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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6장 강론2] 사도 바울의 문안인사

기사입력 2021.06.20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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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앞선 본문, 즉 본문 16:1-2절 말씀을 통하여 사도가 로마교회에 편지하면서 뵈뵈 자매를 천거하는 말씀에 관해 살펴보았습니다. 대부분 성경신학자들은 뵈뵈 자매가 바울의 편지를 로마에 전달한 사람으로 봅니다. 그러나 뵈뵈 자매는 편지를 전달하는 전달자 그 이상이었습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특정 국가에 특사로 파견할 때에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의 복음 전도 사역에 뵈뵈 자매의 헌신적인 도움은 사도 바울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는 데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외지에서 오는 방문자들을 환대하고 여러 가지 지원까지 아끼지 않았던 인물이었습니다. 뵈뵈는 사도 바울과의 친밀한 관계뿐만 아니라 켄그레아 교회의 신실하고 유력한 일꾼이었습니다. 일꾼이라는 말은 섬기는 자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뵈뵈 자매가 로마를 방문한 분명한 목적으로 밝히지는 않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특별한 목적을 갖고 로마를 방문한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 특별한 목적 가운데 하나는 사도 바울의 특사와 같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습니다. 사도는 뵈뵈 자매를 로마교회에 추천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자신의 보호자며 예의를 갖고 그를 받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제 로마서 16장 두 번째 기간으로 본문 3-16절 말씀을 통해 “사도 바울의 문안 인사”라는 제목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문안대상
     
    1. 로마에 있는 교회와 성도들을 향한 문안인사
     
    사도는 본문 16절 말씀에서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 합니다. 이러한 문안인사 형식은 사도의 전형적인 서신의 특징입니다(고전 16:20, 빌 4:21). 그러나 본문에서 사도의 문안인사는 아주 독특합니다. 긴 문안인사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첫째, 사도가 로마교회 누구에게 문안 인사를 하고 있습니까?
     
    사도는 본문은 문안인사 목록에서 26명의 개인들을 거명합니다. 그리고 두 가정과 세 개 처의 가정교회를 언급합니다. 로마에 있는 교회는 사도가 설립한 교회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구주로 영접한 성도들에게 직접 복음을 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도 바울로부터 전도를 받은 사람들에 의해 로마에 복음이 전해졌고, 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둘째, 무슨 목적으로 긴 문안인사를 하고 있습니까?
     
    초기 선교사들에 의해 한국에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하자 믿는 무리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들과 함께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런 교회는 선교사들의 선교실적으로 본국에 적극적으로 보고되기도 했습니다. 본국으로부터 선교비를 받는 입장에서 선교의 열매들을 보고해야 하는 일은 당연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교회들 중에서는 선교사들이 직접 설립한 것이 아니라 선교사의 전도로 개종한 사람들이 교회를 세우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토착민들에 의해 교회가 설립된 것처럼 마치 로마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마교회는 사도들이 세운 교회가 아니라 사도들에게 전도를 받고 배운 그리스도인들이 세운 교회였습니다.    

    사도는 그러한 로마의 교회에 많은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합니다. 심지어 로마교회의 선교비 자원을 받아 로마의 서반부인 스페인 지역에 복음을 전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사도가 로마교회를 방문하겠다고 언급하면서 먼저 편지를 뵈뵈 자매 손에 들려 보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다른 서신서들과는 다른 오직 독특한 문안인사, 즉 긴 문안인사를 하고 있는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사도의 긴 문안인사 내용을 보면 로마에 있는 많은 성도들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려 26명의 성도들을 언급합니다. 그리고 두 가정과 세 개 처의 가정교회에 대해서도 알고 있습니다. 많은 유대인들과 유명한 랍비들이 동쪽에서 로마로 이주하여 정착하며 살았습니다. 또한 정착할 뿐만 아니라 왕래하여 방문하기도 하였습니다.    

    사도는 본문에서 언급된 여러 성도들을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었다고는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통해 전해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로마서 15:29절에서 사도는 로마를 방문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방문 계획은 목적이 있는 방문입니다. 이러한 방문 이전에 먼저 서신을 통해 로마교회와 소통하고 있습니다. 
     
    나의 동역자
     
    2. 가장 먼저 언급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입니다(3-4).
     
    첫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어떤 사람입니까?
     
    사도는 가장 먼저 언급한 사람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였습니다 브리스길라는 아내였으며, 아굴라는 남편입니다. 아내가 남편보다 먼저 언급한 것으로 보아 아내가 더 활동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먼저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어떤 사람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사도행전 18:2-3절을 보겠습니다.
     
    “아둘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행 18:2-3)

    사도 바울은 낮에는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하다가 안식일에는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했습니다. 이러한 일은 안식일마다 진행되었습니다(행 18:4). 당시 회장은 나그네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장소로도 사용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회당에서 안식일마다 공식적으로 예배가 이루어졌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회당에서 안식일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 것 없이 무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복음을 전했습니다. 물론 유대인이었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역시 낮에는 사도 바울과 함께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안식일에 회당에서 사도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일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사도행전에 의하면 본도 출신 유대인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 부부는 AD 49년에 반포된 글라우디오 황제의 칙령으로 인해 로마에서 추방되어 이탈리아에서 고린도로 왔습니다. 고린도에 머물면서 바울과 함께 동역했습니다. 그들은 후에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로 여행했습니다(행 18:18-19). 한동안 그곳에서 정착하기도 했습니다(고전 16:19). 본문 로마서 16:3절에 의하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다시 로마로 돌아와 로마에 정착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글라우디오 황제가 AD 54년에 죽은 뒤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다시 로마로 돌아온 것입니다.    

    사도는 본문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고 합니다. 16:3:16절에서 문안하라는 단어는 총 16회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21-23절에서도 5회 정도 등장합니다. 사도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에게 문안하라고 합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로마에서 노예를 거느리며 사업을 하는 사업가였습니다. 황제의 추방명령을 기회로 로마의 사업장을 고린도나 에베소로 확장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로마를 떠나면서 자신의 집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에게 예배장소로 제공해 주었습니다(5절).
     
    둘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바울의 동역자였습니다(3절).
     
    사도는 본문 3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라고 합니다. 나의 동역자란 말은 사도가 항상 동료 사역자를 부를 때 사용한 단어입니다. 동역자란 주님의 지상명령인 복음 전파를 전하는 사역을 의미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사역을 위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의미에서 도역자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아내인 브리스길라가 사도 바울의 복음 전도 사역에 적극적으로 동역했다고 해석하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셋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사도의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습니다(4절).
     
    본문 4절에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라고 합니다(4절).
    여기 그들이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의미합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사도 바울의 목숨을 위하여 자신들의 목이라도 내놓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에게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여기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다”라는 말은 자신의 목숨을 걸었다는 은유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목이라도 내어 놓을 정도로 절박한 심정으로 도와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폭동이 일어났을 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바울의 목숨을 위해 자신들의 생명을 걸었을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이방인 교회에도 널리 알려질 정도로 헌신한 부부였습니다. 사도는 로마에 보낸 편지에서 로마에 있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 대한 개인적인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인의 모든 교회들”도 그들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3. 로마에 있는 문안받는 가정교회와 믿음의 사람들(5-16)
     
    1)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라(5).    

    로마에 있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집에 예배를 드리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사도는 이 모임을 교회라고 말합니다. 사도는 이 모임의 교회에 문안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예배당이 준비되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사도는 여러 서신서에서 가정교회를 언급했습니다(고전 16:19, 행 12:12).
     
    특히 고린도전서 16:19절에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고.”라고 합니다. 로마서 16장에서 에클레시아라는 교회는 단어는 본문 5절에서 언급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로마서 16:15절에서 로마에는 소위 다섯 부류의 신앙 공동체가 존재하고 있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가정교회(3-5), 둘째, 아순그리도, 블레곤, 허메, 바드로바, 허마와 및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14), 셋째, 빌롤로고, 율리아, 또 네레오와 그의 자매와 올름바와 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성도들(15), 넷째, 아리스불로의 권속에 있는 그리스도인들(10), 다섯째, 나깃수 권속에 있는 그리스도인들(11)입니다.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특정한 장소를 예배당으로 마련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성도들이 특정인의 가정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아직 공식적으로 관리감독하는 주체가 없는 가운데 가정에서 모였습니다. 이를 가정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가정교회 구성원들은 친족 중심, 가장 가까운 사람들 중심으로 구성된 믿음의 공동체였습니다.
     
    2) 내가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5)
     
    에배네도라는 신약성경 그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는 인물입니다. 본문에만 언급된 인물입니다. 그의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헬라이름으로 이방인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는 본문 5절에 의하면 “그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니라”고 했습니다. 그는 아시아에서 로마로 이주해 온 인물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에배네도는 아시아에서 첫 번째 열매로 상징성을 갖고 있는 인물입니다. 이런 상징성은 사도가 그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그의 집의 가정교회 다음으로 언급하고 있다는 점은 첫 열매라는 상징성 때문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에배네도는 사도의 전도로 예수를 믿는 아시아에서의 첫 결신자였습니다. 사도는 이러한 에배네도에게 문안하고 있습니다.
     
    3)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마리에게 문안하라(6절).
     
    본문 6절에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고 합니다. 여기 마리아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마리아라는 인물이 유대인인가, 이방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그러나 학자들은 본문에서 언급된 마리아는 이방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유대인으로 마리아는 신약성경에 6회 정도 등장합니다. 하지만 고고학에서 로마의 각종 비문들에게 이방인 여성의 ‘마리아’라는 이름이 대략 108번 정도 등장합니다. 그러나 유대인 여성의 마리아라는 이름은 20회 정도 등장합니다. 이러한 통계로 본문에서 마리아는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 여성으로 설명하곤 합니다.
     
    사도는 본문에서 마리아를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자라고 합니다. 여기서 언급된 수고란 단순한 수고가 아니라 선교사역일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공동체를 위한 헌신적인 봉사라 할 것입니다.   
     
    4) 내 친척인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7).
     
    본문 7절에서는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기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라”라고 합니다. 이들은 부부입니다.    

    사도가 본문에서 언급한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는 바울의 친척들로 언급됩니다. 역기서 친척이라는 말은 실제로 혈육의 친척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의 술어는 로마서 9:3절과 동일한 술어로 동족 유대인을 지칭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는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김을 받은 자입니다. 이는 사도들 가운데 유명한 자들이라는 의미로서 분명 사도들과 더불어 복음 사역에 동참한 자들입니다. 그 동참에 대해 “나와 함께 갇혔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는 실제로 함께 갇혔다고 볼 수 있지만 복음을 위해 함께 고난을 받은 상황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부부는 사도 바울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라고 합니다. 이는 이들 부부가 사도 보다 먼저 회심한 그리스도인임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5)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 문안하라(8).
     
    본문 8절에 “또 주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고 합니다. 여기 암블리아는 남자입니다. 남자로서 노예입니다. 그러나 노예이지만 노예출신 자유인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노예는 주인의 소유일 뿐 그 어떤 개인적인 재산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노예였다가 자유인이 될 경우, 자유로운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런 노예출신 자유인은 경제적인 여유를 갖고 살았습니다. 암불리아는 바로 이런 그리스도인이라 할 있습니다.    

    사도는 이러한 암블리아를 “주안에서 내 사랑하는 자”라고 합니다. 주안에서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은 주님의 몸된 지체입니다. 모두가 하나입니다. 사도 바울이 믿고 증거한 예수 그리스도에 복음을 암블리아도 믿고 있습니다. 믿을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과 더불어 복음으로 주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암블리아에게 문안하고 있습니다 
     
    6) 나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아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9).
     
    본문 9절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고 합니다.     

    우르바노는 앞서 8절에 기록된 암블리아와 같은 노예였거나 노예출신 자유인이었을 것입니다. 당시 암블리아는 로마에서 남자 노예 이름들 가운데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우르바노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 대해서는 ‘나의 동역자’라고 했지만 본문에 우르바노는 ‘우리의 동역자’라고 언급합니다. 사도는 자신과 친밀한 관계에 있는 자를 지칭할 때 ‘나의 동역자’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동역자’라는 보편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동역자를 지칭할 때 사용하기도 합니다. 사도는 본문에서 ‘우리의 동역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다구’라는 이름은 헬라이름입니다. 하지만 황제 가문의 남자 노예 이름 가데 등장합니다. 그 역시 8절에서 언급된 암블리아와 같이 노예였거나 노예 출신 자유인일 수 있습니다. 우르바노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라고 하지만 스다구에 대해서는 ‘나의 사랑하는 자’라고 합니다. 스다구는 사도 바울과 친근한 관계였음을 보여준 대목입니다.
     
    7)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와 아리스불로의 권속에게 문안하라(10).
     
    본문 10절에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 아리스불로의 권속에게 문안하라”고 합니다.     

    아벨레는 우리나라의 흔한 이름처럼 당시 헬라의 아주 흔한 이름입니다. 사도는 아벨레를 가리켜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자’라고 합니다. 여기서 인정을 받았다는 말은 환난과 시련속에서 참고 인내하여 승리한 자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리스불로의 권속들’을 언급합니다. 아리스불로라는 이름은 헤롯왕의 가문에서 자주 등장한 친숙한 헬라 이름입니다. 이 말씀은 아리스불로 권속 중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고 합니다.
     
    8) 내 친척 헤로디온과 나깃수의 가정 중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11).
     
    본문 11절에 “내 친척 해로디온에게 문안하라 나깃수의 가족 중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고 합니다.    

    해로디온은 헤롯 가운에 속한 노예출신 자유인으로 추정합니다. 바울은 그를 ‘내 친적’이라고 합니다. 이같은 표현은 ‘동족, 동포’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또한 ‘나깃수의 가족 중 주 안에 있는 자들’을 언급합니다. 사도는 나깃수 개인에게 문안한 것이 아니라 그 가족 중 주안에 있는 믿는 자들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9)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12).
     
    본문 12절에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고 합니다.    

    본문에는 세 명의 여인이 등장합니다. 이들 여성들은 한결같이 주안에서 주를 위해 수고한 자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 특히 ‘버시’는 많이 수고한 자라 할 수 있습니다. 사도는 이들에게 문안하라고 합니다. 드루배나와 드루보사는 흔한 헬라 여성이름입니다. 이들 역시 노예이거나 노예출신 자유일 가능성이 높은 여성들입니다.    

    버시 역시 노예 여자 이름입니다. 노예일 경우 사도가 언급한 것처럼 주안에서 많이 수고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노예출신 자유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도는 버시가 많이 수고할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자라고 언급합니다. 다른 여성들 보다 특별히 주안에서 친근한 자였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10)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13).
     
    본문 13절에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라”고 합니다.    

    루포는 마가복음 15:21절에 구레네 사람 시몬이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로 언급되고 있는데 이 루포를 말한다는 견해들이 많습니다. 사도는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라고 합니다. 루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로서 구원을 받은 택함 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그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의[루포]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바울과 루포와 친형제 관계를 말하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사도에게 루포의 어머니는 루포와 같은 자녀와 같이 사랑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루포의 어머니는 곧 나의 어머니와 같다는 표현일 것입니다. 상당한 부분 루포와 그의 어머니는 사도의 선교사역에 커다란 힘이 되어 주었을 것입니다.
     
    11) 아순그리도, 블레곤, 허메, 바드로바, 허마와 및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하라(14).
     
    본문 14절에 “아순그리도와 블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및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하라”고 합니다.    

    본문에서 언급된 모든 인물들은 노예이거나 노예출신 자유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들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공동체 구성원이 되었습니다. 사도는 이들 뿐만 아니라 이들과 함께 한 형제들에게도 문안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란 바로 가정교회를 의미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도는 이러한 가정 교회에 문안하되 특히 이 가정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5명의 이름을 거명하고 있습니다.
     
    12) 빌롤로고, 율리아, 또 네레오와 그의 자매와 올름바와 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15).
     
    본문 15절에 “빌롤로고와 율리아와 또 네레오와 그의 자매와 올름바와 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고 합니다.    

    여기에 거명된 5명의 이름 역사 노예였거나 노예출신 자유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고 합니다. 이 역시 가정교회를 의미합니다. 사도는 로마에 흩어진 여러 가정교회의 구성원들을 상당히 많이 알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사전에 로마에 있는 가정교회들을 잘 알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문안하고 있습니다.
     
    결론
     
    사도는 지금까지 로마에 있는 주 안에서 형제자매들에게 문안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일부 가정교회를 언급하면서 그에 속한 모든 지체들을 기억하며 문안인사를 했습니다. 이제 본문 16절에서 마지막으로 종합적으로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본문 16절에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라고 합니다.
     
    여기 “거룩하게 입맞춤”의 인사는 고대 사회에서나 유대사회에서 인사할 때나 헤어질 때에 존경과 사랑의 표현으로 서로 입맞추는 사회적 관습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입맞춤은 ‘거룩’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사도는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 합니다.
     
    또한 사도는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고 합니다. 사도는 다른 서신서에서 ‘하나님의 교회’라는 표현하였습니다(고전 1:2, 갈 1:13, 딤전 3:5 등). 그러나 본문에서는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표현합니다. 사도가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라고 한 것은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에 이르기까지 사도의 사역을 통해 세워진 교회들을 생각하면 한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위 내용은 지적 소유권에 의해 보호되는 글입니다) 
     
    소재열 목사(새사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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