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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강론2] 바울의 감사와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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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칼럼

[고전 강론2] 바울의 감사와 정체성

본문 린도전서 1:4-9; 고린도 교회 성도들로 인한 바울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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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고린도전서 1:4-9)

 

(고전 1: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전 1:5)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고전 1:6)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고전 1:7)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고전 1: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고전 1: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사도 바울은 2차 선교여행 중(A.D.50-51) 겨울에 고린도에 도착하여 약 1년 반을 머무르면서 그곳에 교회를 개척했다. 고린도 교회에는 로마에서 추방되어 고린도에 온 유대인 부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천막 개조업에 취직하여 일하면서 바울은 그곳의 유대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다. 상당수 유대인과 이방인 중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 이에 유대인들이 반발하자, 바울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회당으로부터 분리하여 그리스도를 믿게 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유스도의 집에 교회를 세웠다. 사도바울은 교린도를 떠나 에베소로 갔다. 에베소에서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보낸다.


사도는 1:1-3절 말씀을 통하여 고린도 교회에 대해 인사를 한 후 본문 1:4-9절 말씀을 통하여 고린도 교회 성도들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감사한 이유를 말씀한 내용이 바로 본문 말씀이다.


1. 고린도 교회를 위한 바울의 감사(4)


사도바울은 본문 4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라고 한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고린도 교회 교인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와 믿음으로 연합된 것을 감사한다. 그리고 그러한 연합을 통하여 구속을 얻도록 하신 것을 감사한다. 또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것을 감사한다. 이 구원의 은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께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을 감사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는 은사로 표현되고 구체화하여 나타난다. 성도들의 ‘은사’는 ‘은혜’의 개인화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개개 성도들에게 베푸신 은혜가 있다. 그 은혜가 성령의 능력으로 주관적으로 구체화 되어 적용될 때 은사로 나타난다. 은사는 은혜의 구체적인 적용이다.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결국 은사를 통해 표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는 은사로 나타났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통해 각종 은사로 충만했다. 그 은사는 부족함이 없었다. 고린도인들은 특별히 이방인의 문화와 그 배경의 영향으로 언변들과 여러 가지 지식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고린도인들은 이런 것들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자랑했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고린도인들이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는 이러한 점들을 우선 인정한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은사들에 대한 교만과 오해가 그들 교회에서 여러 문제가 되었다. 바울은 곧 이 문제들을 시정하도록 충고하고 그들이 자랑하는 말이나 지식보다 더 ‘우월한 길’, 곧 '사랑'을 이야기한다. 고린도전서 12장 31절에서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라고 한다.


사도바울은 본문 말씀을 통하여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받게 되었는가를 말씀한다. 사도는 이러한 은혜를 받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지금 어떤 처지에 있는가를 상기시키려고 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나는 늘 하나님께 감사드린다”라고 말하고 있다.


2. 사도바울이 감사한 이유(5-7)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 때문에 감사한다고 말씀한 후 본문에서는 구체적으로 감사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어떤 신앙을 하고 있는가를 상기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점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 


첫째,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이 풍족하게 되었기 때문이다(5).


본문 5절에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한다. 사도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말하는 것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감사했다.


먼저 사도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언변에 감사하고 있다. 말을 잘하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잘해야 한다. 말을 잘하는 데 은혜가 안 되는 말은 곤란하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말 잘하는 것도 은혜로운 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 말은 잘해야 한다. 좋은 언변은 축복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러한 좋은 언변으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는데 문제가 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좋은 언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어서 사도는 “모든 지식의 풍족”을 말하고 있다. 이 역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지식의 풍족함에 감사하고 있다. 많이 알고 있는 지식은 좋은 것이다. 그러한 지식은 본인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유익이 되어야 한다. 덕을 베풀어야 한다.


한 사람의 과학자가 국가와 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는가? 질병을 연구한 지식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치료하는가? 이러한 모든 지식을 가지고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끼쳐야 한다. 모든 지식의 풍성함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끼쳐야 한다. 그런데 그러한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죽이는 데 사용된다면 얼마나 비극적인 일인가?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모든 지식이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고 있음을 감사하고 있다. 우리 자신들이 가진 지식, 내가 살아가는 삶의 영역 속에서 가진 모든 지식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그러한 지식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이런 지식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잘못된 지식이 사단의 올무가 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 그리스도의 증거가 견고해졌기 때문이다(6).


본문 6절에서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라고 말씀한다. 그리스도의 증거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견고하게 했다. 집을 건축할 때 기초가 견고해야 한다. 우리 신앙 지식도 기초가 견고해야 한다. 견고하지 못하면 쉽게 이단의 유혹을 받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이 나타났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주어졌다. 물론 이러한 구원의 은혜는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모두를 대표하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 못 박혀 죽으셨다. 그리고 우리의 첫 열매로 부활하셨다. 이러한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심장 속에 확증했다. 그리스도의 증거의 확실함이 풍성한 은혜로, 그 은혜가 은사로 나타났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은사의 근원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이다. 이를 자신들의 공로나 업적으로 내세울 수 없다. 사도는 바로 이러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믿음에 감사하고 있다. 우리는 철저히 공로의식을 버려야 한다. 모두가 다 주님의 은혜일 뿐이다.


셋째, 부족함 없는 은사와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소망 때문이다(7).


본문 7절에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라고 말씀한다. 사도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은혜로 인해 받은 믿음의 선물인 은사들을 부족함 없이 받았다.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소망하고 있는 신앙에 감사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를 마치고 부활하고 승천하셨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 1:8-11)


고전 15:24-26절에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대 심판을 통하여 이 악과 고난의 세대를 종결짓고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실 것을 기다리고 있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 때문에 사도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


3. 신실하신 하나님(8-9)


첫째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지켜주신다(8).


본문 8절에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라고 말씀한다. 본문에 “주께서 너희를”이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주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주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다. 주께서 우리에게 은사를 주셨다. 주께서 우리에게 축복해 주셨다. 앞으로도 주실 것이다. 


그 주께서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라고 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이란 심판의 말이다. 그 심판의 날에 우리의 흠을 보지 않으신다. 책망 거리를 찾지 않으신다.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우리를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고 우리를 지켜주신다.


마 28:20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해 주셨다.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해 주신다.


둘째,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와 교제해 주신다(9).


본문 9절에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라고 한다. 사도는 본문에서 어떻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소개 주시는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교제해 주신 하나님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주’이시다. 우리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해 주신다. 교제해 주신 하나님은 미쁘신 분이시다. 미쁘시다는 말은 신실하시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다. 변치 않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많은 약속을 해 주셨다. 그 약속은 우리 인간들처럼 져버리는 분이 아니시다. 한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켜주신다. 


문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고 있는 이상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시지 않는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역사해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고백하게 하고 믿게 해 주셨다. 그래서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믿게 해 주셔서 구원을 베풀어 주셨다. 우리가 늘 부족하지만 신실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시지 않고 끝까지 지켜주신다.


교훈과 적용


우리는 본문 말씀을 읽고 설교를 들을 때 어떤 결심과 결단이 있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와 은사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주셨다. 그런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의도적으로 무관심했다. 의도적으로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


많은 지식을 갖고 있다. 말을 잘하는 언변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지식과 언변은 자신의 삶을 역동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그것을 악하게 사용하기 때문이다. 덕스럽게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역사의 현장에서 나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쳐야 한다. 그런데 악한 영향을 끼쳤을 뿐이다.


이제 새롭게 되살아나야 한다. 성령께서 나의 심장에 역사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 구원의 은혜가 나에게 주어졌다. 그 은혜는 나에게 은사로 구체화 되었다. 은사는 은혜로 주어진 선물이다. 이제 감사하며, 역동적으로, 긍정적으로, 선한 열매,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주 안에서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날, 심판 날에 우리를 견고하게 해 주신 것이다. 

 

소재열 목사(새사랑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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