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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가 오히려 설교의 권위를 추락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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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논단

목회자가 오히려 설교의 권위를 추락 시킨다

설교는 성경이해(성경해석)의 결과적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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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는 설교자의 성경관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성경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고 있느냐에 따라 설교의 내용이 달라진다. 설교는 반드시 본문의 의미를 바르게 파악해야 하고 그 파악된 본문의 내용과 의미에 따라 적용해야 한다. 적용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주석적으로 제대로 이해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 일은 쉬지 않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그러나 설교하고자 하는 본문을 주석하여 바르게 해석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심지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 않고 쉽게 얻으려고 하는 것이 문제이다. 아예 이런 문제에 관심도 없어 보인다. 이런 경우 유혹은 다른 사람이 준비해 놓은 설교를 베끼는 것이다. 그래서 설교표절이 나온다.
 
쉽게 설교하는 일에 익숙해 져 있는 오늘의 설교자들에게 석의의 과정은 몹시 수고스럽고 진액을 짜는 일에 습관화 되어 있지 않다보니 생략된 채로 설교를 준비하고 임하는 현실이 되었다. 이러다보니 한 편의 설교를 위해 일정 시간을 투자하거나 진액을 짜는 수고는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생각할 뿐이다. 이런 과정을 미련하고 지혜롭지 못한 행동으로 치부하기도 하다.
 
한국의 개혁신학을 부르짖는 교회는 성경의 계시적 권위와 무오성을 수용하는 교리적인 건전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유감스럽게도 하나님의 무오한 계시로서의 성경에 대한 믿음을 교리적으로 전폭적으로 수용하면서도 실제로는 설교와 교육에서 그 믿음을 저버리는 모순적인 경향이 농후하다.
 
그래서 자신은 개혁주의자요, 개혁신학에 근거한 정통보수신학을 부르짖고 있으면서도 오순절주의자들이 부르짖는 성령론이나 복음주의자들이 주장한 내용을 벗어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제 설교는 교단의 벽을 허물어 버렸다. 설교를 통해 모든 교파를 넘나드는 교리적인 연합정신은 역사적으로 많은 시행착오와 변증을 통해서 확증된 성경해석과 신학적 지평과 그 적용을 통해 교회를 지키려는 선배들의 수고를 허무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제 설교는 목사보다 장로와 집사들이 더 잘할 수 있다는 이야기들이 아무런 부담 없이 언급되면서 특별하게 성경을 연구하고 고민하지 않더라도 소위 설교에 부담 없이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히려 설교의 권위를 무너지게 할 뿐이다.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월터 카이저(Walter Kaiser)의 지적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교의 교회가 많은 부분에서 건강하지 못하다는 이 전 세계적인 현상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교회는 방부제와 인공색소 그리고 화학조미료로 범벅이 된 불량식품을 지속적으로 먹은 까닭에 지극히 쇠약해지고 말았다. 교회는 신학적이고 성경적인 영양결핍으로 인해서 너무 오랫동안 고통을 받은 결과 마침내 자신들의 무기력과 허약함이 해롭고 치명적인 음식을 섭취한 결과라는 사실 조차도 거부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암 8:11)이 세계의 모든 교회에서 더욱 거세지고 있고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본 교단(예장합동) 총회를 대표하는 인사들의 공적 자리에서 행해진 설교를 듣다보면 지금 설교가 선포되고 있는 자리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격려사나 축사가 설교와 아무런 차이점이 없다. 반대로 설교가 격려사나 축사와 전혀 다를 바 없다. 설교의 독특한 생명력과 위엄이 사라지고 있다.
 
요즘 교회뿐만 아니라 공적인 자리에서 설교를 할 때 설교자는 설교하고자 하는 본문을 여러 개혁신학의 계열 신학자들의 주석서 정도는 한번 정독하고 설교에 임하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설교자들이 오히려 설교의 권위를 무너지게 하는 장본인이라는 사실에 우리 모두는 고민해야 할 것이다.
 

소재열 목사(새사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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