무어라고 말씀하고 있는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특히 성만찬에 대해서 우리는 신약성경에서 많이 배우고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종교개혁 이후 로마 가톨릭교회의 미사와 성찬식은 우리 개혁교회와 어떻게 다른지도 알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사도들이 가르친 성찬식은 교회 분쟁의 원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인 그리스도인들은 성만찬에 참여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구원의 은총을 누립니다. 그리고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하나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이 우상숭배의 잔치에 참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음을 언급합니다. 이러한 말씀의 교훈은 우리들이 받아야 합니다. 우상숭배의 잔치에서 우상이란 존재하지 않는 허상입니다. 문제는 그러한 허상을 마귀가 귀신을 통해 이용합니다. 장난질을 합니다.


우상숭배의 잔치에 참여한 것은 곧 마귀에게, 그 마귀의 하수인인 귀신을 숭배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잔치에 참여한 것은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서 징벌을 받습니다. 이러한 사도 바울의 교훈과 그 경고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들의 마음이 하나님께서 떠나 이 세상 것들로만 가득차 있다면 그것은 올바른 신앙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들의 마음 중심과 생각을 다시 한번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다듬는 일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소재열 목사(새사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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