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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대 개교 120주년 기념, 어제와 오늘(2) 평양선교지부와 마포삼열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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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대 개교 120주년 기념, 어제와 오늘(2) 평양선교지부와 마포삼열 선교사


마포삼열 리.png
왼쪽 마포삼열 선교사, 오른쪽 그래함 리 선교사

 

오늘날 총신대학교(합동)와 장로회신학대학교(통합)는 같은 평양장로회신학교를 뿌리로 하고 있다. 이 신학교는 1901년에 선교사 공의회의 결정으로 마포삼열 선교사 자택에서 시작하였다. 따라서 총신대학교 120주년 기념은 1901년으로 시작한다. 이런 이유로 총신대학교의 역사적인 과거의 발자취를 추적하기 위해서는 선교사 공의회와 마포삼열 선교사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마포삼열 선교사는 46년간 한국에서 사역하였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32년이다. 총신대학교의 120주년의 역사를 정리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미국북장로교해와선부는 한국에 선교회(Korea Mission)를 조직하고 그 밑으로 전국의 중요한 지역에 지회(Mission Station)를 두고 조직체계를 갖추어 나갔다. 실질적으로 한국선교회 회장은 알렌이 맡았고, 언더우드는 회계였다. 언더우드는 서울선교지회의 전초 역할을 하였다. 평양지역의 한국에 파송한 선교사들은 교육 선교에 대한 희망을 품었다. 양반, 중인, 천민의 신분제도가 철폐되어 누구나 학문과 지식을 넓히면 한국 사회가 변화되고 복음화가 될 것으로 여겼다.

  

마포삼열 선교사의 입국은 장차 한국장로교회의 교역자 양성을 위해 준비된 인물이었다. 특히 멕코믹신학교 재학 중일 때 함께 기도클럽 회원이었던 베어드(배위량) 선교사의 한국 선교사 파송은 한국의 교육 선교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훗날 총신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의 전신이 된 평양의 평양장로회신학교 마포삼열 선교사, 숭실대학교의 전신인 평양 숭실학당의 베어드 선교사는 한국교회에 남긴 발자취는 실로 작은 일이 아니다.

 

장대현교회와 당회.png
왼쪽 장대현교회, 오른쪽 중앙 길선주 목사, 왼쪽으로 마포삼열 선교사, 오른쪽은 그래함 리 선교사

 

마포삼열 선교사는 평양과 서울을 오가면서 평양의 선교지부 개설을 준비하였다. 18933~4월 마포삼열 선교사는 리 목사, 홀 의사, 서상륜과 함께 평양선교지부를 개설을 추진하기 위해 서상륜과 한석진의 이름으로 집을 구입하였으나 평양 관찰사의 반대로 반환되었다. 선교지부 개설이 실패로 돌아가자 평양에 선교지부가 개설될 때까지 리 목사는 원산에 머물게 되었다.

 

평양 관찰사는 이상한 교리를 공부하는 자를 발각하면 모두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명령은 남부지방인 호남에서의 동학도의 일종의 비밀 정치 종교단체로 인하여 선교사들이 평양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한석진 조사는 봄에 했던 실수를 거울삼아 선교사들이 거주할 수 있는 조용히 작은 집을 매입하는 데 성공했다. 마포삼열 선교사 일행은 1893년 가을과 겨울을 이 집에서 지냈다.

 

평양선교지부가 개설되면서 한석진 조사와 마포삼열 선교사는 1893년 평양에서 기도회와 예배를 인도했다. 마포삼열 선교사는 평양뿐만 아니라 부산, 서울, 원산, 의주를 통해 선교사역에 바쁜 나날을 보냈다.

 

[크기변환]앞줄 왼쪽 베어드 마포삼열.jpg
앞줄 왼쪽부터 베어드(배위량), 마포삼열, 두 사람은 멕코믹신학교에 함께 다녔으며, 한께 기도 클럽에서 활동했다. 두 사람중에 마포삼열 선교사는 평양장로회신학교, 베어드 선교사는 평양 숭실학당(숭실대학교)의 책임자로 설립에 참여했다.

18944월에 장대현교회가 설립되었다. 1893년 마포삼열(Moffett, S. A.) 선교사가 평양에 선교사업을 위해 정착하면서 한석진(韓錫晉) 조사(助師)와 함께 세웠다. 널다리(板洞)에 세웠던 회당으로 처음에는 교회 이름을 판동또는 널다리교회라고 하였다. 그 후 1899년장대현(장대재)교회로 바꾸었다. 1900년에 한국인 교인들의 헌금액 5,000여 원과 선교사 보조금 수천 원으로 72칸의 교회당 건립에 착수하여 준공하였다. 그해 장대현교회는 김종섭(金鍾燮)을 장로로 장립(將立)하여 당회(堂會)를 조직하였다.

 

사본 -마포삼열 부부2.jpg
1899. 6. 1. 12시 정각에 평양에서 그레이엄 리 선교사의 주례로 결혼식을 가졌다(아내 앨리스 피시 마페트) 결혼시 사진

 

선교사들이 사경회를 중심으로 성경을 가리키다가 신학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1890 서울을 중심으로 성경교육에 그치지 않고 신학교육을 위한 신학반을 만들어 신학교육이 시작되었다. 그 후 북장로교 평양선교부가 1893년에 개설되면서 1894년부터 평양에서도 신학반이 운영되었다. 이 신학반 운영이 평양장로회신학교의 탄생의 배경이 되었다.

 

마포삼열가족들.png
미포삼열 선교사 가족

 

이때부터 점차 정규 신학교의 설립 필요성이 대두되어 1900년 평양 공의회는 마침내 신학교 설립을 결의하고 이듬해인 1901년 봄 방기창·김종섭 등 2명을 목사 후보생으로 선발하여 장로회신학교의 설립자인 마포삼열 선교사의 집에서 신학교육을 시작했는데, 이것이 평양신학교의 시작이다. 1918~27년에는 모펫(마포삼열)이 교장으로 재직했다.

 

평양장로회신학교는 미국 북장로교해외선교부가 한국 선교부를 개설하고 선교사를 파송한 하나님의 섭리로부터 시작되었다. 1884920일 알렌 선교사 이후 언더우드, 헤론 선교사, 마포삼열 선교사 등의 입국 역시 평양장로회신학교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섭리 역사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서울선교지부에서 평양선교지부가 개설되고 이에 마포삼열, , 훌 의사 선교사 등은 평양선교를 가능하게 한 개척자들이었다. 물론 서울에 주재하면서 평양을 여러 차례 방문한 언더우드의 사역을 빼놓을 수 없다.

 

한석진.png
1907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최초의 7인 목사, 앞줄 원안이 평양선교에 함께 했던 마포삼열 선교사의 조사였던 한석진이다.

 

현재 총신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 숭실대학교의 전신은 모두 평양에서 출발한 학교이다. 역사의 기록으로만 존재한 평양선교 역사는 오늘의 남한의 거대한 학교들의 전신이었다. 역사적으로 평양장로회신학교의 폐쇄된 신학교를 다시 문을 열어서 오늘날의 총신대와 장신대로 계승된 신학교는 아니다. 전혀 다른 신학교였지만 모두가 장로회 공회가 세운 학교였다는 점에서 역사성과 그 정체성을 계승한 학교이다.

 

다음은 평양장로회신학교가 개인이 설립한 학교가 아니라 공회가 세운 학교로서 역사적인 출발이 어떠 했는지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소재열 목사(한국교회사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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