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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강론 24] 처녀에 대한 바울의 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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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칼럼

[고전 강론 24] 처녀에 대한 바울의 권면

고전24.jpg

 

 

본문 / 고전 7:25-28



[25]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스러운 자가 된 내가 의견을 말하노니

[26]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27] 네가 아내에게 매였느냐 놓이기를 구하지 말며 아내에게서 놓였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

[28] 그러나 장가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지난 시간에 고린도전서 7:17-24절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에 충실하라”라는 제목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우리를 부르셨으며, 은혜로 부름을 받았다면 각자에게 은사를 주시고 사명을 주셨다고 합니다. 은사에 따라 사명을 받을 때 내가 처한 삶의 현장에서 취할 수 있는 태도와 자세가 어떠해야 하냐는 문제를 살펴보았습니다.


우리 각자에게 은사를 나누어 주셨다는 것은 우리 각자에게 사명을 주셨음을 의미합니다. 은혜로 우리를 부르시는 부름은 동시에 사명에로 부르심을 내포합니다.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출석하면서 은사에 따라 직분을 주시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신자들이 사명을 받았다고 하여, 그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가정을 버려야 하고 직장을 버려야 합니까? 아니면 가정과 직장을 소홀히 해야 합니까? 여기에 사도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자신이 처한 삶의 현장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 바울의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신분과 처지를 절대화하지 말고 상대화해야 합니다. 신분과 처지에 생명을 걸지 말고 상대화시켜 그리스도의 종으로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할례자나 무할례가 다 의미가 없습니다. 모두가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며, 그의 종입니다. 이제 머슴이나 주인이 믿음 안에서 하나이며, 모두가 그리스도의 안에서 자유자이며, 그의 종일 뿐입니다.


이번에는 본문 7:25-38절 말씀을 통하여 “처녀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이라는 제목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처녀에게


1. 처냐에 대한 바울의 의견(25)


본문 25절에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스러운 자가 된 내가 의견을 말하노니”라고 합니다. 여기 “처녀에 대하여는”라고 하는 이야기는 고린도인들이 바울에게 편지로 자신들에게 문제가 된 처녀들의 결혼 문제에 대해 질의했음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은 문제에 부딪치며 살아갑니다. 삶의 현장에서 ‘이 길이냐, 저 길이냐’에 대한 판단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 본인의 처지에서 얼마나 고민이 많겠습니까? 신앙을 갖고 있지 않다면 자신의 소신 있는 주관적 판단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신앙인 일 경우에는 문제가 달라집니다. 문제 해결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말할 때 감히 이 땅에서 누가 하나님의 뜻을 자신 있게 대답해 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자기 뜻을 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삶의 구체적인 현장 상황에서 무엇이 하나님의 뜻이냐에 대해 답변할 때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살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구체적으로 문제에 대해 답변하지 않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원리적으로 성경에서 인출할 수는 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가 전제되지 아니하면 그것도 참 힘듭니다. 그래서 목회자에게 자기 삶의 현장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무엇이 하나님의 뜻이냐를 묻습니다.


여기서 모든 성도가 이러한 고민과 문제를 안고 목회자에게 찾아와 하나님의 뜻을 묻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심각한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목회자는 성도들의 개인적인 삶에 대한 문제를 구체적으로 개입할 수 없습니다. 성도들에게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강해 설교나 각종 성경 연구 시간에 성경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에 관해 설명합니다. 그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시며,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게 무엇을 말씀하셨는가를 설명합니다.


이러한 설교를 듣는 중에 성도들은 자신의 문제에 대해 해결을 받습니다. 설교 자체가 그 사람에게는 상담의 역할까지 이루어집니다. 목사님을 만나 상담을 받고 실었지만, 설교는 듣는 중에서 그 문제가 해결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거나 듣는 중에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셔서 해결할 수 있는 지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본문에서 사도는 고린도 교회로부터 질문을 받습니다. 그 질문은 처녀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못 박히시고 죽으시고 부활 승천한지 약 20년 전에 일어났습니다. 고린도전서는 바울의 이른바 제2차 선교여행 중인 주후 50~51년의 겨울에 고린도 지역에서 1년 6개월 정도를 머물면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 후 주후 52~54년 동안 에베소에 체류하면서 고린도전서를 써서 보냅니다. 그렇다면 이 편지를 받은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이미 20~25년 전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사건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3년 동안 많은 사람에게,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고 그 하나님의 계시를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질문해 온 처녀에 대한 문제는 이혼의 문제와는 달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 부분의 이야기가 “처녀에 대해서는 주님의 명령을 받지 못하였지만”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주님의 명령을 받지 못하였지만, 자신의 의견을 줍니다. 그러나 사도는 자신이 주님의 자비로 받은 사도직을 충실히 수행하는 자이므로 자신의 의견은 곧 주님의 뜻을 대변하는 것임을 언급합니다. 즉 주님의 자비를 통해서 나온 신뢰할 만한 견해입니다.

 

환난과 결혼

 

2. 처녀에 대한 권면(26)


본문 26절에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라고 합니다. 사도는 이미 7:8절에서 독신을 성적 절제의 은사와 연결시켰습니다. 그러나 본문 26절에서는 임박한 종말의 환난에 근거하여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임박한 재난을 생각한다면 사람이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도는 임박한 종말을 환난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환난은 종말의 구원 전에 있을 고난에 대한 묵시 문학적 표현입니다.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큰 군주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단 12:1)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 7:14) 


사도 바울은 당시 고린도 교회가 당면한 환난도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시까지 당할 하나님 교회가 당할 환난도 있습니다. 그 환난의 모습들은 여러 형태로 나타납니다. 삶에 부딪히면서 당한 환난이 있습니다. 본문의 ‘환난’이라는 단어는 재앙, 핍박, 시련 등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환난 때문에 처녀가 시집가지 않고, 총각이 장가가지 않고 그대로 지내는 것이 좋다는 바울의 권면입니다. 이러한 권면을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하여 결혼하면 너무나 고통스러우니 결혼하지 말로 그냥 처녀로 지내는 것이 좋다고 가르친다면 어떤 일들이 일어나겠습니까? 자녀를 둔 부모님의 고민과 갈등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이렇게 적용해 보겠습니다. 지금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처녀가 시집가는 것이 좋겠습니까? 아니면 그대로 처녀로 지내는 것이 좋겠습니까? 사도 바울의 권면에 의하면 그냥 처녀로 지내는 것이 좋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말씀을 오늘날 우리 삶의 현장에 적용할 때 모든 처녀에게 결혼하면 골치아프니 결혼하지 말고 처녀로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해야 하겠습니까?


본문에 “임박한”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에네스토산’은 “그때 눌리는, 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 사도 바울에게 처녀에 대해 질문을 할 때는 심한 시련들을 겪고 있었습니다. 사도의 이러한 답변은 영구적인 규례가 되기를 원치 아니하였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임박한 환난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사도가 “그가 있는 그대로 지내는 것이 좋다”는 말과 “나는 사람이 같이 처신함이 좋다고 권면하는 바이다”라고 하면서 27절 말씀을 진술한다. 26절은 27절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결혼은 죄가 아니다

 

3. 바울의 권면(27-28)


첫째 독신을 위해 결혼을 파기하면 안 됩니다(27).


본문 27절에서 “네가 아내에게 매였느냐 놓이기를 구하지 말며 아내에게서 놓였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결혼으로 이미 결합한 자들이 그 결혼을 파기하므로 독신생활의 유익한 점에 영향을 받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즉 아내가 있는 사람은 헤어지려고 하지 말고 아내가 없는 사람은 아내를 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모두가 믿음에로의 부름을 받았을 때의 처지에 머무는 것이 좋다는 원칙에 근거해 충고합니다. 이를 남자와 여자에게 각각 적용합니다. 이미 결혼한 남자는 이혼하지 말라고 합니다. 물론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미혼인 총각은 아내를 구하지 말고, 미혼인 처녀도 남편을 구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도는 이 충고를 율법으로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9절에서 언급한 대로 절제의 은사가 없으면 결혼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러므로 총각이나 처녀가 결혼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바울이 이 충고를 주는 것은 그들을 다가오는 종말의 환난에 결혼생활이 필연적으로 가져올 더 큰 어려움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둘째, 결혼한 것은 죄가 아닙니다(28).


본문 28절에서 “그러나 장가가도 죄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가도 죄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라고 말씀합니다. 본문에서 “아니요”, “아니로되”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처녀가 시집가도 죄짓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처녀가 결혼할 때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이미 본문 26절에서도 언급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현실적으로 고린도 교회가 당한 육신적 환난, 다가올 재앙을 내다보면서 염려하는 사도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결혼이 죄가 아니라는 말로 자신의 양측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판단은 각자가 할 것입니다. 


교훈과 적용


사도 바울은 중요한 원칙을 제시합니다. 결혼은 신성한 것이며,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결혼이라는 제도를 창설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결혼이 때로는 많은 아픔을 가져옵니다. 결혼한 후 이혼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이혼한 후 남자든, 여자든 혼자되었을 때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충고합니다. 그리고 아직 한 번도 결혼하지 않는 남자나 여자에게 권면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권면은 사도가 결혼이 죄이기 때문이 아니라고 분명히 못을 박습니다. 혼자 사람들이 결혼할 것인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할 때 독신의 은사를 받았다면 혼자 사는 것도 좋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결혼하는 것이 문제 되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심지어 혼자 살면서 절제의 은사를 받지 않았다면 결혼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고린도 교회가 그들의 편자 가운데 처녀들의 결혼 문제에 대해 바울에게 그 교훈을 구했습니다. 이 처녀에 대한 문제는 이혼의 문제와는 다릅니다. 이혼의 문제와는 달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없으므로 사도는 자신의 의견을 제시합니다. 자신의 의견은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도직을 충실히 수행하는 자라고 언급합니다. 충실하게 사도직을 수행하는 자이기 때문에 자신의 의견은 곧 주의 뜻을 대변하는 것임을 주장합니다.


사도 바울이 처녀에 대한 자신의 뜻이 고린도전서에 기록됨으로 이 역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늘날도 우리에게 적용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인 본문을 통해 처녀들은 결혼하면 환난의 고통을 받기 때문에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것이 좋다는 식으로 적용해 버리면 안 됩니다. 여기서 사도는 전제한 것이 있습니다. 결혼은 죄가 아닙니다. 독신의 은사를 받았다면 혼자 사는 것입니다. 독신의 은사를 받지 않았다면 결혼하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결혼 그 자체는 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결혼한 남자나 여자는 이혼하지 말라고 합니다. 


소재열 목사(새사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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