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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강론1] 바울의 권위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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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칼럼

[고전 강론1] 바울의 권위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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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고전 1:1-3


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권위 주장은 반드시 그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은 권위가 없으며, 그것은 낭설이다. 많은 사람은 자신의 권위 주장을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자신의 주장에 대한 정당성의 근거는 주장의 진실성을 담보한다. 그리고 권위를 가져온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간혹 이단에 빠진 경우들이 있다. 우리 주변에는 많은 교회가 있다. 그리고 일정한 신앙 그룹들이 있다. 각 단체는 자기중심적인 해석과 관점을 갖고 성경을 이해한다. 단체 뿐만 아니라 각 사람들은 나름대로 성경을 이해하는 틀을 갖고 있다. 문제는 그 틀의 근거가 문제될 때 엄청난 혼란이 찾아온다.

 

사도 바울은 복음 전도를 위해 사도임을 강조했다. 자신의 사도성이 무너지면 복음전도도 무너진다. 이런 이유로 자신의 사도성을 의심하는 고린도 교회에 자신이 사도임을 밝히면서 그 사도로 부름을 받은 근거를 밝힌다. 그 근거를 통해 사도에 대한 권위를 주장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면서 서두에서 자신의 신분을 밝히면서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의 문을 열고 있다.


1. 고린도 교회에 보낸 사도 바울의 편지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보낸다. 당시 헬라 세계에서 통용된 편지 양식은 4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① 서두 ② 감사 또는 기도 ③ 본론 ④ 말미: 인사와 축복 등으로 구성된다. 첫째 서두는 편지를 보낸 발신인이다. 그리고 수신인으로 누구누구에게 인사하는 형식이다. 다음은 본론이다. 편지를 통해서 하고자 하는 중심 내용으로 구성된다. 말미는 인사와 축복으로 구성된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당시 헬라 세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편지 양식에 따라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보낸다. 사도는 이러한 양식을 준용하여 자신의 신앙에 근거하여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보낸다. 고린도 교회에 보낸 첫 번째 편지가 고린도전서가 되었다. 두 번째 편지는 고린도후서가 되었다. 


2. 서신의 서두: 발신인이 수신인에게 인사 내용(1)


첫째, 발신인 소개


본문 1절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라고 한다.


본문에서 고린도 교회에 보낸 발신인은 사도 바울이다. 그리고 공동 발신으로 형제 소스데네를 언급한 것은 바울의 겸손함이라 할 수 있다. 소스데네는 ‘힘 안에서 안전함’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소스데네는 교린도 지역에서 유대 회장의 회당장이었다.


사도행전 18장에 의하면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 유대인이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에 세웠다. 이유는 바울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선동했다는 이유였다. 이때 총독 알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유대인의 신앙 문제이므로 스스로 처리하라고 한다. 사도 바울은 로마의 시민권을 갖고 있었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법정에 세웠지만 풀려나자 유대인들은 폭동을 일으켰다. 유대들은 바울 대신 유대 회당장인 소스데네에게 폭력을 가했다. 이는 총독 갈리오의 묵인하에 이루어졌다. 


행 18:17에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아니하니라”라고 한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이 거부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다. 율법을 소유했고, 유대인으로 출생하였다고 하여 구원을 받은 것도 아니며, 할례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복음을 전했다. 이를 총독에게 고소하였지만, 총독은 이는 재판건이 될 수 없다며 재판을 거부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뜻이 관철되지 않자 회당장인 소스데네를 습격하였다. 공격의 목표를 바울 대신 소스데네로 향한 것이다. 소스데네는 바울 때문에, 복음 때문에 고난을 받았다. 당시 사도 바울과 고린도 교회에 개척에 함께했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있고 디모데도 있다. 그런데 사도는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다른 사람이 아닌 소스데네만을 공동 발신인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바울에게 있어서 소스데네는 자신의 복음 사역에 고난으로 동참한 사람이었다.


둘째, 바울의 권위 주장, 사도권


본문 1절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이라고 한다. 바울은 자신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는데, 그 부르심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부르심을 받았다고 한다. 이는 사도의 권위 주장이다. 그 권위의 근거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부르심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한다.


사도가 고린도 교회에 편지할 때 첫 문안 인사에게 왜 자신의 사도성을 부각하고 강조하고 있는가? 또한 누구로부터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는가를 강조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고린도 교회가 자신의 사도성에 대해 의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도는 주로 편지할 때 자신의 사도성을 의심하지 않는 교회에 편지할 때는 자신이 사도임을 밝히지 않는다. 특히 빌립보교회에 편지할 때 서두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빌 1:1)


빌립보교회에 보낸 편지에는 자신이 사도임을 밝히지 않는다. 그 이유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은 바울의 사도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사도 바울이 투옥되었을 때 연보와 옥바라지할 자를 보내 주기도 하는 아주 특별한 관계가 있었다.


빌립보교회 외에 데살로니가교회에 편지할 때도 사도임을 강조하지 않는다. 데살로니가 전서 1:1에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한다.


특히 바울에 의해 개척하지도 않았던 로마교회에 편지하여 스페인 선교를 위해 도움을 받기 위해 보낸 편지에는 자신의 사도성을 밝히고 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이며, 이방지역의 교회인 로마교회 방문과 이방지역인 스페인 선교를 위한 선교계획을 밝혀야 하므로 사도임을 강조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롬 1:1)


문제는 고린도 교회에 편지할 때는 자신이 사도임을 밝히고 있다. 그 사도가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을 강조하고 있다. 그 하나님이 뜻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로 불러주셨음을 말씀한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다. 사도직은 신약교회에 아주 독특한 직책이었다. ‘사도’라는 직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하여 높임 받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전권대사로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고린도전서 4장, 9장, 고린도후서 4장에 의하면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자신의 사도직에 관해 오해를 받거나 의심을 받았다. 사도직에 대한 징표에 대한 혼란이 있었다. 바울은 자신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은 어떤 사람으로서가 아니라고 말한다.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진정한 사도임을 일관되게 내세운다. 고린도후서 1:1과 갈라디아서 1:1절을 참고할 수 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고후 1: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갈 1:1)


3. 바울의 고린도에 있는 교회 정의(2)


본문 2절에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라고 한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에 있는 교회를 여러 가지로 정의한다. 


첫째, 하나님의 교회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 백성, 총회, 공동체를 지칭한다. 신명기 31:30에 “그리고 모세가 이스라엘 총회에 이 노래의 말씀을 끝까지 읽어 들리니라.”라고 한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총회’는 구약 하나님의 교회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교회가 초대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무리에게 적용된다. 바울은 ‘교회’라는 칭호를 본문 2절에서와같이 고린도 지역의 각 처소의 그리스도인의 회중에도 적용하고 있다. 그리고 전 세계의 모든 그리스도인의 집단(집합체)에도 적용한다.


고전 15:9에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라고 한다. 여기 하나님의 교회를 ‘교회들’이라는 복수로 사용한다.


또한 고린도전서 4:17에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 그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라고 한다. 


특별한 한 지역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은 그 수나 장소와 관계없이 그 지역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로서 그 지역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


거룩이란 세상으로부터 분리된 하나님께 솔한 것을 의미한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그 상태를 거룩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거룩한 자들’이다. 또한 ‘성도들’이다. 따라서 ‘선택’, ‘부름’, ‘성도들’ 등은 같은 동의로 쓰이는 교회이다. 


교린도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의 선택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을 통해 부름을 받은 자들이다. 이렇게 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 곧 ‘성도들’이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세상에 속한 자들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서는 안 된다. 오직 자신을 선택하여 불러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한다. 여기서 하나님의 뜻이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없는 삶은 거룩하지 못한 삶이다. 


거룩한 사람들의 삶의 열매는 거룩해야 한다. 도덕적, 윤리적 열매가 세상 사람들과는 달라야 한다. 바울은 여기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도덕적 삶에 대한 교정을 바라고 있다. 이를 위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 서두에서부터 ‘거룩함’을 강조하고 있다.


셋째,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


그리스도인들은 근본적으로 예수를 ‘주’로 고백한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 10:9)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그분에게 의존하고 예배와 기도 가운데 그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자들이다.


“그의 제사장들 중에는 모세와 아론이 있고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 중에는 사무엘이 있도다 그들이 여호와께 간구하매 응답하셨도다.”(시 99:6)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요엘 2:32)


4. 바울의 축복기도(3)


본문 3절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라고 한다. 사도는 본문에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은혜와 평강’을 축원하고 있다.


첫째, 은혜이다.

 

은혜는 인간을 위한 하나님 구속의 행위이다. 인간들의 대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그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거져 주어진다. 거저 베푸시는 구원의 사랑이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둘째, 평강이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구속적 행위의 결과이다. 이 결과는 하나님과 화해된 인간이 누리는 전체적인 안락한 상태를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받아 누리는 모른 삶의 모습들은 평강의 모습이다.


셋째, 은혜와 평강의 출처이다.


본문 3절에 의하면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라고 한다. 여기서 은혜와 평강의 출처가 첫째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이다. 둘째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 문제는 우리에게는 간단하다. 믿음으로 받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 그러나 유대인 입장에서 살펴보면 심각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은혜와 평강의 출처에 동격으로 보고 있다. 유대인 입장에서는 이단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바울은 유대인에게 고발을 당했고 총독의 재판정까지 가게 되었다. 그러나 총독은 종교적인 신앙의 문제에 관해서는 판단하기를 거부했다.


사도 바울의 이러한 3절 말씀은 엄청난 신앙 고백적 표현이다. 이것이 곧 우리들의 신앙고백이어야 한다.


교훈과 적용


사도 바울은 고린도 지역에 1년 6개월 동안 머물면서 교회를 설립했다. 바울은 에베소에 머물면서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보낸다. 첫 번째 편지인 고린도전서는 교회 분쟁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들을 가지고 권면하고 있다. 앞으로 고린도전서를 살펴보면서 오늘날 우리 교회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한다.


사도는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의 서두에서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편지를 보낸 자신이 어떻게 사도가 되었는가를 말한다. 우리 역시, 어떻게 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았는가? 그리고 나를 직분 자로 세우신 분은 누구이신지를 확인해 보는 시간은 우리들의 신앙을 점검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고후 13:5에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라고 한다.


본문 말씀에서 사도는 자신의 사도직과 신앙을 어떻게 고백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듯 우리 역시 나에게 허락해 주신 직분과 신앙고백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소재열 목사(새사랑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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