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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강론12] 자신을 속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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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칼럼

[고전 강론12] 자신을 속이지 말라

모든 것이 결국 하나님에게만 속해 있다.


거금.jpg


본문 / 고전 3: 18-23


[18]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19]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 바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20]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21]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22]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23]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지난 시간에 고린도전서 3:16-17절 말씀을 통하여 ‘복음 선포자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책임’에 이어 ‘경고’의 말씀이었습니다. 성전 개념을 통하여 고린도 교회의 거룩성을 훼손한 자들은 거룩한 성전을 파괴하는 자들이라며 경고한 말씀입니다. 경고는 언제나 들으면 좋습니다. 내가 나쁜길로 가고 있을 때 그를 저지하고 막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올마나 좋겠습니까? 사망의 길로 가고 있는 우리들이 경고를 받아 생명의 길로 간다면 그 경고는 내 인생을 바꾸어 놓은 것이 됩니다.


이번 시간에서는 본문 고린도전서 3: 18-23절 말씀을 통하여 ‘자신을 속이지 말라’라는 제목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가치관의 변화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가치관이란 단어는 ‘가치’(價値)와 ‘관’(觀)을 이해하면 됩니다. 무엇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 지에 대한 나의 관점입니다. 인간이 삶이나 어떤 대상에 대해서 무엇이 좋고, 옳고, 바람직한 것인지를 판단하는 관점의 근거가 무엇이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이 가치관이 변화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속이고 있는 줄도 모르도 자기 잘났다고 소리지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회를 섬기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세상적인 지혜나 지식, 생각을 근거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 이런 생각과 행동이 허망한 것인지를 말씀을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지혜와 세상 지혜는 정 반대(18-20)


첫째, 세상적으로 지혜로운 자라는 생각은 자신을 속이는 행위입니다(18).


본문 3:18절에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다시 ‘복음과 세상 지혜’를 대조하는 문제로 되돌아옵니다. 바울은 진정한 지혜란 이 세상에서 미련한 자가 되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먼저 자신을 속이지 말라, 즉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된다고 말씀합니다. 무엇이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까? 그것은 세상에서 자신이 지혜로운 자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고 합니다. 세상적으로 똑똑하고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에서 정말 지혜로은 사람으로 평가를 받고 싶으면 어리석은 사람이 되라고 합니다.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는 명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깨닫지 못하고 거짓된 자기 과시적 의식에 빠진 자들에 향한 바울이 종종 사용하던 경고입니다(6:9; 15:33; 갈 6:7). 스스로 현명하다는 그릇된 망상에 잠기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자기기만에 빠지게 됩니다. 자기기만으로 일단 미혹 당하게 되면 그 사람은 여러 다른 문제에 처해서도 미혹 당하게 됩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위험성은 세상적인 인간의 지혜를 교회 안에서 자신의 판단기준우로 삼는다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러한 판단을 통해 스스로 현명하다는 생각에 빠진다는 사실입니다. 이와 같은 사람들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어떤 판단 기준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복음입니다. 그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입니다.


자신들의 지혜가 최고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여 그러한 지혜를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것은 결국 자신을 속이고 교회의 다툼을 야기시키고 자들입니다. 결과적으로 교회를 분열시키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들을 속이는 것이며, 또 그것은 자기 자신의 파멸로 이어집니다. 사도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자랑함으로 시기와 다툼이 생겼으며, 고린도 교회 안에 파당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새로운 지혜를 얻기 위하여 우리는 인간 중심의 세상적인 지혜를 버려야 합니다. 자신의 삶을 통해 터득한 인간적인 지혜와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적용된 교회를 자기 중심적으로 이끌어가려는 잘못이 있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행위로 교회는 분열이 일어나고 나툼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이 기준이 되고 판단의 근거가 된다면 분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그만큼 사람들의 생각과 판단과 경험이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누구의 지혜와 생각과 판단과 지식이 교회를 운영하는 기준이 되겠습니까?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미련한 자입니다. 속직히 자신의 미련함을 고백하고 하나님 앞에 머리를 숙혀 그 자비를 구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여전히 지혜 있는 자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행위일 뿐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보시기에 세상 지혜는 어석은 것입니다(19).


본문 3:19절에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 바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라고 합니다.


사도는 세상에서 자신이 지혜로운 자라고 생각한 것 역시 어리석은 것이라고 합니다. 본문은 세상적인 지혜,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스스로 지혜로운 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그 유이는 무엇입니까? 본문은 하나님이 세상 지혜를 어리석은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세상 지혜는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어리석인 지혜로 자신의 값을 매기려고 합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세상적인 지혜로 사도들을 판단하려고 합니다. 또한 사도들을 세상적인 지혜정도로 생각합니다. 사도는 이를 단호히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모든 가치의 척도가 세상적인 지혜입니다. 세상적인 방법으로 사람을 평가합니다. 새상적인 방법으로 교회를 평가합니다. 세상적인 방법으로 교회 직분을 평가합니다. 그 세상적인 방법으로 판단하는 모든 행위는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하나님께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차라리 세상적으로 바보가 되어 하나님의 지혜를 얻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속이지 말라는 명령에 대한 이유를 구약성경을 인용함으로써 설명합니다. 여기서 인간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가 아주 날카롭게 대조되고 있습니다. 서로 정반대이기에 이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의 평가에 의하면 어리석은 것입니다. 


인용된 구약성경 본문은 “기록된 바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라고 합니다. 욥기서 5:13절에 “지혜로운 자가 자기의 계략에 빠지게 하시며 간교한 자의 계략을 무너뜨리시므로”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자칭 지혜있다고 생각하는 약삭빠른 자를 자기 꾀에 빠지게 하셔서 그들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지혜가, 세상적인 방법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깨닫게 합니다.


셋쩨,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되게 하십니다(20).


본문 3:20절에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본문 20절에서는 시편 94편 11절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이 헛된 것임을 아신다고 밝입니다. 여기서 ‘생각’이란 말도 바울에게는 깊은 생각과 계획들, 또는 어떤 음모들을 뜻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인간의 어떤 생각도 감출 수 없고 노출될 뿐이 아니라 미련한 것으로 판명됩니다. 따라서 사도는 시편 말씀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인간의 어떤 지혜도 결국은 미련한 것임일 천명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지혜의 주체가 된다는 사실을 강조해 줍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지혜를 의지하면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내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 자랑을 하고 싶은 욕망은 결국 하나님의 지혜가 아닌 세상적인 지혜를 가지고 올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적인 지혜, 세상적인 지식을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야만 자기 자랑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들은 결국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적으로 지혜있다고 자고한 그들의 생각을 헛되게 하실 것입니다. 헛되게 한다는 말은 무의미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의미없는 말이나 생각이 얼마나 허망한 일입니까? 우리는 허망과 망상으로 살아가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인생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 인생을 의미있게 살아야 합니다. 값지게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축복된 삶이 아니겠습니까?


2.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21-22)


첫째, 생각과 판단의 오류를 시정해야 합니다(21)


본문 3:21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라고 합니다. 본문은 ‘그러므로’라는 단어로 시작합니다. 앞에서 설명한 내용에 대한 결론적인 말씀입니다. 이 부분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결론적인 이야기를 통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러므로 아무도 사람들을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라는 말씀은 18-20절의 결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1:30-31절에 언급된 ‘자랑’이라는 주제가 다시 등장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잘못된 자기자랑을 상기시키며 이를 교정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교정을 받는 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문제는 자신이 잘못된 신앙을 하고 있는데 이를 교정받지 못한다는 것만큼 불행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본문은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외가 있을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고 합니다.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는 것은 만물, 즉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너희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자랑’은 고린도 교회의 분파 행위에 때 나타난 두드려진 현상입니다. 그들은 파벌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나는 바울’, 나는 ‘아볼로, 게바’라고 자랑을 했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과 잘못된 판단에서 나온 오류입니다. 그들이 바울이나 아볼로, 게바 등을 상전으로 모시면서 자신의 모신 주인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고린들의 위한 사역자입니다. 즉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것입니다. 그들을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위해 보냄을 받은 자들입니다. 또한 섬기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누구를 자랑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어떤 주인이 인력 사무소에 인부 세 사람을 보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인부 3명이 왔습니다. 그 세 사람은 일꾼입니다. 주인이 인부들을 자랑하면 되겠습니다. 인부 3명을 놓고 나는 바울파, 나는 아볼로 파, 나는 게바 파라고 하면서 분파를 만들어야 합니까? 그 일꾼은 일꾼일 뿐입니다. 교회 안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긍극적으로 주인이신 하나님이 일꾼으로 불어주셨는데 우리는 추종하는 그 일꾼 중심으로 파당을 만들고 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둘째, 파당은 가치관의 혼란, 또한 복음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입니다(22).


본문 3:22절에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라고 말씀 합니다. 고린도 교회가 복음 전파자에 불과한 바울이나 아볼로, 게바 등을 내세우며 자기가 추종한 지도자 중심의 분파로 교회가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이들의 생각과 주장을 교정하기를 “모든 것들이 다 여러분들의 것”라고 말씀합니다. 


본문에서 사도는 바울도, 아볼로도, 게바도, 모든 피조물로 다 고린도 교인들의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사역자들, 즉 섬기는 자들은 교회와 교인들을 주관하는 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는 자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교회를 섬기며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교회와 교인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돕는 자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후 1:24절에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라고 합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들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전파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일꾼들이며 따라서 교회의 일꾼들이기도 합니다. 고린도 후서 4:5절에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여기서 바울과 아볼로와 게바의 이름을 다시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외에 결코 누군가에 종속된 존재가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복음 전파자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그에게 속해 있다’고 표현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오히려 진정한 사역자라면 ‘나는 여러분에게 속해 있다’라고 말해야 옳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1:12절이나 2:4절에서 ‘나는 누구에게 속해 있다’고 했던 이야기를 절처히 거부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란 복음을 증거하고 가르치는 모든 사역을 포함합니다. 모든 것이란 22절에 나오는 하늘과 땅의 모든 피조물 전체를 의미하니다. 여기서 지적된 것은 인간(바울, 아볼로, 게바), 사물(세계, 생명, 사망), 사건(현재의 것, 미래의 것)등 세 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상의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만유의 주이십니다.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삶과 죽음은 물론 이 세상과 오는 세상 위에 군림하는 주가 되셨습니다. 그의 백성인 그리스도인들도 더 이상 죽음의 노예가 아닌 그리스도의 주권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아직 세상에 살지만 이 세상이 요구하는 대로 살면 안 됩니다. 이 세상이 요구한대로 생각하거나 살지 않아야 합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구권에 참여하여 이 세상이 올바른 가치관과 생각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며, 예수의 제자들입니다. 


3. 하나님께 속한 그리스도의 주권(23)


본문 3:23절에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본문 말씀은 최종적인 결론의 말씀입니다. 이 결론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이외에는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세상적인 지혜나 그 지식과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자들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신자들은 그리스도에게 속했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임을 말함으로써 모든 논의를 궁극적으로 하나님에게 맞추고 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결국, 만물과 교회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하나님께 속했으며, 하나님께 의존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세상에 대한 주권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원래의 창조질서가 회복되는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주권으로부터 벗어난다면, 그들은 다시 타락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 결과 타락한 이 이 세상의 질서, 즉 피조물들이 종으로 굴러 떨어지고 맙니다.


4. 교훈적 적용


본문인 18-23절은 ‘누구에게 속해 있다’라고 주장하며 자신을 드러냈던 고린도 교인들에게 모든 것이 결국 하나님에게만 속해 있음을 말씀한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고린도 교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한국교회도 자신들이 선호한 사역자들 중심의 파당을 만들어 ‘나는 누구에게 속해 있다’라는 파벌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이 파벌의식은 결국 교회 분쟁으로 이어집니다. 담임목사 지지세력, 장로의 지지세력 등으로 파당이 이어집니다. 그래서 교인들은 나는 목사에게 속해 있고, 나는 장로에게 속해 있다며 자신의 소속을 말하면서 편가르기를 시도합니다. 


이는 모두 다 복음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서 멎어진 것이 아니라 새상적인 지혜와 지식, 생각들을 교회 안으로 끌어들여 자기 자랑, 자기주장의 근거로 삼습니다. 이러니 하나님 말씀의 기초 위에 세워진 교회를 다른 재료인 비진리로 교회를 세우고 운영하려고 합니다. 이는 분명 교회도 아니요, 신앙도 아닐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런 생각과 행동을 허망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즉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합니다.


오늘날 교회는 고린도 교회처럼 자기 주장의 정당성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가저온 것이 세상적인 것으로부터 가져옵니다. 소위 세상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들아옵니다. 도무리 이를 버리지 않고 고집과 아집으로 자신의 생각과 뜻을 관철시키려고 합니다. 사도는 이런 자들은 모든 것이 그리스도에게 속했고,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속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이러한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한 주권을 행사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주권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 내에서 자신을 속이고 허망한 세상적인 지혜와 생각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월적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 사역자들에게 속해 있다는 것으로 자신의 가치관을 자랑하려는 것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 심판의 한 방법이 그들의 생각을 허망하게 해 버립니다. 아무런 쓸모 없는 사람이 되게 해 버립니다.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일평생 하나님의 말을 했다고 주장하나 하나님은 “그것은 너의 일이지 내 일이 아니었다”라고 판 무시해 버립니다. 이를 가리켜 ‘헛수고 했다’라는 말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의미있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소재열 목사(새사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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