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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강론11] 복음 선포자에 대한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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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칼럼

[고전 강론11] 복음 선포자에 대한 경고


고린도의 바울기념 교회.png
고린도의 바울 기념 교회

 


본문 / 고전 3:16-17


[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지난 시간에 본문인 고린도전서 3:5-15절 말씀을 통하여 “복음 선포자(사역자, 디아코니아)의 책임”이라는 제목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사역자란 섬기는 종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모든 복음 선포자나 직분은 섬기는 종입니다. 종은 주인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주인의 명령에 복종해야 합니다. 주인의 명령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곤란합니다.


사도는 교회를 하나님의 건물로 비유했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을 그 건물을 짓는 일꾼들로 비유했습니다. 이 비유는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그러면서 그 성전을 위해 사역하는 일꾼들의 책임을 언급했습니다. 사도는 그 책임을 언급할 때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기초여야 함을 강조합니다. 


그 기초가 흔들리면 건물이 흔들이듯이 바로 교회가 흔들릴 것입니다. 사역자들이 교회를 섬기면서 자신들 중심의 파당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세례에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느냐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려고 했습니다. 이는 교회의 기초위에 세워진 교회의 본질을 오해한 결과입니다. 바른 복음의 기초위에 세워지지 않는 교회는 무너지며, 심판의 날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모든 사역자가 반드시 숙지하고 사명을 감당해야 말씀입니다.


이번에는 본문 고린도전서 3:16-17절 말씀을 통하여 ‘복음 선포자에 대한 경고’에 대해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책임’이었다면 이번에는 ‘경고’입니다. 


1. 거룩한 성전 개념으로서 교회의 개념(16)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16, 상).


본문 3:16절에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단순히 건물에 있지 않습니다. 사도가 복음을 선포하자 믿는 자들이 생겨났습니다. 그 믿는 자들의 모임이 고린도 교회 형태로 존속하게 되었습니다. 믿는 무리가 바로 교회입니다. 그것이 바로 구약성경에서 말씀한 성전입니다. 구약의 성전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 된 신자들과 함께 거룩한 성전이 되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보편적으로 교회를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합니다. 건물 자체를 성전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러한 성전 개념은 구약성경을 통해서 확인해야 합니다. 구약성경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알려주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계시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기록된 구약성경으로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였는가? 라는 질문은 구약성경을 통해서 알려 주셨습니다.


구약성경 가운데 중요한 내용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선택 사상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인간과 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계약을 위반하자 하나님 저주의 형벌이 그들에게 임했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인류가 전적으로 타락하였습니다. 하나님과 맺은 계약을 위반한 타락한 전 인류는 하나님의 저주의 형벌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는 심판 중에서도 당신의 택한 백성들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푸셔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여기서 ‘택한 백성’이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구약의 역사가 진행되면서 하나님은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만나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택한 백성들과 만나주시는 방법으로 성전, 제사 제도를 도입하셨습니다. 그 성전에서 제사를 통해 만나주십니다. 그래서 성전은 특별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성전과 제사와 제물은 장차 종말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약속한 내용이었습니다.


구약성경의 성전 등은 그림자였다면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는 그 그림자의 실체였습니다. 아파트를 건축할 때 분양을 위해 사전에 모델하우스를 먼저 짓습니다. 모델하우스 대로 건축하겠다는 것입니다. 아파트가 다 완성되면 그 모델하우스는 철거됩니다. 왜 철거합니까? 그 모델하우스가 본 아파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구약성경의 성전, 제사, 제물 등은 모델하우스와 같은 개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 동안에 지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 백성이 자신이 선포하는 하나님 나라를 거부하고 예루살렘의 성전체제가 타락할 것을 보고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예루살렘의 성전이 파괴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막 13:1-2). 자신이 새로운 성전을 짓겠다고 약속했습니다(요 2:19). 예수님이 하나님의 심판에 의한 예루살렘 성전 파괴를 예언하면서 자신이 새 성전을 건축하겠다고 약속 하였습니다. 이는 새로운 건물을 짓겠다고 약속한 것이 아니라 종말의 하나님의 백성을 창조하고 모으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이러한 기록은 사도가 기록된 고린도전서 기록 이후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이제 구약의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기도하는 행위가 이제 그 성전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했다면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임재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 안에는 모두가 다 거룩한 자입니다. 하나님의 거룩이 이제 장소적 개념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성취되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거룩한 무리를 교회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의 강조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를 믿는 무리의 모임을 거룩한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교회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의 모임을 교회라 한다면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인 셈입니다. 성전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 역시 성전에 속한 자들로서 성전 자체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둘째, 믿는 자들은 성령이 함께한 성전입니다(16, 하).


본문 3:16절에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합니다. 여기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전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본문은 “너희(복수)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복수)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함께 모인 교회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모습입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 각자와 교회 전체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것은 그들이 대단한 위엄을 가지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함께 해 주십니다. 성령이 우리에게서 떠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임재해 주십니다. 사도는 이미 고린도전서 2:10절에서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곳을 우리에게 보이셨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신 분”입니다(고전 2:12).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과 다르게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에게 은혜와 평강을 주신 분으로 설명합니다. 이는 은혜와 원천을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주어진 것으로 설명합니다. 이러한 진리는 오직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해 주실 때에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증거합니다. 그 증거에 의해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영접할 때 성령께서 우리의 죄를 회개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 구원받는 길은 율법준수나 인간의 행위에 있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는 오직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임재해 주신 결과입니다.


2.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힌 자에 대한 심판(17)


첫째, 누구든지 성전을 파괴하면 그 사람도 파괴될 것입니다(17, 상).


본문 3:17절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다음과 같은 의미의 본문입니다.


만일 누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파괴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그 성전이다.


우리가 여기서 첫 번째로 묵상하는 것은 누구든지 성전을 파괴하면 그 사람도 파괴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누구도 예외가 있을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허물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성전을 허무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모릅니다. 


바울은 이런 상황 속에서 분명하게 경고하는 것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라는 말씀에서 ‘더럽히다’와 ‘멸하시다’는 동일한 문맥에 따라 ‘파

괴하다’, ‘해치다’, ‘부패케 하다’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누구든지 성전을 타락시키거나 그 성전에 위해를 가져오는 사람들을 엄중하게 처리하실 것입니다. 또한 그 성전 된 교회를 분열시키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이고, 하나님의 심판을 그 머리 위에 자초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임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거룩하게 예배드리고 있는 성전을 파괴한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성전을 파괴한다는 말을 건물 창문 등을 부수는 그런 식의 파괴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전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성도들의 하나 된 모임과 그 실체를 파괴하는 것을 ‘성전 파괴’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 내의 분쟁은 하나 된 성전을 허무는 일이라는 점을 주시해야 합니다. 


둘째,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기 때문입니다(17, 하)


본문 17절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라고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기 때문에 그 거룩한 성전을 파괴하는 자는 멸망을 당할 것입니다. 즉 성전을 파괴한 자가 멸망을 당한 이유가 바로 그 성전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기 때문이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견주거나 이 거룩에 대들 수 있습니까? 감히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시며, 영원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대항할 수 있습니까? 만약에 대항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실행에 옮기는 자들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삼하 6:6-7절에 “그들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이 임재한 ‘하나님의 궤’에 거룩하지 못한 자가 만졌을 때 하나님은 그를 진노하시며 그 자리에서 죽게 했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자 외에 그 누구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거룩은 인간이 감히 접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좌정하고 계신 성전의 깊숙한 지성소에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그 하나님 여호와의 거룩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나타났습니다. 이런 이유로 성육신 하나님이 우리에게로 오셔야 거룩한 구원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인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 앞에 나설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셋째, 우리는 그 성전입니다(17, 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거룩한 자들만이 거룩한 하나님께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그 어떤 사람들도 중재자가 될 수 없습니다. 유일한 중재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성령이 임재한 거룩한 자, 곧 거룩한 성전이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성전 된 우리를 파괴한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성전 된 우리는 거룩한 주님을 모신 자들로서 거룩해야 합니다. 본질적으로 거룩한 구원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구원받은 이후 우리는 거룩한 성전의 본래 모습에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3. 사도 바울이 강조한 요점


사도 바울은 본문을 통하여 거룩한 성전 된 교회를 파괴하는 자들은 멸망을 당할 것을 경고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 역시 거룩한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재하는 곳입니다. 이러한 성전인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들을 파괴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언급합니다.


사도가 이런 말씀을 하면서 교회의 기초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구원의 도리를 왜곡하지 말도록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제 사역자들은 이 성전을 허무는 일을 하면 안 된다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사역자들이 바른 복음인 예수 그리스도의 기초에서 벗어나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을 성전을 무너지게 하는 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고린도전서를 쓸 때는 아직 복음서가 없었던 때입니다. 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가 기록되기 훨씬 이전에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썼습니다. 고린도전서 이전에 이미 갈라디아서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갈라디아서와 로마서, 고린도서를 통해 사도는 줄기차게 유대인의 구원 형태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구원관인 율법을 준수해야 하고 오직 유대인으로 태어나야만 구원이 임한다는 선민사상을 거부합니다.


바울 자신도 과거에는 그 유대교의 엄격한 교리를 집행하는 자였지만 이제는 그러한 구원관을 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얻는 진리를 전파했습니다. 이 구원은 유대인의 담장을 뛰어넘어 이방인들에게도 주어진 복음이었습니다. 이제 율법을 지켜야 하고 할례를 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친 자는 교회의 기초를 허무는 것으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있을 것을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잘못된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들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 경고는 오늘날 우리가 들어야 하는 말씀입니다.


4. 교훈과 적용


이미 3장 10절에서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하라’라고 한 말씀을 기억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우상들이 거주하고 사람들이 부패한 고린도의 유일한 희망은 교회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은 당파를 만들고 세상적 지혜에 따라 자랑하고 교만하고 상대방을 멸시함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바른 복음의 말씀으로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내면 깊숙이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자인가, 아니면 파괴하는 자인가?’라는 말씀을 묵상해 보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4:12절에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영적인 것을 사모하면서 나에게 주신 은사로 교회 덕을 세우고 있는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교회 덕을 구하지 아니하고 나의 유익을 구하기 위한 봉사나 헌신은 오히려 교회를 파괴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교회는 단순한 교회 건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여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의 모임을 교회라 했습니다. 이런 교회의 하나됨을 위하여 헌신하는 봉사는 바로 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에게 상처를 주고 아픔을 준다면 성전을 스스로 파괴한 것과 같은 일입니다. 이 일에 대해 하나님은 간섭할 것입니다. 교회 파당을 만드는 것 역시 성전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에 따라 은사를 주셨는데 그 은사를 악하게 사용하는 것 역시 성전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자신의 유익을 위해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임재한 성도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일은 우리 모든 사역자가, 직부자들이 감당해야 할 사명입니다. 그러한 격려와 위로의 목표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길입니다. 이러한 직분을 잘 감당하여 교회를 세우는데 앞장서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소재열 목사(새사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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