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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강론 22] 결혼과 이혼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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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칼럼

[고전 강론 22] 결혼과 이혼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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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고전 7:8-16


[8]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9]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10]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11] (만일 갈라섰으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12]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를 버리지 말며

[13]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14]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15]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16] 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지난 시간에 고린도전서 7:1~7절 말씀을 통하여 “부부의 이상적인 관계”라는 제목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분쟁에 관한 이야기를 1:10-17절 말씀에서 한 후 1:18절에서는 4장까지(21절) 고린도 교회의 분쟁 이유, 즉 분쟁의 원인에 대해서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음행에 관한 이야기와 그에 대한 사도의 가르침에 대해 5:1-19절까지에서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교회 내 신자 간의 소송에 대해서 6:1-11절 말씀을 통해서 말씀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고린도 교회가 구체적으로 사도에게 질문한 편지에 대해 답변한 내용이 7:1절에서부터 마지막 16장에 이르는 다양한 주제의 내용에 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7:1~7절 말씀을 부부의 결혼생활에 대한 이상적인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부부관계에서 남편과 아내는 서로 하나이며, 하나를 실현하기 위해 남편이 취해야 할 자세, 그리고 아내가 취해야 할 자세와 태도를 살펴보았습니다. 


헬라적 사고방식이 교회 내에 침투해 들어온 영육 이원론 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에 의해 형성된 열광주의자들과 금욕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한결 곁이 육체는 악하고 영은 선하다고 믿었습니다. 영적으로 하나님께 구원을 받는 것은 선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육체는 악하다고 믿었습니다. 사라질 육체를 자기 멋대로 음욕으로 사용하는 행위를 지적하면서 우리 육체는 성령이 거하는 전으로 거룩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없어지고 사라질 육체를 통해 향락을 위한 쾌락주의여서는 안 됩니다. 반대로 금욕을 통하여 육체를 학대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사도는 이 모두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건전한 부부관계를 통해 열광주의나 금욕주의 모두를 반대하고 하나님 앞에 이상적인 부부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본문 7:8-16절 말씀을 통하여 이상적인 부부관계에 이어 구체적으로 “결혼과 이혼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이란 제목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미혼자


1. 미혼자들과 과부들에게 충고(8-9)


사도 바울은 먼저 미혼자들과 과부들에게 충고합니다. 이들은 결혼이나 재혼하지 않고 혼자 산다는 데 특징이 있습니다. 혼자 사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독신의 은사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독신의 은사가 아닐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대한 교훈입니다. 본문은 사도가 결혼에 대한 성경적 의미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내 음행과 관련하여 이를 치유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을 뿐입니다. 


첫째, 미혼자들과 과부들에게 그냥 혼자 사는 것이 좋습니다(8).


본문 8절에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사도는 미혼자인 남성과 과부인 여성에 관해서 말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도가 여성과 남성만을 특정하여 말하지 않고 남자와 여자에게 동등하게 원칙들을 적용해 온 것이 지금까지의 말씀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은 미혼자들과 과부라고 할 때 미혼여성과 상처한 남자에게도 적용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도는 일차적으로 미혼자와 과부들에게 말하기를 사도와 같이 혼자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바울 자신과 같이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이는 전제가 있습니다. 절제의 은사를 받았을 경우로 제한합니다. 독신의 은사임을 점검하는 첫 번째 기준은 절제의 은사를 받았느냐에 있습니다. 이 부분은 9절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둘째, 그러나 결혼한 것이 더 나은 경우가 있습니다(9절).


본문 9절에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사도는 ‘그러나’라는 접속사를 서용하면서 8절의 말씀대로 혼자 살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한 자들에 관해서 언급합니다. 남자나 여자, 혹은 과부가 스스로 절제할 수 없으면 결혼하라는 겁니다. 정욕으로 불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편이 낫습니다.


절제의 은사를 받았다면(7절) 미혼 남성이나 여성, 또는 결혼에 실패한 남자나 여자 모두는 혼자 사는 것도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중요한 좀은 절제할 수 없을 때는 결혼하라는 겁니다. 그 이유는 내적으로 정욕적인 마음으로 가득하여 있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낫기 때문입니다. 정욕으로 불타는 상태에서 “단정한 몸가짐으로 그리고 온전한 정신으로 주를 섬기기”(35절) 는 불가능합니다.


결혼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5:22-33절 말씀을 통하여 신성하다는 사실을 언급합니다. 한 남자와 여자와 결혼을 통한 연합은 결국 그리스도와 그의 지체인 성도들과의 연합으로 승화시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음행으로 하나 된 연합이 파괴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결혼은 이를 치유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설명합니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면서 더욱 음행으로 불타 있다면 차라리 결혼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음행으로부터 절제의 은사를 받았다면 자신과 같이 혼자 사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 사도는 이러한 절제의 은사를 받았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결혼의 유책자


2. 결혼한 자들에 대한 가르침(10-11)


첫째, 아내는 남편과 헤어져서는 안 됩니다(10).


본문 10절에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결혼한 사람들에게 권면한 이 말씀은 내 말이 아니라 주님의 명령이라고 전제합니다. 그 명령은 아내는 남편과 헤어지면 안 된다고 합니다.


절제의 은사를 받아 독신으로 사는 것이 좋으나, 이미 결혼한 사람들은 그 결혼을 깨뜨려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사도는 이혼을 금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명백한 가르침으로 충고합니다(막 10:2-12, 마 19:3, 눅 16:18, 마 5:31).


유대교에서는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주로 남자가 여자에게 이혼증서를 써주고 이혼할 수 있었습니다(신 24장). 사도는 헬라적 관습에서 아내가 남편을, 남편이 아내를 이혼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관습이 교회 안에 침투해 들어옵니다. 고린도 교회 상황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이혼을 금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이 부분을 언급하며 권면하며 가르치고 있습니다.


둘째, 남편은 아내를 버리면 안 됩니다(11).


본문 11절에 “(만일 갈라섰으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라고 합니다. 만일 헤어지더라도 혼자 그냥 지내든지 아니면 남편과 다시 화해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남편도 아내를 버리면 안 된다고 합니다.


10절에서는 “아내는 그의 남편으로부터 갈라서지 말 것”을 말씀하고 11절에서는 “남편은 그의 아내를 이혼하지(내버리지) 말 것”을 말씀합니다. 또한 13절에서는 “아내는 … 그의 남편을 이혼하지(내버리지) 말 것”, 14절에서는 “남편은 … 그의 아내를 이혼하지(내버리지) 말 것”이라고 합니다.


사도는 13~14절에서 남자와 여자가 동등하게 취급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면 10~11절은 유대교적 관습을 염두에 두면서 말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교회 내에서 이혼을 금하는 주님의 가르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혼은 피할 수 없이 발생합니다. 이런 경우를 바울은 괄호 안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결혼이 깨지는 일이 발생하면, 아내는 결혼하지 말고 그냥 지내든지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라고 충고합니다. 물론 이 충고는 역시 남편에게도 적용됩니다. 


불신자와 결혼시


3.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의 결혼(12-16)


신약에서 예수님은 유대인과의 관계 속에서 결혼에 대해 교훈을 하셨습니다. 문제는 초대교회의 헬라 세계의 선교지에서 주님을 섬기는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에 대한 결혼에 대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교훈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그리스도인이 비그리스도인과의 결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인용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사도는 자신의 판단에 따라 충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충고 역시 예수님의 결혼과 이혼에 대한 가르침에 근거하여 새로운 상황에 비추어 새롭게 해석하고 그것에 새롭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첫째, 그리스도인이 비그리스도인과 결혼할 때 가르침입니다(12-13).


본문 12~13절에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를 버리지 말며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라고 합니다.


본문 12절에 사도는 이것은 주님의 말씀이 아니라 내 말이라고 하면서 특수한 상황의 결혼을 언급합니다. 그것은 믿는 남자에게 믿지 않는 아내가 있을 경우입니다. 믿지 않는 그녀가 남편과 함께 살려고 하거든 그녀를 버려서는 안 됩니다. 13절에서는 또 믿는 여자에게 믿지 않는 남편이 있을 경우, 남편이 아내와 함께 살려고 하거든 그를 버려서도 안 됩니다.


사도는 고린도 후서 6:14-7:1절에서 대 원칙을 언급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비그리스도인과 결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언급한 대로 결혼하는 부부 중에 어느 한쪽이 믿지 아니하였을 경우인 혼합결혼의 지속은 비그리스도인인 배우자에게 달려있습니다. 비그리스도인 남편과 아내가 결혼을 유지하기를 원한다면, 그리스도인 남편이나 아내는 이혼하지 말고 같이 살아야 합니다.


물론 이러한 형태의 결혼 유지에 대한 가르침은 현행 우리 한국교회가 한국이라는 국가의 실정법에는 적용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가르침은 교회 내에서 이혼에 대한 적법성 여부를 판단할 때 판단의 근거가 됩니다. 유책 사유가 그리스도인이 아니 비그리스도인의 배우자에게 있는 자 여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집니다.


둘째, 비그리스도인 배우자로 인해 결혼이 부정되지 않습니다(14).


본문 14절에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믿지 않는 남편”이 아내를 통해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않는 아내”가 믿는 남편을 통해 거룩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자녀들도 깨끗지 못할 것이지만, 이제는 거룩하다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남편, 혹은 아내가 믿는 아내와 남편으로 인해 연합되어 살아가므로 간접적으로 그리스도의 주권 영역으로 가까이 와 있게 됨으로 거룩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도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거룩하게 되다고 했습니다. 거룩함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산다는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그 의무를 내포합니다. 따라서 비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과 결혼함으로 거룩해진다는 말은 아닙니다.


사도는 비그리스도인과 결혼하므로 그리스도인의 결혼이 더럽혀지고 거룩하지 못하다는 말에 대한 반론을 제시합니다. 비그리스도인 배우자가 그리스도인의 배우자에 의해 그리스도의 주권과 창조주 하나님을 의식하며,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주권하에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의미에서 믿지 않는 배우자가 믿는 배우자에 의해 거룩해진다는 말입니다. 또한 그런 부부의 자녀도 “거룩하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셋째, 이혼에 대한 상반대 견해와 해결책은 무엇입니까?(15-16)


본문 15절에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라고 합니다. 만일, 혹 믿지 않는 쪽에서 떠나고 싶어 하거든 떠나게 하라고 합니다. 남자든 여자든 믿는 사람은 그런 일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평화롭게 살라고 우리를 부르셨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화평 중에서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믿는 배우자가 믿지 않는 배우자와 결혼을 했다면, 화평하며 함께 살아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화평에 실패하면 믿지 않는 자가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불신자와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일단 그런 결혼을 했다면 화평을 위해 부르신 하나님은 다음 16절 말씀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16절에 “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믿는 아내가 믿지 않는 남편을 구원하고 믿는 남편이 믿지 않는 아내를 구원하게 될지 어떻게 알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의 가르침에 대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상호주의적 윤리, 즉 남편과 아내에 대해 철저히 동등한 권리와 의미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혼 금지에 대한 가르침을 대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배우자가 그대로 있기를 원한다면 믿는 배우자는 구속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동의하지 않는다면 믿는 자는 구속받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이는 결혼 계약이 구속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배우자 동의한다면 결혼 계약에 구속됩니다.


교훈과 적용


오늘날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결혼에 대한 성경적 의미가 퇴색되어가고 있습니다. 너무나 싶게 결혼하고 너무나 쉽게 이혼하는 그런 시대적 상황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결혼은 신성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그의 지체인 그리스도인과의 관계는 신비적 연합에 있습니다. 이러한 신비적 연합의 관계를 이 지상에서 결혼을 통한 부부관계를 통하여 보여줍니다.


결혼할 때는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배우자가 불신자, 즉 비그리스도인일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 믿는 배우자는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먼저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즉 믿는 자는 이혼의 귀책 사유를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도 결혼 유지의 유책 사유가 믿지 않는 배우자에게 있을 수가 있습니다. 이 배우자가 결혼 유지에 동의하지 않고 거부하고 떠났을 때 결혼 계약을 파기했다는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배우자와 화평하지 못한 원인으로부터 책임을 회피할 수 없습니다. 결국 믿는 배우자는 화평케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믿지 않는 배우자에게 전도하여 하나 된 부부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큰 우리들의 과제입니다. 하나님은 나로 하여금 믿지 않는 배우자에게 전도하여 구원받게 하려고 그와 결혼하게 했을는지 어떻게 알겠느냐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외에 없습니다. 기도했으면, 사도 바울이 권면한 부부관계에서 충실한 남편의 의무, 아내의 의무를 잘 감당해야 합니다. 집안에서 사랑의 만족을 느끼지 못하면 밖으로 나돌게 된다는 점고 늘 명심해야 합니다.

 

소재열 목사(새사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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