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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강론 14] 자만하는 교인들과 고난받은 일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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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칼럼

[고전 강론 14] 자만하는 교인들과 고난받은 일꾼들

치졸한 교만 경쟁을 하지 말라


70인경.png

 

본문 / 고전 4:6-13

 

[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7]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8] 너희가 이미 배 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


[9]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10]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11]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13]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지난 시간에 고린도전서 4:1-5절 말씀을 통하여 “변명하고 싶은 바울의 심경(인간의 심판과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제목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사도는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에 대한 사역에서 조금도 불충실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양심에 조금도 가책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충성스러운 일꾼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자신이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책잡힐 그런 행동을 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 의롭다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판단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이며, 그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일꾼은 항상 많은 사람에게 노출되어 있습니다. 일꾼을 판단하고 심판하는 일들 앞에 낙심이 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그랬던 것 같이 하나님의 판단과 심판에 맡기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사람 앞에서의 사역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의 사역이 필요합니다.


오늘은 본문 고린도전서 4:6-13절 말씀을 통하여 “자만하는 교인들과 고난받은 일꾼들”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일꾼들을 한 줄로 줄을 세워 값을 매기며, 그로 인한 치졸한 교만 경쟁을 통해 일꾼들을 낙심하게 합니다. 이때 사도는 오히려 고난받는 일꾼들의 현주소를 설명하면서 고린도 교회 교인들의 교만을 버리고 복음 안에 거할 것을 말씀합니다.


1. 치졸한 교만 경쟁을 하지 말라(6)


본문 6절에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라고 합니다.


본문 6절에서 사도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부터 이해해 보겠습니다. 사도가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위하여 자신과 아볼로를 예로 들어 말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미 3:5절 이하에서 자신과 아볼로에 대해서 심은자, 건축자, 청지기 등의 그림 언어를 통해 이야기했습니다. 이 이야기의 결국은 “성장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복음 선포자의 책임 등을 강조했습니다.


사도는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권면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첫째,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바울과 아볼로에게 “기록된 것들을 넘어가지 말 것”을 배우도록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교인들이 서로 한 사도를 다른 사도 보다 치켜세우므로 교만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본문에서 강조한 것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교만 경쟁을 차단하고 있습니다. 이교만 경쟁은 이렇습니다. 서로 자신들이 지지한 사역자가 상대편에서 지지한 사역자보다 더 위대하므로 위대한 사역자를 지지한 자신들이 대단하는 자랑과 교만입니다. 이런 식으로 서로 치졸한 교만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사도는 여기서 ‘교만’이라는 단어를 “바람이 잔뜩 들어가 부풀어 있다”라는 의미의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8:1절에 언급된 그런 교만입니다. 


이미 사도는 고린도전서 3:5절 이하에서 바울과 아볼로의 관계를 설명했습니다. 사역자들을 비교하여 우월한 사역자를 지지한 자신들을 자랑하고 치졸한 교만 경쟁에 빠지지 않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오늘날도 많이 일어난 현상입니다. 복음의 선포자는 모두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아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누가 더 낫다는 말은 있을 수 없습니다. 어떤 사역자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역자는 멸시하고 무시합니다. 복음 선포자를 줄 세워 값을 매깁니다. 


그래서 어떤 사역자는 유명하다고 자랑합니다. 칭찬이 대단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역자는 별 볼 일 없다고 합니다. 무시합니다. 그래서 유명한 사역자를 지지한 자신도 유명하다는 자랑은  치졸한 교만이며 이런 교만 경쟁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결코 없어야 합니다. 사도가 이미 3:5절 이하에서 말씀한 것처럼 바울 자신이나 아볼로는 모두 다 하나님 앞에 사명을 감당한 사역자일 뿐입니다. 


2. 은혜를 무시한 자들의 교만과 자랑 경쟁(7-8)


첫째, 교만과 자랑은 은혜를 무시한 행동입니다(7).


본문 7절에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라고 합니다.


사도는 본문 말씀을 통하여 교만의 문제를 일반화시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질문 형식을 통하여 되묻는 질문 방식으로 그들의 교만을 지적합니다. 그 질문 형식은 “누가 너를 남달리(유별나게) 구별하였느냐?” 이 질문은 “누가 너를 남보다 더 돋보이게 했느냐?”라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런 남다름과 돋보이게 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일 뿐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것을 마치 받지 않는 것처럼 자랑한 것은 교만이라고 말씀합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 역시 이웃과 마찬가지로 기껏해야 용서받은 죄인일 따름입니다. 특히 남다른 은사를 가졌을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받은 것으로 생각하여 감사하고 겸손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께 받았다면 그것은 자기 자랑이 될 수 없습니다. 자기 자랑을 위해서 하나님께 받은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은 문제입니다. 자기 자랑을 위해 하나님의 은혜까지 무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기 자랑에 의한 교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미 고린도전서 1:29-31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했습니다.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 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또한 로마서 3:27절에서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라고 했습니다. 오직 믿음의 법 앞에서 자랑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교만입니다. 자신을 자랑하는 이런 교만은 죄의 모습입니다.


둘째, 교만한 자들의 착각을 지적합니다(8).


본문 8절에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라고 합니다. 본문은 사도 바울은 ‘역설 논리’로 고린도 교회 교인들의 교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영적 교단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풍성한 은사를 받았습니다(고전 1:15). 그들의 영적 교만은 하나님의 구원을 다 얻은 것처럼 영적인 풍요를 즐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의 모습은 밑바닥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만 속에서 영적인 풍요를 즐기며 하나님의 통치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사도가 본문에서 언급한 것처럼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이제 사도와 같이 사역자들이 없어도 왕 노릇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영적인 황홀경 속에 무아지경으로 살아가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아직도 죄악과 고난의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황홀경에 빠져 도무지 고난과 싸워 복음을 증거하는 역동적이며 실천적인 삶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 쓴웃음을 보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말합니다. “너희가 이미 왕들이 되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랬으면 우리도 너희의 왕 노릇에 동참할 수 있었을 텐데”라고 비꼽고 있습니다.


오늘날 현대 교회도 똑같은 현상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에 좀 오래 다녔다고 생각된 일부 교인들이 영적 교만에 빠져 있습니다. 자신이 대단한 사람으로 착각합니다. 담임목사까지라도 자신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처럼 복음을 선포하는 사역들을 판단하고 심판합니다. 영적인 엘리트 의식의 교만에 가득차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고칠 약이 없습니다. 


자신은 순종하고 영적인 지도를 받아야 할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히려 자신은 고도의 수준과 영적 지식의 경지에 올라와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 착각을 깰 수 있는 비책은 없습니다. 이런 자들에게 사도 바울이 쓴웃음을 짓고 말한 것처럼 “그래 네가 왕이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왕이 아닌데 왕이다’라는 말은 망하라는 뜻입니다. 망해야 정신을 차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시정되지 아니하면 어쩌면 지금 구약의 사울 왕과 신약의 가룟 유다와 같이 하나님께서 버림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의 복음으로 쓰임 받지 않고 심판의 회초리로 사용한 후 버림받을 수도 있습니다.


3. 복음의 선포자를 괴롭게 하지 말라(9-13)


사도 바울은 본문 9-13절 말씀에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영적인 황홀경에 빠져 자기도취 상태에서 깨어나도록 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철저히 고난의 삶임을 말씀합니다. 이제는 복음을 선포하는 사역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라는 취지로 사역자인 자신의 고난받는 생활을 이야기합니다.


첫째, 사역자는 사형장의 죄수들처럼 제일 천한 자리에서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9절).


본문 9절에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라고 합니다.


본문에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라고 합니다. 사도는 자신을 비롯하여 복음을 선포하는 자들의 삶의 현장이 바로 고난의 자리임을 말씀합니다. 영광을 받은 자리가 아니라 오히려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이야기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사역자들의 복음 선포 사역이 사단의 세력과의 전쟁입니다. 사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여기 사투(死鬪)는 죽을힘을 다하여 싸우거나 죽기를 각오하고 싸움이라는 의미입니다. 사역자들은 이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사역자들을 이웃집 아저씨 정도로 생각하여 아무렇게나 판단하고 심판해서는 안 됩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사역은 사단의 세력과 사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복음 선포자들은 죽기까지 고난받는 자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둘째, 역설적 논법으로 자만한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권면하고 있습니다(10절).


본문 10절에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라고 합니다.


사도는 ‘고난받은 복음 선포자들은 어리석고 너희는 지혜로운 사람이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약하고 천대를 받지만, 너희는 강하고 존경을 받은 자다’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의 이런 논리는 실제로 고린도 교회 교인은 지혜롭고, 강하며, 존경을 받는 자라는 말이 아닙니다. 사도는 지금 역설적으로 그들의 자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셋째, 복음 선포자들의 실제적인 고난의 삶을 진술합니다(11절).


본문 11절에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라고 합니다. 


사도는 10절에서 역설적인 설명을 끝내고 이제 실제로 자신을 비롯하여 복음 선포자는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다”라고 합니다. 정처가 없다는 말은 집 없이 떠돌아다닌다는 말입니다. 그게 바로 사역자들입니다.


넷째, 사도 바울은 스스로 벌어서 생계를 유지하며 사도직을 감당했습니다(12절).


본문 12절에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라고 합니다.


사도는 생활비를 위해 수고하며 손수 일해 왔습니다. 그리고 욕을 얻어먹어도 축복하고 핍박을 당해도 참고 견디며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다섯째, 가장 낮은 자리에서 사명을 감당했습니다(13절).


본문 13절에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라고 합니다.


사도는 다른 사람들에게 비방을 받아도 좋은 말로 달랬습니다. 복음 때문에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같이 살아왔습니다. 이런 생활은 “우리가 지금까지”라는 말속에서 항상 그런 삶이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생활이 바로 복음 선포자의 삶이었습니다.


사도는 영적인 황홀경에 빠져 교만하고 자만한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훈계하고 교만합니다. 복음 선포자들을 줄 세워 값을 매깁니다. 그리고 자신이 지지하는 사역자로 자신의 자랑거리로 삼는 그들에게 복음 선포자들의 고난 받은 삶을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사역자를 놓고 서로 비교하여 우월적 지위에 있는 일꾼을 자랑하므로 자신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교만이 헛된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복음의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4. 교훈과 적용


고린도 교회 교인들의 자만심과 바울 등 복음 선포자들의 고난을 대조시켜 갈등과 분쟁 중인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권면한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날 한국의 상황에서 한국교회와 당시 고린도 교회 상황을 비교해 보면 어쩌면 너무나도 흡사한 분쟁과 갈등으로 교회가 본연의 자리에서 이탈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 선포자에 대한 교인의 자세와 태도, 그리고 교인에 대한 복음 선포자의 자세와 태도에 대해 본문은 많은 진리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복음을 선포한 사역자를 놓고 서로 지지하는 사람끼리 파동을 지어 분쟁을 일삼는 그들에게 사도는 이미 3:5절 이하에서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3:6-7)라고 했습니다.


네 파로 나뉘어 자신들이 선호하는 사도가 다른 사도보다 우월하다며, 그 우월한 사도를 모시고 있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래서 못난 사도를 모신 자들보다 자신들이 더 우월하다는 자랑과 교만은 고린도 교회 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사도는 이에 대해 쓴웃음을 지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비롯한 복음 선포자가 하나님 앞에서 고난을 받은 상황을 이야기하며 더 이상 사역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라는 취지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결국 사도는 치졸한 교만 경쟁에 빠지지 않기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이러한 유사 분쟁과 갈등들이 존재합니다. 교인들이 “목회자를 가지고 논다”라는 말들을 합니다. 더 이상 목회자를 괴롭게 하면 안 됩니다. 반대로 목회자는 사명의 본질을 외면하고 곁길로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갈등 양상을 제거하고 교회의 복음 선포 사명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소재열 목사(새사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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