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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직인 관리 규정 제정 필요 '분쟁예방'교회는 직인을 가지고 있다. 교회의 공적인 모든 공문은 직인을 날인하여 발급한다. 직인 없는 공문은 효력을 인정받을 수 없다. 모든 공문의 작성권자는 담임목사이며, 담임목사 허락 없이는 발급할 수 없다. 당회 서기가 공문을 발급할 때 당회장(담임목사) 결재 없이는 받을 수 없다. 공문을 발급한 후에는 당회가 정한 공문 발송 대장에 기록하여 발송하여 후에 공문의 적법성 여부를 판단 받아야 한다. 공문에 날인한 교회 직인은 당회 서기가 비치하고 보관한다. 그러나 이 보관은 반드시 당회 서기가 자기 집을 가져가 관리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교회 정관의 보관 방법 규정에 따라야 하며, 규정이 없는 경우, 당회장실, 당회실, 사무실 등 당회가 결의한 곳에서 관리하여야 한다. 이러한 교회 직인과 공문 발송에 관한 규정을 교회 정관 시행세칙으로 규정해 둘 경우, 가장 합리적인 비치와 관리를 할 수 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이 규정할 수 있을 곳이다. 1. 교회 직인은 당회실에 비치하여 관리한다(혹은 당회실에 비치하여 관리한다). 2. 교회 각종 공문은 교회 직인과 담임목사(당회당) 당회 서기 직인을 날인하여야 한다. 3. 당회장과 서기 직인은 교회 직인과 함께 보관한다. 4. 교회 직인은 총회에서 직인증명서 발급받는다. 5. 교회 공문의 작성권자인 담임목사의 공문 발급에 서기가 거부할 경우, 교회 직인과 담임목사 직인만 날인하여 발급한다. 6. 교회 직인을 서기가 개인적으로 비치하여 관리하면서 당회장에게 제출을 거부할 경우, 당회장은 별도로 직인을 제작하여 직권으로 총회에 직인을 변경할 수 있다. 7. 교회 모든 공문은 발급 대장에 기록하여야 하며, 발급 대장에 기록이 없으면 발급하지 않는 것으로 한다. 8. 공문의 작성권자가 직권으로 발급할 수 있으며, 특별한 경우의 공문은 당회 결의를 거쳐야 한다. 9. 공문의 작성권자인 담임목사가 서기가 아닌 직접 서류를 작성하여 발급할 수 있다. 10. 직인 부정 사용의 경우 권징치리 대상이 된다. 이와 같은 규정을 정관 시행세칙으로 제정하여 시행할 경우 상당한 부분 분쟁을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관련 대법원 판례법리다. 공문의 작성권자의 결재를 거치지 않고 임의로 작성권자의 직인 등을 부정 사용함으로써 공문서를 완성한 때에는 공문서위조죄가 성립한다. 이는 공문서의 작성 권한 없는 사람이 허위공문서를 기안하여 작성권자의 결재를 받지 않고 공문서를 완성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나아가 작성권자의 직인 등을 보관하는 담당자는 일반적으로 작성권자의 결재가 있는 때에 한하여 보관 중인 직인 등을 날인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경우 다른 공무원 등이 작성권자의 결재를 받지 않고 직인 등을 보관하는 담당자를 기망하여 작성권자의 직인을 날인하도록 하여 공문서를 완성한 때에도 공문서위조죄가 성립한다(대법원 2017. 5. 17. 선고 2016도13912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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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5호선 연장, 풍무2역·김포경찰서역 신설 여부 5월 확정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대광위)는 지난 2024년 1월 29일 서울 5호선 연장 노선 조정안이 발표됐다. 이 노선에 의하면 구 김포 외에 김포한강 신도시 5호선은 장기역 뿐이다. 대광위는 2월 말까지 이미 의견수렴을 마치고 5월에 최종 역을 확정하여 발표한다. 이 연장노선 조정안의 의견수렴에서 ‘풍무2역·김포경찰서역’과 ‘통진연장’안이 추가로 건의 된 것으로 알려졌다. 20일 김포시와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대광위) 등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 1월19일 발표한 수도권 전철 5호선 김포·검단 연장노선 조정안에 대해 김포시가 주민 의견을 수렴한 결과 풍무2역·김포경찰서역과 통진연장 추가안이 가장 많이 건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포시는 풍무2역·김포경찰서역 추가와 통진연장안 등을 최종 확정안에 반영토록 추진할 계획이다. 대광위는 이러한 건의사항을 제출받으면 제안 사항의 타당성 등 반영 여부를 판단하여 제4차 광역교통시행계획(2021~2025년)을 변경해 다음 달 중 최종 계획을 확정한다. 추가 대상역인 풍무2역은 이미 발표되 대광위의 조정안의 김포 풍무역과 인천 검단 101역 간 거리가 3㎞ 넘는다. 김포경찰서역 역시 감정역과 장기역 사이는 4.2㎞를 초과해 중간 지점인 김포경찰서 인근이 추가 역으로 적정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김포시와 대광위는 제4차 광역교통시행계획 최종안에 반영하는 문제와 각 지자체의 기술 검토 등을 검토해 최종 확정안에 반영할지 여부가 주목된다. 대광위는 이미 2024. 1. 19. 서울5호선 연장 사업 조정(안) 발표에서 각 지자체는 대광위 조정 노선안의 각 소관 사항에 대해 지역 의견수렴과 타당성 분석(예비타당성조사 준비를 위한 기술검토)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힌바 있다. 의견수렴 과정에서 제기되는 사항(정거장 신설, 노선 추가 연장 등)은 추가적인 기술 검토 등을 수행한 후 국토부(대광위)에 그 결과를 제출하면, 국토부(대광위)는 제안 사항에 대한 타당성 등 반영 여부를 판단 하여‘제4차 광역교통시행계획’변경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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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역사적 성경연구 12강 출애굽기구속역사적 성경연구 12강 출애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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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 생명 15년 연장과 하나님의 구속사“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왕하 20:6) 하나님 말씀이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란 하나님이 성경을 통하여 자신의 뜻을 전해 주었다는 의미이다. 신학적으로 성경을 ‘하나님의 자기계시’라고 한다.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시며, 자신의 구속경륜을 알려주셨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되 삼위 하나님과 그 하나님의 구속경륜을 어떻게 우리에게 알려주셨고, 적용되게 해 주셨는가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알아 그분께 경배와 영광을 돌리며, 그분이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셨는가를 알아 순종해야 한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구약은 신약의 계시에 대한 약속이며 근거가 되고 신약은 구약의 약속에 대한 성취이다. 그 약속과 성취의 한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신구약 성경은 삼위 하나님과 성육신하신 하나님을 계시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고 구원을 이루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게 효과적으로 적용하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시다. 이렇게 하여 삼위일체 하나님과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성경의 어느 한 부분을 이해하고 해석할 때는 이러한 전체의 맥락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부분은 전체를 통해서 확증되고 전체는 부분에 근거를 제공한다. 이러한 통일성의 맥락에서 성경을 이해하고 해석하여 우리의 삶에 적용해야 한다. 성경을 잘못 이해하고 해석할 경우, 잘못된 적용이 이루어져 우리의 삶의 파괴한다. 성경을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파괴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성경을 잘못 이해하고 해석한 결과이다. 열왕기서의 대상 남 왕국과 북 왕국 열왕기서는 많은 왕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왕은 이방 나라 왕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 수단으로 사용된 이스라엘 나라 왕이다. 여기서 말한 이스라엘이란 하나의 왕국으로서 이스라엘을 의미하지 않고 분열 왕국을 말한다. 국가 이스라엘은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 왕 때까지 하나의 국가였으나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왕 때에 나라가 남쪽과 북쪽으로 분열되었다. 이 분열은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였다. 남쪽은 남 왕국, 혹은 남 유다라고 했다. 북쪽은 북 왕국, 혹은 북이스라엘이라고 했다. 북 왕국의 실권 지파가 에브라임이어서 약칭으로 에브라임이라고 했다. 남 왕국은 실권 지파가 유다이기 때문에 남 유다라고 했다. 열왕기서를 읽을 때 본문이 북 왕국을 지칭한 것인지 남 왕국을 지칭한 것인지를 잘 확인해야 한다. 열왕기서는 남 왕국과 북 왕국을 번갈아 가며 말씀한다. 역대기서는 남 왕국 중심으로만 기록한 성경이다. 열왕기서와 하나님의 구속사 열왕기서는 남 왕국의 왕들도 하나님께 죄를 범했고 북 왕국의 왕들도 하나님께 죄를 범했다. 그 죄의 결과 북 왕국은 앗수르에 의해 포로로 잡혀갔으나 돌아왔다는 기록이 없다. 그러나 남 왕국은 북 왕국과 같이 그들의 죄악으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지만 돌아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열왕기서의 저자는 남 왕국과 북 왕국의 포로 이후에 과거를 회고하며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물론 그 역사는 신약의 구속을 위한 약속으로 이어진 하나님의 구속사였다. 이러한 하나님의 구속사는 남 왕국이 북 왕국과 같이 죄를 범했지만, 남 왕국인 유다 왕국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임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이 유다 왕국을 통해 약속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열왕기서나 역대기서는 남 왕국, 남유다 중심이다. 이 유다를 통한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였으며, 이러한 역사를 통해 신약에서 약속의 성취자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다. 왕들의 모범적 행위 우리는 “구약 이스라엘의 왕들의 모범적 행위를 본받아야 한다”라는 성경이해와 묵상을 “모범적 해석과 적용”이라고 한다. '모범'의 사전적 의미는 ‘본받아 배울 만한 본보기’라는 의미가 있다. 왕들의 모범적 행위를 통해서 본받아야 할 것과 본받지 말아야 하는 것을 열왕기서에서 찾아내고 이를 삶의 현장에 적용하는 원리를 의미한다. 예컨대 왕들이 여호와 목전에서 악을 행했다. 그러자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 죄를 지으면 심판을 받는다. 또한 왕들이 우상을 타파하고 하나님을 잘 섬겼다. 그러자 하나님의 축복이 임했다. 우리도 하나님을 잘 섬기면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다. 따라서 우리는 죄를 짓지 말고 하나님을 잘 섬기고 순종하자는 형식 논리였다. 소위 왕들의 역사를 위인전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한다. 이런 형식의 성경이해와 적용을 우리는 ‘모범적 해석과 적용’이라고 한다. 일부에서는 이런 형식의 모범적 성경해석과 적용은 성경을 인물중심의 자서전적 해석으로 문제가 있다고 주장해 왔다. 소위 성경을 하나님이 아닌 인물 중심의 위인전으로 만들어 버리는 결과라고 이를 반대해 왔다. 왕들을 통한 하나님의 구속사 모범적 성경해석을 반대하며 구속사적 성경해석을 주장한 사람들은 성경은 왕들 중심의 인물중심이 아닌 하나님의 구속사를 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구속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를 의미하므로 열왕기서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석하고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부 구속사 학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강조한다고 해서 구속사가 아니라 삼위 하나님 중심의 구속사를 주장하며, 하나님의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어지고 이러한 하나님의 구속적 은혜를 개인에게 효과적으로 적용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언급하며, 삼위 하나님 중심의 구속사를 언급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논의된 내용은 하나님의 구속사를 외면한 모범적 해석과 모범적 해석을 거부한 구속사적 해석은 문제가 있다는 주장들이 있어 왔다. 이런 관점을 이해한다면 열왕기서 왕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혹은 각 사건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과 계시의 의도를 본문 말씀 속에서 확인해야 한다는 것은 성경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본문, 혹은 열왕기서를 통해서 계시하신 하나님의 뜻을 성경 전체의 통일성 속에서 확인한 후 우리의 삶의 자리로 적용해야 한다. 이때 얼마든지 모범적 적용은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성경 전체의 통일성 속에 하나님의 계시나 구속적 진리를 외면한 채 오로지 인물의 위인전 형식의 모범적 해석과 적용은 주의해야 한다. 히스기야의 생명 15년 연장받은 사건 히스기야 왕이 심한 병에 걸려 거의 죽게 되었다. 아모스의 아들인 예언자 이사야가 그에게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소. ‘너는 이제 죽을 것이다. 그러니 네 집안일을 정리하라. 너는 회복되지 못할 것이다.’”라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그러자 히스기야 왕은 벽 쪽을 바라보며 여호와께 기도를 드렸다. 기도 내용은 자신이 언제나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께 복종하고,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옳은 일을 한 것을 기억해 달라고 슬프게 울며 기도했다. 그때 여호와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임했다. 이때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었고 그의 눈물을 보았다고 한다.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의 병을 고쳐 주시겠다고 했다. 이렇게 하여 히스기야가 병 고침을 받아 15년 동안의 생명을 연장받았다. 이 사건 해석 병들어 죽게 되었으니 집을 정리하라고 한다. 문자적 의미는 “너는 네 집에 대하여 명령하라”라는 뜻이다. 곧 죽기 전에 모든 일들을 정리하고 왕으로서 국정(國政) 인계를 하라는 뜻이다. 평행 구절인 이사야 38:1에는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이다. 왕상 20:1절에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는 말씀은 미래형 동사로서 임박한 가까운 미래를 가리킨다. 또 이러한 임박한 죽음은 병 때문인데 이 병으로 인한 임박한 죽음의 이유에 대해서는 본문에서 언급되지 않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며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했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여호와께로만 향하겠다는 믿음이다. 또한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들은 히스기야의 간절함을 보여준다. 왕으로서 모든 일정을 중지하고 오직 여호와께만 전심전력(全心全力)하여 매달린 모습을 보여준다. 히스기야는 남 왕국의 왕이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창세기에서부터 흐르는 하나님의 약속과 구속은 유다를 통해서 이루어진다(창 3:15, 49:10 등 참조). 북 왕국은 언약 밖의 계열로 왕위가 정통성 없이 배반과 쿠데타로 이어졌다. 결국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 포로로 잡혀가 돌아왔다는 기록이 없다. 그러나 남쪽 유다 왕국은 창세기에서부터 약속한 하나님의 구속의 라인인 유다 지파를 통한 유다 왕국을 통하여 왕위가 계승되며, 이 왕위는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로 이어진다. 칼빈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대한 마태복음 1:12절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에”라는 본문을 주해하면서 “다윗의 후손들이 왕 노릇을 하다가 종살이와 포로 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이 복음서 기가는 말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포로 생활은 죽은 거나 다름없었는데, 이 유대인들이 다시 한 백성으로 모이고 또 아 왕권의 어떤 남은 자들이 다윗 계통을 통해 존속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뛰어난 섭리가 아니면 불가능했었다는 것도 말해주고 있다. 이것이 야곱이 ‘홀(왕의 지팡이)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창 49:10)라고 예언한 그대로다. 이 백성의 분산이 아무리 비참하고 슬픈 것이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은혜는 꺼지지 않고 그 빛을 발하고 있었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구속사를 위해 히스기야 왕은 반드시 왕위를 계승할 아들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 아들이 없을 때 죽음의 선고를 받은 상태에서 15년 생명 연장을 받았다. 연장받은 15년 동안 아들 므낫세를 낳았다. 히스기야에게 왕위를 계승할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생명을 15년 생명 연장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다. 열왕기하 21:1에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왕위에 올랐을 때 나이는 12세였다. 그렇다면 므낫세는 히스기야가 15년의 생명을 더 연장받은 후(6절)에 얻은 아들임이 분명하다. 히스기야의 15년 생명을 연장받은 기도는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구속경륜 가운데 주어진 사건이다.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 할지라도 신구약 성경 전체를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중단시킬 수 없다. 이는 오직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과 약속이 종말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사건 적용 히스기야가 “죽을 병에 걸렸는데 간절히 기도하자 생명을 15년 동안 연장받았다.” 우리도 “간절히 기도하면 생명을 15년 동안 연장받은 응답을 받는다”라고 적용할 수 있을까? 이런 식의 해석을 모범적 해석과 적용이라 한다. 이런 식의 해석은 히스기야 왕의 15년 생명 연장받은 사건을 잘못 해석하므로 나타난 현상이다. 성경을 잘못 해석하면 잘못 적용되고 만다. 물론 우리는 히스기야 처럼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어려운 상황이 올 때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을 받아야 한다. 제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기도 본문을 읽고 곧바로 나에게 가지고 오기 전에 먼저 구속사적, 성경신학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해석된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를 나에게 가져와 적용해야 한다. 히스기야 왕이 죽을병에 걸렸을 때 간절히 기도하자 하나님은 생명을 15년 연장해 주시므로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가 중단되지 않고 이어져 신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다. 이러한 의미를 가진 히스기야의 기도와 생명 연장받은 사건은 우리에게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 사건이다. 하나님은 모든 역사를 주권적으로 이끌어가신다. 역사의 현장에서 나에게 일어난 모든 사건을 통해 우리를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 그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에게 기도하게 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신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기도는 신앙고백과도 같은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때 그 응답의 내용과 시기는 하나님이 결정하신다. 우리는 그 하나님께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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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역사적 성경연구 제10강 : 출애굽기(하나님의 능력과 왕권 율법)구속 역사적 성경연구 제10강 : 출애굽기(하나님의 능력과 왕권 율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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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통일당의 정치-종교적 신념의 실험대자유통일당은 제22대 국회의원 투표(2024. 4. 10)에서 지역구는 물론 당득표율은 총 64만 2천433표로 2.26%를 얻어 비례대표 한 석도 내지 못했다. 제20대 총선에서 기독자유당으로 도전하여 2.63%, 제21대 총선에서는 기독자유통일당으로 도전하여 1.8%를 얻었다. 이번 제22대 총선에서는 2.26%를 얻는 데 그쳤다. 자유통일당은 지역구에 10명의 후보를 냈으며, 비례대표는 20명의 후보를 내세웠지만, 당선의 벽은 높았다. 전광훈 목사의 자유통일당은 이승만의 4대 건국 정신인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 한미동맹, 기독교 입국론의 기치를 들고나왔다. 정의로운 사회는 정치를 통해 실현된다면, 교회는 정의로운 사회를 이룩하고자 하는 정치에 관여할 수 없는가? 교회는 정치에 대한 비판적으로 개입할 수 있어도 정치에 직접 관여할 수는 없는가?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지며,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는 정교분리원칙은 교회는 정치에 직접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그리스인들의 인식 저변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전광훈 목사 중심의 자유통일당은 정교분리에 대한 해석의 문제를 제기하며 그 논리적 모토를 이승만의 4대 건국 정신을 가지고 왔으며, 이를 현실정치에 참여하는 근거로 내세웠다. 그동안 한국교회의 보수 교단은 교회의 현실적인 사회 참여를 육적이며 세상적인 가치로 평가하지만, 오로지 교회는 영적인 일에만 참여해야 한다는 영•육 이원론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런 시각과 관점은 교회가 정치에 참여한 것은 영적인 신앙생활에 반한 세상적인 일로 치부했다. 따라서 교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정치 참여는 개인적인 내심의 문제로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 놓고 말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이런 이유로 국회의원 투표에서 그리스도인들의 투표는 종교적 신념보다 개인적인 정치 신념이 판단의 근거로 투표하기에 이르렀다. 자유통일당의 이승만의 4대 건국 정신에 반한 당론을 가지고 있거나 그런 성향을 지닌 후보일지라도 선택의 기준은 종교적 신념이 아닌 드러내 놓고 말할 수 없는 정치적인 신념이 우선이었다. 이런 이유로 교회의 우파와 좌파 구분은 의미가 없어졌다. 교회 신자 중에 좌파적 정치 성향이 있고, 반대로 우파적 정치 성향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호남의 더불어민주당의 전폭적인 지지, 영남의 국민의힘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는 그리스도인의 종교적인 판단이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이 표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전광훈 목사의 자유통일당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적극적으로 종교적 신념이 정치적 신념보다 앞서야 한다며, 정치 현실이 되어 버린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 한미동맹, 기독교 입국론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이를 현실정치에 투영하기를 원한다. 이에 반대한 정치적 이념을 특정하여 좌파로 공격하면서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며 정치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이는 남북으로 대치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 상황과 맞아떨어졌다. 이러한 정치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는 자유통일당 지지자들은 다른 정당 지지자들보다 더욱더 적극적이다. 이들은 종교적 신념과 정치적 신념이 결합하면서 좌파들로부터 국가를 지켜야 한다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 상황에서 분연히 일어선 시대의 불침번이기를 바라고 있다. 이번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당투표에서 64만 2천433표의 지지를 받았다. 이 지지는 마치 우리나라 60만 명 군대와 같은 지지자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자유통일당의 60만 지지자는 다른 정당 지지자들과는 그 성향이 다르다고 한다. 그 이유는 정치적인 신념과 종교적 신념이 결합한 자유통일당 60만 명은 스스로 현 정부를 지키는 파수꾼으로 자처하고 있다. 자유통일당이 한 명의 국회의원과 비례대표를 국회에 진출시키지는 못했지만, 이승만의 3대 건국 정신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좌파와 공산화를 막는 마지막 보류라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자평하고 있다. 여론을 형성하며 주도적으로 정치와 종교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자유통일당의 실험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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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대 국회의원 김포시 더불어민주당 김주영, 박상혁 후보 당선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2024. 4. 10.에 진행되어 300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했다. 김포시는 더불어민주당 김주영 후보와 박상혁 후보가 당선됐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포시 김포갑 선거구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주영 후보(62세)가 당선됐다. 더불어민주당 김주영 후보는 69,836표(54.27%)를 얻었으며, 국민의힘 박진호 후보는 58,841표(45.72%)를 얻어 김주영 후보가 10,995표 차이로 당선됐다. 김포갑 총 선거인수는 186,262명이었으며, 투표수는 129, 846명이었다. 무효투표수가 1,169표였으며,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기권자 수는 56,416명이었다. 투표율은 69.71%였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포시 김포을 선거구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상혁 후보(51세)가 당선됐다. 더불어민주당 박상혁 후보는 74,556표(55.52%)를 얻었으며, 국민의힘 홍철호 후보는 59,717표(44.47%)를 얻어 박상혁 후보가 14,839표 차이로 당선됐다. 김포을 총 선거인 수는 209,555명이었으며, 투표수는 135,635명이었다. 무효투표수가 1,362표였으며,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기권자 수는 73,920명이었다. 투표율은 64.72%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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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주일 설교] 허탄한 듯 보이는 예수님의 부활기독교는 역설적인 면이 있습니다. 던마크 철학자 키엘케고르는 기독교 신앙을 역설로 가득 차 있는데 그 역설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요, 그 역설 때문에 거리껴 넘어지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파라독스”라고 하는 이 역설이라는 말은 표면상 논리적인 모순인 것 같은데 사실은 아주 높은 차원의 진리를 포함하고 있는 것을 뜻합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장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바로 이런 역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낮은 자가 높아지고 하나님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자가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같은 것들은 꼭 정 반대 되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것이 무슨 말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이같은 이야기의 이면에는 더 깊은 진리가 숨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역설적인 진리를 우리들은 믿는다. 주후 2-3세기에 살았던 로마의 법률까요, 평신도 신학자였던 ‘터툴리안’은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모순되기 때문에 믿는다”, 즉 성경이 가르치는 것이 논리적이면 오히려 믿을 가치가 별로 없지만 그것이 비논리적이기 때문에 믿을 가치가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은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 인간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비논리적인 것으로 비춰질지 모르지만 이것은 엄연한 진리입니다. 이같은 부활의 복음을 통해서 큰 은혜를 받는 부활주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1. 부활을 허탄한 이야기로 믿지 않는 사도들 오늘 읽은 누가복음 24장에는 부활 사건을 역설적인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인들이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에 가보니 무덤은 비어있고 천사들이 나타나서 예수님은 부활하셨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여자들이 처음에는 놀라서 어쩔 줄을 모르다가 나중에 제자들에게 가서 보고를 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반응이 24:11절에 기록됩니다.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즉, 그 여자들이 말하는 것이 허탄하게 들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허탄하다”라는 말은 신약 성경에서 여기만 나오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무의미하다, 난센스다, 혹은 쓸데없는 소리다” 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 말은 그 시대에서는 의학 용어로 어떤 사람이 열병에 걸려 병이 너무 심해서 중얼중얼 헛소리 하는 것을 이 “허탄”이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하는 소리를 제자들은 마치 열병 걸린 사람이 제 정신을 잃고 헛소리하는 것처럼 그렇게 이해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의 부활은 결코 허탄한 이야기가 아니다 첫째, 제자들이 여자들의 말을 들었을 때 그것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소리로 들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을 직접 보았고 그 무덤밖에 큰 돌을 갖다 놓고 심지어 거기에 봉인하는 것을 다 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무시하고 믿지 못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믿음의 기준을 자신들이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 시대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에 한 번도 경험해 본 일이 없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는 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둘째, 이 ‘허탄하다’는 말은 ‘난센스다,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무의미한 말이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과 빈 무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들었습니다. 그들의 사고방식으로는 예수님의 부활은 헛소리였습니다. 그런데 말도 안 되는 그 헛소리가 나중에 가장 말이 되는 의미 있는 이야기가 될 뿐만 아니라 모든 의미의 근원으로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허탄하다고 말하는 그 소리가 오히려 허탄한 말이 되었습니다. 부활은 의미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에게 가정 큰 의미를 제공해 준 우리 삶의 모든 의미의 근본이 되는 의미입니다. 셋째, ‘허탄하다’는 말은 “쓸데없는 소리, 아무 도움도 안되는 소리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무엇이 쓸데 있다’ 또는 ‘쓸데 없다’라는 기준을 정해 놓고 그 기준에 의해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쓸데없는 소리’라고 본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은 사실로 드러났을 뿐만 아니라 쓸 데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아무 소용없는 것 같이 들렸을지 모르지만 사실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고전15:14절에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라고 말씀합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가장 불쌍한 자가 될 것입니다. 3. 사도들은 왜 허탄한 행동을 하고 있는가? 눅 24:5절에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라고 합니다. 이들의 행동이 허탄한 짓입니다. 본문 24:6절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7절에서는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같은 말씀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허탄한 행동을 한 것입니다. 자기들이 허탄한 짓을 하면서 오히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하는 그 사실 자체를 허탄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부활을 믿지 못합니까? 그것은 예수님을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 생각의 기준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실 때 출세하려는 데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천군 천사들을 불러다가 로마를 다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회복하려는데 한몫 참여해야겠다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자신들의 경험과 자기들의 생각으로 말씀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부활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얼마나 허탄한 생각입니까? 자기 나름대로 생각했기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찾은 어리석음을 범한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들이 예수님이 갈릴리에 계실 때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라”고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들이 자꾸 잊어버리니까 기억하라고 한 것입니다. 결 론 우리들이 세상적으로 너무나 똑똑해서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허탄한 이야기로 듣는 허탄한 사람이 되면 안 되겠습니다. 세상의 똑똑함이 오히려 나에게 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허탄한 사건으로 돌림으로 인생의 참된 삶을 살지 못한 자들이 되면 안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 말씀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말씀입니까?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예수님과 같이 부활 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같은 약속의 말씀을 믿지 못하여 허탄한 인생을 사는 자들이 없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말씀사역원 - 소재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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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장사, "지옥에 가신 것을 뜻하지 않는다"예수 그리스도는 전가받은 죄값을 지불하기 위하여 나를 대신하고 우리 모두를 대표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에 따라(사 53:3-12) 부자의 무덤에 장사되었다. 자신의 예언대로(마 12:40, 16:4) 사흘 동안 무덤에 장사되었으며, 요나의 표징과 예표대로 이루어졌다(욘 1:17). 사흘 동안 무덤에 머물렀으므로 그의 죽음은 기절이나 혼수상태가 아닌 완전한 죽음이었다. 이 죽음은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닌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한 형벌을 지는 죽음이었다. 이는 자신의 낮아지심의 마지막 정점이었다. 사도신경의 로마교회 형식에 의하면 "음부에 내려가시고"라고 되어 있으나 초기 로마형식의 루피누스나 예루살렘 퀼릴로스의 요리문답 본문에는 "장사되시고"만 되어 있고 "음부에 내려가시고"는 없다. 희랍교회는 그리스도의 지옥 강하를 당한 것으로 가르친다. 로마교회 역시 마찬가지이다.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니라"(벧전 3:19)는 말씀은 영으로 노아홍수 때의 악한 자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파했다는 것이 아니고, 그가 영의 권세로 구속사건을 그들에게 알리심을 뜻한다. 곧 그리스도가 죽으시고 부활하사 승천하시므로 그의 구속사역이 옥에 갇혀 있는 악한 자들에게까지 선포됨을 말한다. 버림받은 자들의 자리인 지옥에 갈 수 없다(서철원 <그리스도론>, 220). 개혁신학에서는 그리스도가 그의 영혼으로 친히 지옥에 가신 것을 뜻하지 않는다. 칼빈에 의하면 지옥강하가 십자가상의 고난과 죽음의 극치 곧 땅에까지 묻힌 비하를 말한다(칼빈, <기독교강> II, 16, 8,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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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파업과 장기려 박사1976년 남미의 콜롬비아에서는 의사들이 52일 동안 파업을 하여 응급치료 이외의 진료 활동을 전부 중단한 적이 있었다. 당시 신문을 비롯한 언론 매체는 의사의 파업으로 야기된 예기치 못한 놀라운 사실을 보도했다. 의사들이 파업을 해서 사망률이 35%가 감소하였으며 일손을 놓게 된 국영장의협회는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지만 사실이다”라는 논평을 냈다. 같은 해에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도 의사들 파업이 있었다. 그로 인해 17개의 주요 병원에서 수술 건수가 평소보다 60%가 줄었는데 그 결과 “전체 사망률이 18%나 감소했다”라는 발표가 보고되었다. 의사들 파업이 끝나고 진료가 다시 시작되자 사망률은 다시 파업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40년 동안 진료에 임하고 있는 일본 의사 곤도 마코토는 솔직하게 임상 경험을 고백한 책 ‘의사에게 살해당하지 않는 47가지 방법’에서 말했다. “병원에 자주 갈수록 불필요한 약이나 과잉 진료행위로 오히려 수명이 단축될 수 있다.” 환자를 상품으로 취급하듯 병원 환자를 떠나 파업하는 의료 현실은 병원 위주의 진료가 아닌 진정한 환자 중심의 헌신적인 진료의 필요성을 일깨워준다. 2024년 개혁 자유주의자 윤석열 대통령의 의료 개혁에 반발해 일어난 초유의 전공의 집단 사직 ‘의료 파행’은 하루빨리 해결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파행이 역설적으로 상급종합병원, 중형병원(병원·종합병원), 의원으로 이어지는 의료 전달 체계를 정상으로 돌려놓고 있는 점은 하나님 은혜다. 전공의 의존도가 높은 서울 ‘빅5′ 병원 등 상급종합병원들은 수술실 가동률을 절반으로 줄이고 중증·응급 환자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증상이 경미한 환자들은 중형병원으로 발길을 돌리면서 환자가 자연스럽게 ‘분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게 정상적인 의료 전달 체계 모습이다. 평소 응급실을 찾는 환자의 절반 안팎이 응급실에 올 필요가 없는 경증 환자라고 한다. 전공의 집단 사직이 상급종합병원이 제 역할을 찾게 한 것이다. 대형병원들은 하루빨리 전문의 중심으로 바꾸고 이번 사태가 끝나더라도 중증·응급환자 중심으로 운영해야 한다. 이번에 역할을 재발견한 곳이 전문병원을 비롯한 중형병원이다. 중형병원은 평소에도 전문의 위주로 운영해 전공의들 집단행동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번 사태와 관계없이 정상 진료와 수술도 가능하다. 대형병원 수준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 곳도 많아 대형병원의 공백을 잘 메우고 있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특정 질환이나 진료 과목에 대형병원 수준의 전문성을 갖춘 ‘전문병원’이 더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번 사태로 그동안 빅5 병원에 경증 환자가 지나치게 많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지난 2023년 서울대학교병원 노조는 국립대 병원인 서울대병원이 의료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위해 의사 성과급제를 폐지하고 환자들에게 적정 의료시간을 보장해야 한다며 파업을 단행하였다. 서울대병원이 검사 건수에 따라 수당을 받는 의사성과급제를 도입한 이후 의사들이 환자 한 명 한 명을 제대로 진료하기보다 검사 건수를 늘리는 데 주력해왔고 이에 따라 ‘1분 진료’가 관행처럼 굳어졌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3월 14일 오전 회의를 열어 정부와의 협의체에서 논의할 큰 주제로 보건의료정책 개선, 건강보험체계 개선, 전문성 강화, 기타의료제도 개선 등 네 가지를 정했다고 한다. 의사들 총파업이 추구하는 속뜻을 헤아릴 길이 없지만 의사의 역할인 사회의 공공성을 무시하여 총파업을 빌미로 이윤 추구를 노리고 있다면 국민들은 의료 업계에 냉철하게 등을 돌릴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공공병원으로서 역할을 포기하겠다는 의사협회 자세는 국민의 지탄을 면키 어렵다. 병원 수익금을 늘리기 위해 환자에게 위험하고 불필요한 검사를 하면서 어떻게 ‘신뢰받는 병원’, ‘생명의 미래를 여는 병원’, ‘의료선진화’를 추구하겠다는 것인가. 더 나아가 독일 출신 프랑스의 의사, 음악가, 철학자, 신학자이자 루터교 목사인 알베르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1875년 1월 14일 ~ 1965년 9월 4일)가 실천한 '생명에 대한 경외'라는 그의 고유한 철학을 본받을 수 있을까. 그는 아프리카 의료 봉사에서 더 나아가 인류의 형제애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 공로로 195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작금의 형태는 핵 소유 북한 도당을 코앞에 두고 있는 대한민국의 의사라면 장기려(張起呂, 1911년 8월 14일 ~ 1995년 12월 25일) 박사의 헌신을 되새길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는 1932년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당대 최고의 외과 의사였던 백인제 교수의 지도를 받아 외과학에 입문했다. 1936년까지 약 270건의 실험에 바탕한 “충수염 및 충수염성 복막염의 세균학적 연구”로 1940년 나고야 제국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0년 12월 한국동란의 혼란 중에 처자를 두고 차남 장가용과 함께 월남하였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과 교수가 되었다. 1951년 1월 부산 서구 암남동에 현 고신의료원의 전신인 복음병원을 세워 피난민 등 가난한 사람을 무료진료하면서 1976년 6월까지 25년간 복음병원 원장으로서 인술을 베풀었다. 그는 최고의 실력을 갖춘 외과 의사였지만 평생 낮은 곳에서 청빈한 삶을 살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인술을 베푼 사회봉사자였다. 1951년 복음진료소(현재의 고신대학교 복음병원)의 개설을 시작으로 청십자사회복지회, 장애자재활협회 등 각종 복지단체를 세우고 1976년에는 청십자병원을 설립하여 소외계층과 지역사회의 복지증진에 헌신했다. 일생동안 불우한 이웃을 위해 몸소 사랑을 실천했다. 특히, 가난한 환자를 구제하기 위해 1968년 한국 최초의 사설의료보험조합인 부산 청십자의료협동조합을 설립해 국내 최초의 의료보험조합이자 현행 의료보험제도의 효시를 탄생시켰다. 기독교 신앙에 기반해 65년간 인술을 베풀며 봉사, 박애, 무소유를 실천했으며 수술비가 없는 환자를 위해 자신의 돈으로 수술을 해주고 그마저 감당할 수 없게 되면 밤에 몰래 환자를 탈출시키기도 했다. 평생 의사로 일하면서 그는 "의사를 한 번도 못 보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뒷산 바윗돌처럼 항상 서 있는 의사가 되겠다."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하였다. 평생 자기 집 한 채 가지지 않고 병원 옥상 사택에서 살았던 그는 1995년 12월 25일 성탄절 새벽 서울백병원에서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현재까지 이영춘, 문창모, 안영모, 김찬우, 이태석, 안수현 등과 함께 "한국의 슈바이처"라 칭송되고 있다. 지난 2월 28일 김영태 서울대병원장과 송정한 분당서울대병원장, 이재협 서울시보라매병원장은 이날 소속 전공의 전원에게 이메일로 ‘서울대병원 전공의 여러분께’라는 제목의 호소문을 보냈다. 이들은 호소문에서 “전공의 여러분, 병원장으로서 저희는 당부드린다”라며 “이제 여러분이 있어야 할 환자 곁으로 돌아와 달라”고 했다. 이어 “여러분의 진심은 충분히 전달이 됐다. 중증·응급 환자와 희소 난치 질환을 가진 환자들을 포함한 대한민국의 많은 환자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으니 이제는 돌아와 달라”고 했다. “전공의 여러분의 꿈과 희망은 환자 곁에 있을 때 빛을 발하고 더욱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음을 믿고 있다”라고도 했다. 성경은 말씀한다.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 10:5-8) 김영배 목사(더굳뉴스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