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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강론 21] 부부의 이상적인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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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칼럼

[고전 강론 21] 부부의 이상적인 관계

남편과 아내는 서로를 존중하고 권리와 의무를 다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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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고전 7:1-7


[1]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2]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3]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4]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5]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6]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허락이요 명령은 아니니라

[7]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지난 시간에 고린도전서 6:12-20절 말씀을 통하여 “너희 몸을 하나님께 영광을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우리 몸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입니다. 우리 몸은 우리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므로 우리 몸을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위하여 사용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5:1절 이후 6장에 이르기까지 성 문제, 즉 음행에 대해서 다루어 왔습니다. 이제 7장에서 결혼에 관한 제반 문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결혼 문제를 음행에 대한 치유책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습니다(1).


본문 1절에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남자가 여자를 만지지 않는 것이 좋다”라는 말씀으로 답변합니다. 사도는 이미 고린도 교회 교인들로부터 몇 가지 질문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세워지면서 아직 하나님의 말씀을 교회에 적용하는 여러 문제로 혼란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이런 교회를 ‘인적 단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에 사람들로 인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이런 문제들을 사도 바울에게 자문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에 사도는 그들에게 답변하는 편지를 보낸 것이 바로 고린도전서가 되었습니다.


사도는 이미 5장과 6장에서 “내게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라는 구호를 하는 열광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런 구호를 내세워 창녀들과 성관계를 하는 등 극도의 음란한 행동을 하였습니다. 이를 지적하며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음행으로부터 피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제 사도는 7장으로 넘어와서 이제 반대로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하지 아니한 것이 좋다.”, 즉 “남자가 여자를 만지지 않는 것이 좋다”라는 구호를 하고 성관계를 원칙적으로 부정하는 금욕주의자들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금욕주의자들은 결혼한 부부는 이혼하든지, 아니면 같이 살면서도 부부관계를 하지 말든지 둘 중의 하나를 택하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여기서 사도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사도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이러한 문제는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결혼 문제, 특히 결혼해야 하는 문제와 결혼한 후 어떻게 부부생활을 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에 대한 답변 형식이 지금 사도가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 속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도가 이미 5장과 6장에서 언급한 헬라적 이원론적인 열광적 방종주의자들은 이미 자신들은 구원을 받았으므로 몸으로는 무슨 일을 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음행을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행했습니다. 반대로 헬라적 이원론적인 금욕주의자들은 악한 육신과의 관계를 끊고 순결한 영의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자는 음행으로 몸을 더럽힌 자들이었다면, 후자는 순결한 결혼을 부정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사도는 6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음행의 방종으로 왜곡한 자들에 대한 경계를 언급합니다. 이어서 7장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부부관계를 율법주의에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성적 금욕주의에 반한 그리스도인의 참 자유의 원칙을 설명합니다.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은 결국 창세기 2:18절의 말씀에 배치됩니다. “남자가 홀로 있는 것이 좋지 않다”라는 말씀과 상반됩니다. 그러나 사도는 일단 그들의 구호는 남자는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전제합니다. 그러나 사도는 이러한 구호를 수용하면서 그것을 수정하는 새로운 의미의 해석을 합니다.


2.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들을 두어야 합니다(2) .


본문 2절에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라고 합니다. 1절과 2절은 접속사 ‘그러나’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말씀은 ‘그러나’ 음행의 사건들이 발생하므로(또는 음행의 죄들을 피하기 위해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들을 두라고 합니다. 사도는 본문에서 음란의 죄를 범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치유책을 이야기합니다. 칼빈은 이 부분에서 언급하기를 “결혼을 제정한 이유가 아니라, 결혼이 필요한 사람들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계속하여 인간이 타락한 이후 결혼은 다른 목적이 첨가되었다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결혼이 음행을 피하는 유일한 목적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결혼이 음행의 죄를 피하기 위한 한 목적을 충족시키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런 말씀은 남자에게, 혹은 여자에게만 주어진 말씀은 아닙니다. 남자나 여자 모두에게 이런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고대사회에서 찾아볼 수 없는 남녀 상호주의적 혁신적인 윤리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결혼하지 않고도 지낼 수 있는 은사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결혼하거나 혹은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결혼함으로써 자신의 음행에 대해 연약함을 돌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결혼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결혼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자들도 있습니다. 문제는 결혼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는 결혼에 대한 근본 이유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음행과 관련된 결혼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음행을 피하기 위한 한 목적으로 결혼은 남녀의 상호적인 필요성에 근거합니다. 


3.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3-4).


본문 3절에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라고 합니다. 계속해서 4절에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라고 합니다.


사도는 본문에서 이제 결혼생활을 위한 중요한 원칙을 제시합니다. 또한 남편과 아내의 의무의 본질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을 사랑하는 서로의 상호주의적인 원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문자적으로 보면 “남편은 자기 아내에게 빚을 갚고, 아내도 자기 남편에게 마찬가지로 하라”라는 말씀입니다. 여기 ‘빚을 갚다’라는 말은 일차적으로 부부관계에서 상대방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의무를 다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좀 더 포괄적으로 남편과 아내가 서로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섬기는 사랑’의 관계를 맺어야 함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남편과 아내의 “상호 교통”의 관계에서 서로의 의무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는 각각의 위치가 있습니다. 책임도 각각 다르지만, 결혼의 신실성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부부가 다같이 동일한 지위를 갖고 있습니다. 즉 남편과 아내는 완전히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갖고 있습니다. 결혼 관계에서 남편과 아내는 서로에게 자기주장을 해서는 안 됩니다. 스스로가 상대방의 권위 아래 있는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4. 서로의 권리를 빼앗지 말아야 합니다(5-7).


첫째, 금욕은 상호 동의하에서만 가능합니다(5-6).


본문 5절에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합니다. 


사도는 이 부분에서 결혼생활에서 일정 동안 금욕이 허용될 수 있다고 언급합니다. 그것은 남편과 아내가 서로 동의할 때만 가능합니다. 일정 기간 영적 목적을 위해 허용되는 것입니다. 기도에 전념하기 위해 잠시 부부관계를 보류할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부부관계가 영적인 기도 생활에 방해된다는 뜻을 담고 있는 말씀은 아닙니다.


사도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합니다. 육신의 연약함을 사단의 유혹에 노출된 인간은 얼마든지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기도를 위해 일정한 기간 분방할지라도 다시 합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사단의 유혹 때문입니다. 음란의 유혹을 피하는 방법의 하나는 부부생활에 충실히 하는 것입니다. 부부관계의 단절은 사단으로부터 많은 유혹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도는 본문 6절에서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허락이요 명령은 아니니라”라고 합니다. 금욕주의자들에게 한가지 양보하겠는데 그것은 남편과 아내가 합의하면, 일정 기간 금욕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양보이지 명령은 아니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꼭 그런 금욕생활을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둘째, 독신과 결론은 각각 받은 은사대로 하면 됩니다(7).


본문 7절에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라고 합니다. 여기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라는 말은 자기와 같이 절제의 은사를 의미합니다. 모든 사람이 이런 은사를 받아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실제로 사람마다 하나님으로부터 각기 다른 은사를 받았음을 알고 있습니다. 사도와 같이 성적 절제의 은사를 받은 이들에게는 결혼하지 않고 전심으로 주를 섬기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사도와 같은 은사가 아닌 다른 은사를 받은 이들은 결혼을 통하여 하나님께 순종하면 됩니다.


교훈과 적용


결혼의 목적이 단지 인간의 음행을 방지하기 수단으로서 유일한 목적은 될 수 없습니다. 독신생활의 좋은 면만 보고 결혼하지 않다가 음행의 죄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때는 결혼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이 결혼은 신성한 것입니다(엡 5:22-23).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결혼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자신의 의무를 행해야 합니다. 적어도 부부관계에서는 남편은 아내가 아내는 남편이 주장하도록 해야 합니다. 상대를 무시하면 안 됩니다. 


부부관계에서 분방은 안 됩니다. 그러나 일정 기간 기도 생활을 위해 분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합해야 합니다. 이 길이 사단의 유혹으로부터 승리하는 길입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때 죄가 틈을 이용하여 침투해 들어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된 부분관계가 파괴될 수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를 존중하고 권리와 의무를 다하며, 자기 욕심적인 주장하는 자세는 상대방에게 상처만 줍니다. 이러한 상처는 부부의 하나 됨을 파괴합니다. 이는 사단의 유혹일 수 있습니다. 사단은 부부의 하나 됨을 파괴하므로 시작합니다. 사단에게 틈을 주면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서로 헌신해야 합니다. 서로를 신뢰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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