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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강론 20] 너희 몸을 하나님께 영광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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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칼럼

[고전 강론 20] 너희 몸을 하나님께 영광을 위하여

모든 것이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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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고전 6:12-20


[12]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13]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 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14]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15]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6]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17]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지난 시간에 고린도전서 6:1-11절 말씀을 통하여 교회 문제를 세상 법정에 소송하는 문제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구체적으로 “세상법정으로가는 교회들”이라는 제목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 문제를 세상 법정으로 가져가는 것에 대한 신앙적 관점에서 언급했습니다. 한 국가의 국민으로서 국가에 자신의 문제를 청구하는 국민으로서 기본권 행사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교회 내 신앙의 문제를 국가 법정으로 가져가는 것에 대한 신앙적 답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 법정으로 가져간 것도 문제이지만 교회 내 각종 분쟁과 갈등이 있어서 문제이기도 합니다마는 문제는 그러한 분쟁과 갈등을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오늘날 우리 역시 교회 내에서 다양한 갈등 관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갈등을 지혜롭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풀어가고 해결하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없다는 것이 불행입니다.


오늘은 본문 고린도전서 6:12-20절 말씀을 통하여 “너희 몸을 하나님께 영광을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우리 몸을 통해 육체의 기회로, 불의 병기로 사용하면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여야 합니다. 무엇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내게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다(12).


많은 학자는 본문과 이전 본문(앞의 구절)과의 연속성에 대한 문제로 많은 토론이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고린도라는 도시 속에서 살아갑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고린도 지역에 만연한 생활 방식, 생활 습관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는 본인도 모르게 고린도 지역 사람들이 가진 불경건한 생활에 물들어 있습니다. 문제는 신앙을 가진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합리화하고 변명합니다. 무절제한 사치에 빠져 생활하면서 그것이 죄가 아니라고 스스로 위안을 받습니다. 자기 최면을 걸어 합리화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음의 자유를 남용하여 간음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사도는 이에 대해 권면하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첫째, 모든 것이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닙니다(12, 상)


본문 12절에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라고 합니다. 여기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라는 말씀은 이런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나에게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하여 모든 것이 다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다음은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라는 말씀은 나에게 모든 일이 가하나 그것에 속박되지 않습니다. 이 두 가지의 원리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 12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모든 것이 내게 허락된다.” : 그러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내게 허락된다.” : 그러나 나는 어떤 것에 의해서도 지배당하지 않겠다.


그리스도인은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신약 성경이 우리에게 주신 일관된 말씀입니다. 구약의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구원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가 되었습니다. 그 어떤 것도 나의 자유함을 억압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참 자유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자유는 방종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유는 아무렇게나 행동해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자유의 의미를 내 멋대로 해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애굽에서 해방을 받게 해 주신 이유는 그들로 하나님을 잘 섬기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들 마음대로 행동하고 살아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면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할지라도 모든 것이 다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가 있다고 할지라도 해서는 안 되는 일, 즉 유익이 되지 않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때로는 그런 것들이 해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몸을 해치고 사람들로 범죄케 할 수 있다. 여기에 고기와 포도주의 사용에 관한 문제도 포함됩니다.


고전 8:13절에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라고 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참 자유는 남에게, 특히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을 위해 유익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오로지 사랑에 근거한 행위만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유익하고 교회를 세우는 일이 될 것입니다.


둘째, 모든 것이 내게 허락되어도 그것에 의해 지배당하지 않습니다(12, 하).


모든 것 자체로는 악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지으셨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것이 나에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라는 말씀입니다. 나는 그런 것들에게 속박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런 것들에게 제재를 받고 억압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참 자유를 파괴하는 그 어떤 것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행복과 환희에 찬 기쁨입니다. 그러나 일에 노예가 되거나 많은 일이 나를 억압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마지못해 억지로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진정한 자유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유가 방종을 가져와서 자신의 욕망이나 나쁜 버릇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고린도 교회 당시 상황과 비슷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구원받은 백성의 모든 삶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적인 환경 속에서 사람들의 의식과 관념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의식을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전통은 계승해야 하지만 잘못된 전통이나 관례에 얽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2. 오직 주를 위하여(13-14)

 

사도는 본문에서 이제 그리스도인은 물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말씀합니다. 물질은 장차 없어질 것입니다. 영원하지 않습니다. 물질은 현실 생활 속에서나 필요한 것입니다. 현실 생활 속에서 어떻게 물질을 사용하며 살아야 할 것인지를 말씀합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주를 위하여 있습니다(13).


본문 13절에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라고 합니다.


고린도인들은 헬라적 이원론적으로 생각합니다. 영은 선하고 육체는 악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육체 역시 악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 육체는 썩어서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살아 있을 때 마음껏 쾌락을 누리고 살아야 한다는 주의입니다. 인간의 몸은 영과 달리 영원한 가치가 없는 물질적인 것으로 보았습니다. 죽으면 육신은 없어져 벌릴 것이기 때문에 살아있을 때 먹고 마시고 향락을 추구하는 고린도인들의 이원론적인 사상이 교회에 침투해 들어왔습니다.


음란한 행위도 바로 이런 사상에서 온 행동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몸은 음란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주를 위하여 있고, 주는 몸을 위하여 있습니다. 육신에 그 어떤 음식으로 채워도 괜찮다고 보았습니다. 사도는 이런 문제에 대해 언급합니다.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주님께 바쳐지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음행을 하고 이를 합리화하는 그런 사람들이 고린도 교회 안에 팽배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으며,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했습니다. 오직 주님을 섬기며 살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육체적인 몸을 다시 일으키실 것입니다. 그리고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몸의 육체를 방탕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육체는 영적인 몸으로 부활하여 영생을 누릴 것입니다. 우리 몸은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는 말씀은 우리가 육체의 쾌락을 누리며, 그리스도와 하나 된 것이 아니라 불법과 음란과 하나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몸이 음란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둘째, 부활 생명으로 지속될 몸의 영원한 의미가 있습니다(14).


본문 14절에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부활할 것입니다. 이 부활은 육체 부활을 의미합니다. 물론 우리의 육체대로가 아닌 신령한 변화된 육체로의 부활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육체를 종의 노예가 아닌 하나님을 섬기는 데 사용되어야 합니다. 불의의 병기가 아닌 의에 병기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드려진 자들입니다. 장차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될 자들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이 음행으로 자신을 더럽히면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부활에 참여한 자들이 우리의 몸을 세상의 더러움에 내어줄 수는 없습니다. 


3.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15-20)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한 몸으로 연합된 자들입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 몸은 거룩함을 유지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15-16).


본문 15절에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의 지체들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창기와 연합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구약성경에서 바울 종교는 풍요의 신을 숭배했습니다. 그들의 사당에는 남녀가 성적으로 교감하여 하나 될 때 신이 풍요를 가져준다고 하면서 창녀들을 고용해서 제사를 지내로 오는 남자들과 성관계를 맺게 했습니다. 창기와의 관계는 그 둘이 하나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 된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 16절에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라고 합니다.


둘째,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자는 그와 한 영입니다(17).


본문 17절에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라고 말합니다. 여기 “한 영”이라는 말은 성령으로 하나 됨을 말씀한 내용입니다. 성령의 주와 합하여 연합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리스도인들이 창기와 연합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창기와 한 몸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사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연합이 남편과 아내의 결합보다 더 밀접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만일 결혼하여 아내와 결합한 남자가 창기와 음행을 하면 안 되듯이 육신적으로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 하나 됨을 파괴하는 음행은 무서운 죄입니다. 


셋째, 자기 몸에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18).


본문 18절에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라고 합니다. 먼저 “음행을 피하라”라고 했습니다. 음행죄는 피해야 범하지 않습니다. 다른 죄는 싸워 이기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음행 죄는 피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입니다. 아예 그런 상황의 환경을 피해야 합니다.


다른 죄는 “몸 밖에 있다”라고 합니다. 외형적으로 피해가 생겨 손해를 가져다주는 죄입니다. 그러나 음행은 “자기 몸에 죄를 범한다”라고 했습니다. 음행은 몸으로 몸에 대하여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몸에 대한 음행의 영향에 관한 말씀입니다. 사도는 음행을 다른 모든 죄와 비교하면서 음행의 무서움을 언급합니다. 


넷째, 너희 몸은 성령의 전입니다(19).


본문 19절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합니다. 이제 우리 안에 성령이 내주하십니다.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해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고 그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음행의 죄에서 떠나기 위하여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사실과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이므로 하나님이 지배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성령의 전”은 거룩함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거룩히 하여 하나님이 함께 하시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하십니다. 사도는 우리의 몸인 육체도 성령의 전이라고 하여 이원론 주의자들의 주장을 배척합니다. 즉 육체는 악하고 영은 선하다는 개념은 결국 육체를 악의 병기, 쾌락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배격합니다. 


다섯째,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20).


본문 20절에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라고 합니다. 사도는 이제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본문에 값으로 ‘사다’는 아고라조(ἀγοράζω)는 우리들의 ‘구속됨’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되었습니다. 내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것을 제3자에 의해 값을 지불하여 나를 사줄 때에 내가 자유함을 얻는다는 개념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를 구속하신 은혜를 언급한 말씀입니다.


이렇게 구속함을 받은 우리는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영혼과 육체를 주관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육체 역시 음행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여야 합니다.


교훈과 적용


성경에서 ‘거룩’이나 ‘영광’ 등의 단어는 하나님께 붙여진 속성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운 분이십니다. 우리 인간은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운 하나님께 접근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거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접근할 수 없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영광스러운 하나님께 접근할 수 없습니다. 이유는 우리는 영광스러럽지 못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인이 거룩한 의인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받은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를 “값으로 산 자”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은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영광을 돌리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신 죄를 범하며 살아갈 수 없습니다.


사도는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라고 합니다(롬 6:17-18)


온갖 죄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의 종이 되어 하나님께 속한 자,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 되었으니 순종하면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는 자는 곧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임이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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