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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강론 15] 바울의 권면과 방문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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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강론 15] 바울의 권면과 방문 계획


바울.jpg
바울, 성경을 들고 있다.

 



본문 / 고전 4:14-21


[14]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17]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 그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18] 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19]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21]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지난 시간에 본문 고전 4:6-13절 말씀을 통하여 “자만하는 교인들과 고난받은 일꾼들”이라는 제목으로 살펴보았습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일꾼들이 누구에게서 고난과 시험을 받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불신자들이 아닙니다. 바로 같은 믿음의 사람들에게서 받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상처를 받은 듯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비롯한 동료 사역자들의 비참한 고난받은 삶을 이야기 하면서 허황된 교만으로부터 돌아서라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 사명이기 때문에 묵묵히 고난의 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가르침을 받은 신자들은 늘 교만과 허황된 자만심에 빠져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고난 받은 삶을 통해 신자들에게 심지어 자신의 생활비를 자신이 벌면서 사역을 감당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일꾼들을 무시합니다. 그들은 일꾼들을 비교하며 그 일꾼을 자신의 잘났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데 이용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이번에는 본문 고전 4:14-21절 말씀을 통하여 “바울의 권면과 방문 계획”이라는 제목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까지 제1부인 1장에서부터 4장까지 고린도 교인들의 그릇된 ‘지혜 자랑’(세상의 지혜)에 대항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진정한 지혜를 말했습니다. 이제 제2부에 해당된 5장에서 6장 20절까지에서는 그릇된 그리스도인의 그릇된 자유(잘못된 자유)에 의한 도덕적 타락을 지적합니다. 이런 지적을 통해 하나님의 성전의 거룩성을 말씀합니다. 구체적으로 제1부에 해당한 마지막 부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권면의 정신,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14-16)


첫째, 사랑하는 자녀같이 권면합니다(14).


본문 14절에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미 지난 시간에 고린도 교회 교인들의 교만을 지적했습니다. 


이런 지적은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부끄럽게 하려고 했던 권면은 아니었습니다. 오직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이 본문 14절의 내용입니다. 사도는 이것을 쓰는 것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직 그들을 사랑하는 자녀처럼 훈계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고린도 교회에 보낸 이유는 그들이 교만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믿어 하나님 앞에서 바른 신앙을 갖고 생활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권면은 아버지가 사랑하는 자녀에게 권면하는 것 같이 권면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고린도 교회 성도를 자신의 사랑하는 자녀와 같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자신을 그들의 아버지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고린도 지역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복음을 듣고 믿는 자들이 바울과 같이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것이 고린도 교회였습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사도와 함께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도가 전한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5:17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는 말씀과 같았습니다.


고린도에 온 다른 사역자들은 선생이었지만 적어도 사도는 아버지와 같았고 그들은 자녀와 같았습니다. 영적인 아버지인 바울 앞에서 그들은 자녀였습니다. 영적인 아버지인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가 그의 자녀와 같았습니다. 자녀가 곁길로 갈 때 그냥 방치한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자녀이기 때문에 자녀에게 바른길로 가도록 권면합니다. 적극적으로 회초리를 듭니다. 이는 다 사랑하는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아버지와 같이 권면합니다(15).


본문 15절에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라고 합니다. 사도는 자신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믿음과 영적 아버지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렇게 강조한 이유는 사도가 그들을 권면한 그 권면이 보통 의례적 권면이 아니라 얼마나 간절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전하는 권면이냐를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를 위해 자신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다”라고 합니다. 


스승, 즉 선생은 얼마든지 모실 수 있지만, 아버지로 모시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사도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을 전하자 그들이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원을 받은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바울 사도가 영적인 아버지였습니다.


셋째,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합니다(16)


본문 16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라고 합니다. 여기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는 14~15절에 대한 결론적인 말씀입니다. 사도는 14~15절 말씀에서 아버지와 자녀와의 관계의 그림 언어를 통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영적 아버지가 되고 그들은 자녀가 되는 관계를 설명했습니다. 

이런 관계 속에서 아버지가 자녀에게 권면하는 것과 같이 권면했습니다. 이런 권면을 하고 나서 사도 바울은 본문 16절에서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에서 결론적인 권면은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라고 말씀합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마땅히 그들의 영적 아버지인 바울의 모범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모범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삶의 모습일 것입니다. 주 안에서 정리한 삶의 원리입니다. 그 모습은 오직 복음을 선포하는 사역을 위해 그가 당한 환난을 참고 견디며 사는 삶입니다.


자녀가 부모에게서 본받아야 것이 있다면 부모님의 진지한 삶의 여정일 것입니다. 많은 고난과 환난 속에서 참고 견디며 자녀들을 위해 헌신한 사랑의 모습은 자녀들이 분명히 본받아야 할 덕목입니다. 바울에게서 바로 이런 점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바울이 자신을 본받으라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본받으라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이 수난의 길을 가는 모범자이기 때문입니다(고전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고린도 교회가 바울을 본받았다면 그런 분쟁을 일으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2. 사역의 연속성, 믿음의 아들 디모데 파송(17) 


본문 17절에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 그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라고 합니다.


본문 “이로 말미암아”는 “이를 인하여”라는 말입니다. 이를 인하여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을 본받는 데 돕게 하려고 바울은 디모데를 고린도에 보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이 사랑하고 신임하는 믿음의 아들과 같은 자입니다. 함께 사명을 감당한 조력자입니다. 디모데는 조력자로서 바울이 고린도 교회 개척에 동역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바울에 의해 그리스도인이 된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이었습니다. 본문은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신실한 아들”이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신실한 아들”인 디모데와 신실하지 못한 자녀인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이는 고린도 교회 교인들 역시 주안 안에서 신실한 자녀들이 되어야 한다는 권면이 숨어 있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보내어 그로 하여금 바울의 ‘행사’, 혹은 ‘길들’과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하고 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파송을 받아 바울의 행사, 즉 행동양식, 또는 삶의 방식을 모든 교회에서 가르칠 것입니다.


본문에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게 된 복음의 규범은 지역을 초월합니다. 어느 지역 어느 국가에서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동일한 규범적 원리가 적용됩니다. 우리 모든 신자의 모범으로 유효하게 적용됩니다.


3. 디모데만이 아닌 자신의 직접 방문 계획(18-21절) 


첫째, 고린도 교회 어떤 이들에게 경고하고 있습니까?(18절).


본문 18절에 “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라고 합니다. 사도는 고린도 교회의 소속을 이미 듣고 상황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일부 교인들은 계속하여 교만해져 있습니다. 바울의 권면은 무시합니다. 순종하지 않습니다. 마치 사도 바울과 이제는 대면할 일이 없으므로 바울을 무서워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교만하여졌다“라고 말합니다.


둘째, 그러나 주께서 허락하시면 속히 방문할 계획을 전합니다(19절).


본문 19절에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라고 합니다. 본문 18절과 19절 사이에 ‘그러나’라는 접속사로 연결됩니다. 


앞 절인 18절 말씀에서 일부 교인의 생각을 교정하기 위한 차원에서 ‘그러나’라고 합니다. 사도가 고린도 교회에 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나, 그러나 주께서 허락하시면 바울이 방문하여 그들의 교만한 행동에 대해 알아보겠다고 합니다. 본문에서 사도는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여 그곳 교인들의 문제들을 바로 잡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가르침을 받은 복음의 길, 그리스도인의 생활 규범에서 벗어난 상태에서 다른 곁길로 가고 있는 그들을 교정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서 바른 신앙생활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본문입니다. 이런 그리스도인의 본분에 대해 사도 바울은 자신을 본받으라고 합니다. 사도가 고린도 교회에 오지 않으리라는 생각에서 허황된 자만 속에 빠져 있는 그들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자신의 방문 계획을 전하면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여기서 “주께서 허락하시면”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자신의 모든 계획이 주님의 주권적인 뜻에 달려있음을 보여줍니다. 사도는 자신의 모든 사역이 주님의 섭리와 계획 아래 있음을 보여줍니다. 모든 복음의 사역자는 자신의 사역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어느 지역을 방문하여 누구를 만날 것인지까지 주님의 주권에 달려있습니다. 모든 사역자는 주님의 손에 쓰임 받을 뿐입니다. 우리가 복음의 전도자로 쓰임을 받은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이미 고전 4:8절(“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에서 자랑하며 날뛰는 자들을 주목하여 살펴볼 것입니다. 그들의 교만하고 허황된 주장(‘말’)이 아니라, 그들이 과연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서 충실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살필 것입니다. 


셋째, 말 많은 교인이 아닌 능력으로 사는 교인이 되어야 합니다(20절).


본문 20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라고 합니다. 사도는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있다고 합니다. 이 말씀에 근거하여 말만 앞서는 자가 누구이며, 능력있는 삶을 사는 자가 누구인지를 확인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신앙의 판단기준은 말이나 주장들에 있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능력 있는 삶입니다. 이 기준이 흔들리면 안 됩니다. 기준이 모호하면 삶의 패턴도 모호한 삶이 됩니다. 우리는 항상 삶의 기준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사도는 고난 속에서도 믿음과 소망과 기쁨을 가지고 능력을 갖추고 살고 있는지를 확인할 것이라는 분명한 의지를 보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에는 허황된 말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사도는 나쁜 자녀를 훈계하듯 권면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복음과 믿음으로 그 어떠한 고난과 환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자녀 된 본분을 지키며 살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넷째, 징계와 사랑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고 합니다(21절).


본문 21절에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라고 합니다. 이제 사도는 모든 권면과 그 권면의 이유를 설명하면서 마지막으로 바울이 제시한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합니다.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라는 말은 너희가 두 가지 중 어느 것을 더 원하느냐는 질문입니다. 그 두 가지는 매와 사랑입니다. 즉 회초리를 원하는가, 아니면 사랑을 원하는가입니다. 회개하지 아니할 경우, 사도 바울의 회초리를 맞이할 것입니다. 그러나 순종할 때는 사랑이 그들에게 전해질 것입니다. 그들이 사도 바울의 방문을 받을 때 책망을 받으며 만날 것인지, 아니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만날 것인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4. 교훈과 적용


사도 바울은 자신이 개척한 교회를 떠나왔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개척한 고린도 교회 교인들의 분쟁과 혼란은 바울로 하여금 염려하고 걱정하게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얼마나 사랑했으며, 자신과 고린도 교회 교인의 관계를 마치 아버지와 자녀와 같은 관계로 설정합니다. 그런 사랑의 관계에서 아버지가 자녀에게 타이르듯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 권면은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바울에게서 듣고 배웠던, 그리고 바울이 파송한 디모데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그 복음으로 인해 그 어떠한 환난과 고난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말로만이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길게 늘어놓은 자기주장으로는 더더욱 안 됩니다. 오직 능력의 삶을 통해서 보여주어야 합니다. 인간은 환경에 매우 민감합니다. 그 환경은 언제나 환난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나 신자들은 이러한 환경 속에서 찾아온 환난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 환난으로 인해 좌절하지 않습니다. 즉 불리한 환경에 좌절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능력입니다. 


우리 자신 안에 이런 능력의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이는 순종의 모습이요, 감사의 모습입니다. 이런 삶을 본받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이런 사람을 만나기 위해 그런 사람을 찾을 것이 아니라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우리 주변을 환하게 밝혀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삶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는가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소재열 목사(새사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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